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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미잘 May 17. 2024

바다와 발자국

아이를 데리고 바다에 갔었습니다. 오랜만에 바다였어요. 바람은 아직 차갑지만 햇볕이 따뜻해서 그럭저럭 있을만했습니다. 이렇게 날이 좋은데 왜 칭얼대는지 알 수 없습니다. 먼 길을 운전해 왔지만 그래도 아이를 번쩍 안아줬습니다. 먼 길 오느라 피곤했을지도 모르고, 낯선 풍경이 어색했을지도 모릅니다. 엉덩이 토닥이며 바닷가로 갑니다. 모래사장은 보슬보슬 말라있었습니다. 아이가 모래사장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을 유심히 지켜봤습니다. 아이의 반응이 궁금했습니다. 발이 모래를 파고들면 모래는 스펀지케이크처럼 부드럽게 눌립니다. 모래가 부드러워서 꼭 발이 아니라 다리로 걷는 것 같죠. 어색한지 몇 번 디뎌보다가 이내 우다다 뛰어다니기 시작합니다. 폭신폭신한 게 마음에 들었나 봅니다. 금세 넘어집니다. 아이 신발과 양말에서는 까끌까끌한 모래가 잔뜩 나올 겁니다. 무릎에서도 나오고, 손에서도 나오고, 입가에서도 나오고, 귀에서도 모래가 나옵니다. 스치는 손길마다 모래가 부스스 흘러내립니다.

신발과 양말에서 나온 모래는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들어간 모래일 것이고, 무릎에서 나온 모래는 아까 넘어질 때 묻어 나온 모래일 겁니다. 손바닥 모래는 모래놀이 하느라 묻어 나온 모래고, 입가에서 나온 모래는 좀 전에 빵가루 묻은 입가를 훔친 결과일 겁니다. 귀에서는 왜 나오는 걸까요? 제 얘기하니 귀가 간지러워 긁었을까요?

모래알마다 작은 스토리들이 담겨 있습니다. 모든 장면들이 추억으로 남을 겁니다. 모래알갱이마다 추억이 담겨있는 셈입니다. 윤동주 시인이 별을 셌던 것처럼 모래알을 세어볼 수도 있을 겁니다. 모래알 하나에 추억과 모래알 하나에 사랑, 모래알 하나에 꽈당과 모래알 하나에 우다다.

그러고 보니 아내와 결혼하기 전에도 이렇게 바닷가를 걸었습니다. 같은 바닷가에 갔냐고요? 그것도 낭만적인 일입니다만 바다는 어차피 다 연결되어 있으니 같은 바다를 본 셈 아닐까요? 바닷가는 발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좋습니다. 아내와 나란히 걸으며 모래사장에 발자국을 남기는 것이 참 좋았습니다. 나란한 발자국들이 우리 결혼 생활을 미리 보여주는 것 같았거든요. 뒤돌아보면 그 모든 발자국이 춤이길 바랐습니다. 지금 돌아보니 꿈같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땐 이렇게 셋이서 바다에 오게 될지 꿈에도 몰랐습니다.

셋이 걷는 발자국이 모래사장에 찍힙니다. 아이는 가벼워서 아이의 발자국은 얇게 남습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내 안쪽 세상에서 아이의 발자국이 내 발자국보다 크고 깊습니다. 오히려 눈물 같기도 하고 별빛 같기도 한 것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죠. 아이는 크게 울고 힘차게 웃을 줄 압니다. 아이의 존재는 확연한데 발자국은 이렇게 희미하고 얇게 남습니다. 그 간극 때문에 아이의 얇은 발자국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매일을 울고, 먹고, 떼쓰고, 웃고, 쿵쿵 뛰면서, 쿵쿵 뛰면서 아이의 발자국은 점점 깊어지고 있겠지요.

눈 위에 남는 발자국은 녹아 없어지거나 새로운 눈이 쌓여야 사라집니다. 모래사장에 남는 발자국은 파도가 지울 것입니다. 모래 알갱이들이 쓸려왔다가 쓸려갑니다. 바다는 모래알에 담긴 발자국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발자국이 지워지는 건 아쉽지 않습니다. 저 바다 깊숙이 쌓여갈 발자국들을 떠올려봅니다. 아이가 언젠가 어디선가 또 다른 바다를 만났을 때 바닷속에서 엄마, 아빠와 같이 찍은 발자국들을 건져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해가 저물고 우리의 바닷가 산책도 끝이 납니다. 꼼꼼하게 아이의 몸과 옷에 묻어나는 모래를 털어냅니다. 떠날 때 바다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아쉽지 않습니다. 아직 털어내지 않은 모래알들이 바닷가에 무수합니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아이는 잠을 자고 자동차 바퀴는 빠르게 회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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