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세라 Mar 23. 2017

반디와의 10년

4. 여름휴가


4. 여름휴가 (6)


  휴가의 마지막 날 우리는 아침 일찍 서둘러 사북엘 갔다. 이모는 사북과 인연이 깊다. 교직에서의 첫 발령지가 바로 이곳이었다. 이모는 그 시절 사북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남들은 탄광촌이라고 기피했지만 그건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몰라서 하는 말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이곳은 이곳만의 향기가 있었으며 그 향기는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열정 때문이라고 했다. 

  그때 여기서 사람들이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 모를거야, 광부들은 꼬박꼬박 월급을 타서 그 돈으로 슈퍼에서 장을 보고 당구장에 가서 여가를 즐겼고 휴일이면 가족이 남자 여자 나뉘어 목욕탕을 갔어, 애들을 피아노학원, 영어학원에 보냈지. 밤이면 하루일과를 마친 근면하고 정직한 광부아빠는 깨끗이 탄가루를 씻어낸 말간 얼굴로 가족과 함께 어두운 탄광촌에서 소박한 행복 속에 파묻혔어. 이모는 마치 이모가 광부의 아내였던 것처럼 회상했다.

그러나 지금은, 한차례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듯 쓸쓸하다. 올려다 보이는 광부의 집들은 텅텅 비어 앙상한 뼈대만 남은 듯 보인다. 그들은 지금 다 어디에서 살고 있을까. 채 가시지 않은 시커먼 탄가루의 흔적은 그대로인데 그때 행복했던 가족들은 여기 남아 있지 않다. 

우리는 이렇게 잠시 들르러 와서 그때의 시간들을 듣고 있는데 그들에겐 어쩌면 이곳에서의 마지막이 혹 아프게 남아 있는건 아닐까. 그래도 어딘가에서 행복한 가정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살고들 있겠지. 나도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 

  이모는 이곳에서의 추억을 더 이야기했다. 학생들에게 가르쳤던 시와 소설, 수필들이 그들의 성장기를 감성적으로 도왔다는 것도 강조했다. 그 말을 들으며 피터는 독립 운동가를 아내를 두기라도 한 듯 자랑스러움을 얼굴에 담았다.

  어른들의 지난 이야기를 듣는 것은 현실감이 많지는 않아도 재미있다. 아, 그랬겠구나 정도의 상상 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는 이모의 지난 이야기 속에서 엄마를 느낄 수 있어서 좋다. 내가 그립고 우울한 표정을 짓다가 이모와 눈이 마주칠 때는 이모도 나와 같은 표정을 짓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모도 엄마와의 추억이 나처럼 아파서 그럴 것이라고 나는 지금보다 더 전에도 생각했었다. 


  어제 반디를 극적으로 찾고 우리가 펜션으로 돌아가 맞이한 밤은 다른 때 보다 훨씬 더 평화로웠다. 우리는 발코니에 나가 있었다. 상쾌한 공기와 여름밤의 서늘한 기온은 더없이 향기로웠다. 

목욕을 한 반디의 몸에서는 향긋한 샴푸냄새가 나고 방금 말린 털은 더욱 탐스럽게 곱슬거렸다. 반디 눈이 더 커졌어 라고 말하는 마리의 말이 아니라도 진즉부터 느끼고 있었다. 반디는 행복해보였다. 잠깐의 헤어짐이 주었던 시련 때문인지 우리들 속에서 안락함을 더욱 절실히 느끼는 듯 했다. 

  나무 테이블위에 반디를 앉히고 둘러앉았다. 행복한 반디의 옆에서 우리들도 행복했다. 행복은 만져지지 않는 추상명사지만 지금은 손에 잡힐 듯 확실한 질감이 있다. 반디의 탐스러운 털에서, 마리의 반듯한 이마에서, 요섭의 앞뒤 안 맞는 황당한 이야기에서, 그리고 그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는 이모와 피터에게서 충분히 만져진다.

별 쏟아지는걸 보자는 피터의 제안으로 우리는 차 트렁크에서 깔개를 갖고 와 마당에 펴고 나란히 누웠다. 반디는 뜻밖의 상황에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모 옆으로 오더니 가슴에 머리를 대고 바로 누웠다. 이모는 반디도 별을 보라고 하늘을 향해 배를 보이게 몸을 돌려주고 안정된 자세를 갖게 하려고 팔과 다리가 벌어지지 않도록 잡아주었다. 새까만 하늘엔 보석 같은 별들이 박혀있었다. 손에 잡힐 듯 가깝다.    

그리고 아! 정말 하늘에서 별이 쏟아지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반디와의 10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