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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라 Mar 20. 2017

반디와의 10년

4. 여름휴가


4. 여름휴가 (4)


  둘째 날의 계획은 화암동굴에 가는 것이고 마지막 날은 사북에 가서 폐광된 마을을 둘러보고 함백산을 가는 일정이었다. 우리는 화암동굴로 향했다. 

동굴 안은 여름에 이런 곳이 있을까 싶을 만큼 서늘해서 팔에 소름이 돋았다. 주차장에서 동굴 입구까지 오는 동안 찌는 듯한 더위로 온몸에 끈적하던 땀이 순식간에 들어가 버렸다. 길이 좁고 가파른 곳이 있어서 피터는 반디를 단단히 안으려고 가끔 고쳐 안았다. 사람들은 반디를 데리고 들어온 우리를 쳐다보았고 더러 예쁘네요 하고 인사를 건냈다. 

  습기와 오래된 곰팡내가 한기와 섞여 썩 좋지는 않았다. 허지만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오랜 시간동안 침식과 퇴적이 계속되어 만들어낸 종유석 동굴은 천년의 세월을 하나의 형상으로 보고 있으므로 꽤 울림이 있었다. 세월이 흘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후세사람들도 어떤 방법으로든 볼 수 있을 것이다. 허지만 동굴은 들어왔다 나가려고 있는 곳이므로 왠지 어서 나가고 싶었다. 게다가 뭐라 표현 할 수 없는 불편함이 마음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건 이곳의 한기와 어둠 때문만은 아닌 어떤 예감 같은 것이었다. 

  나오는 길에 사진촬영이 허가된 곳에서 사진을 찍기로 했다. 모든 기계종류에 서툰 이모가 카메라를 들고 있는 것이 못 미더웠는지 피터가 반디를 내려놓고 이모 쪽으로 갔다. 

  일이 나려면 평소와 같은 행동을 하지 않게 된다는 말이 맞는 가 보다. 어이없게도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씌웠는지 바닥에 반디가 있는 것을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피터가 반디를 내려놓을 때 당연히 우리들 중 누구에게라도 넘겨주고 이모에게 갔겠지만 우리는 그때 벽 쪽을 보느라 뒤돌아서 있었다. 피터는 거의 무의식중에 바닥에 내려놓았던 것이다.

카메라를 받아든 피터가 들여다보고 작동을 맞춘 후 거기 서봐 라고 말했다. 한옆에 서는데 무언가 허전한 느낌이 빠르게 몸을 관통하듯 지나갔다. 카메라 렌즈를 보던 피터가 반디 어딨어 라고 물었을 때 몸을 관통한 느낌은 현실로 딱 다가왔다.

  반디가 없었다. 그 짧은 사이에 반디가 없어졌다. 동굴에 들어서면서 감지 됐던 불편함이 바로 이것 때문이었음에 생각이 미치자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우리가 있는 곳은 동굴의 입구 쪽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사람들로 무척 혼잡했다. 우리는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반디야. 반디야. 목 놓아 불렀지만 반디는 나타나지 않았다. 근처에 있었다면 귀가 밝은 반디가 못들을 리가 없을텐데 근처에 없음이 확실했다. 피터는 밖으로 나가 관리소에 신고를 한 후 광장을 찾아보기로 하고이모는 광장으로 먼저 나가기로 했다. 우리 셋은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아까 들어갈 때는 길이 좁다고 느꼈는데 지금은 넓고 드나드는 사람이 너무 많다. 이렇게 넓다면 반디를 못보고 지나치는게 찾는것 보다 쉬울 것 같다. 마리는 오른쪽으로 붙고, 나는 왼쪽, 요섭은 가운데에서 가기로 했다. 이름을 계속 부르면서 눈을 부릅뜨고 오가는 사람들을 헤치며 나아갔다. 눈이 동그랗고 갈색털이 고불고불한 애 보셨냐고 이사람 저 사람에게 물으면서 왔던 길을 되돌아 들어갔다. 

  기묘한 종유석들로 뒤덮인 동굴 안이 이제는 천년의 세월이 빚어낸 예술품이라는 생각은 어디에도 들지 않는다. 다만 흉한 지옥의 벽면처럼 음험하고 거칠게 보일 뿐이다. 길은 아까보다 더 꼬불꼬불한 미로로 바닥은 습하고 미끄러워서 이 길을 반디가 어떻게 갔을까 생각으로 걱정스러웠다. 설마 끝까지 가진 않았겠지. 끝으로 가면 철 계단도 있고 그 아래로 떨어질 수도 있는데. 다행히 반디는 계단을 못 내려가니 거기까진 가지 않았을 것이다.

찾지 못 할 것이라는 생각은 절대 하지 않았는데 점점 불길한 생각이 든다. 처음엔 가봤자 동굴 안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밀려나오고 들어오는 사람들 틈에 있으니 암담한 기분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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