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고교생 요섭
6. 고교생 요섭 (1)
봄이 지날 무렵의 5월은 어딜 가든 아기자기함이 가득했다. 길가엔 키 작은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있고 따사로운 햇살이 머리위로 내려앉았다. 이모는 반디와 산책 나갈 때 마다 쑥을 뜯어 왔다.
뜯어온 쑥으로 별것 별것을 다 만들었다. 쑥 개떡, 쑥 국, 쑥 부침개, 우리에게는 한약 냄새가 나는 음식이었지만 피터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만들어준 음식을 회상했다. 그것이 이 동네의 쑥이었으므로 피터의 여린 마음은 오랜만에 찾은 과거의 흔적을 찾듯 냉동실에 얼려놓은 쑥 개떡을 매일 한 두 개씩 음미하듯 먹었다.
반디의 몸무게는 푸들의 평균을 훨씬 넘어섰다. 닥터정은 한숨을 쉬면서 1.5키로 가량 빠져야 한다고 했다.
닥터정은 이사 오면서 옮겨 다니게 된 동물병원의 의사로 자신을 닥터정으로 불러 달라고 했다.
그는 쾌활한 사람으로 의사 같지 않았다. 그래서 왠지 닥터정이라는 호칭이 어울렸다. 예방접종을 위해 처음 그 병원에 갔을 때 그는 반디야 선생님이랑 아야야하러 들어가자 라고 말했다. 반디는 놀랍게도 닥터정을 따라 금방 진찰실로 들어갔고 두 번째 갔을 때는 반가워서 그에게 달려들었다.
반디의 체중은 5.5~6키로를 왔다 갔다 하는데 푸들의 정상적인 몸무게는 4키로 정도라고 한다. 닥터정은 반디가 1.5키로를 빼는 것은 60키로의 사람이 45키로까지 줄이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날씬하게 쭉 뻗은 다리와 뾰족한 얼굴을 보면 얘가 비만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몸 쪽으로 좀 두툼하긴 했지만 늘 보는 우리는 그 몸매에 익숙해서 그조차 귀여웠으니 객관성이 결여된 것은 사실이다. 통통한 몸으로 꼬리를 흔들며 다가오는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 다 오기도 전에 달려가 안아주게 되니 말이다.
운동을 시켜야 하지만 산책 외에 특별히 어떤 운동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네 개의 다리로만 서있을 수 있는 애한테 푸샵을 시킬 수도 없고 러닝머신을 태울 수도 없으니 말이다. 피터는 집이 좁아서 운동반경이 좁아진 것이 원인이라고 말했지만 그것보다는 음식이 문제였다. 사료이외에는 아무것도 주지 말아야 하는데 대체 그걸 어떻게 지킬 수 있단 말인가. 세상에 맛있는 그 많은 음식들 중의 아주 작은 일부라도 맛보지 못하고 일생동안 사료만 먹게 할 수는 없다. 그저 소금기와 지방을 줄이기 위해 신경 쓰는 것으로 대치 할 수밖에 도리가 없다.
햄을 삶아서 물에 담가두면 소금기가 거의 빠져나간다거나 고기는 그냥 구워서 소금 없이 먹이고 과일은 물이 많은 것은 주지 않는 등 이모의 지휘 하에 꽤 디테일하게 실천하고 있기는 하다.
가끔 어떤 것이 반디에게 최선일까 생각한다. 물론 그 답은 항상 반디가 좋아하는 것으로 간다. 그러나 우리가 좋아하는 것만을 하면서 살지 못하는 것처럼 반디에게도 어느 정도의 규율이 필요할 것이다. 그럴 때 항상 마음을 잡는 것은 반디가 사람처럼 오랜 삶을 갖지 못한 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더 많은 것을 더 많이 누리게 해주고 싶은 욕망을 어쩔 수 없다.
이모는 하루의 거의 모든 시간을 글쓰기에 몰두했다. 가끔 커피 잔을 들고 창문을 내다보고 있는 이모에게 힘들지 라고 물어보면, 막다른 골목에 들어온 듯, 때로는 발이 땅에 닿지 않는 허공에 있는 듯, 때로는 만져지지 않는 허상을 안고 있듯, 글쓰기는 외로운 작업이라고 대답했다. 그 모든 시간을 반디는 이모와 온전히 함께 있었다.
책상다리를 하고 의자에 앉아 있을 때 반디는 이모 무릎에 올라앉는다. 이모가 책상다리를 하고 글을 쓰게 된 것은 반디 때문이다. 글을 쓰다가 막힐 때는 반디를 만지면서 마음을 가다듬었고 가끔 머리를 반디의 몸에 비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