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학교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연구학교가 뭐냐고요? 사실 저도 잘 몰라요. 작년 말에 교감 선생님이 연구학교에 참여할 거냐고 묻기에 그러겠다고 답했을 뿐이에요. 연구 주제는 'AI 하이 테크를 활용한 깊이 있는 수업'입니다. 학교는 요즘 에듀테크니 AI 코스웨어니 디지털 바람이 불고 있어요. 교육계에 디지털화 바람이 분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지만 chat-gpt와 같은 대화형 인공지능이 개발된 이후에 인공지능을 활용한 교육은 교육계의 핫이슈죠. 그래서 이번 연구학교 활동에 참여하지 않으면 뭔가 뒤처질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런 위기감으로 참여하겠다고 한 것뿐이에요.
그래서 지금 'AI 하이 테크를 활용한 깊이 있는 수업'을 하고 있냐고요? 아뇨. 디지털 기기가 있어야 뭘 하든 말든 하죠. 2학기에는 디지털 기기가 반마다 보급된다는데, 지금은 노트북을 한 번 쓰려면 쉬는 시간에 반 애들이 모두 1층으로 내려가 3층까지 노트북을 들고 와야 해요. 끝나면 다시 노트북을 들고 내려가 충전함에 꽃아 둬야 하고요. 그마저도 우리 학년은 10개 반이니 미리 예약해 둬야 쓸 수 있죠. 하지만 기기가 없다고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환경이 늘 완벽할 수는 없잖아요.
해서 제가 이번에 진행하려는 수업은 글 고쳐쓰기입니다. 고쳐 쓰기 지도는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학생들은 보통 글쓰기를 어려워하고 싫어하는데 한 번 쓴 글을 다시 고쳤쓰라니, 오열을 합니다. 교사 입장에서도 고쳐 쓰기는 지도하기 어렵습니다. 그냥 고쳐 써 보라고 시간을 주면 대체 뭘 고쳐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학생들이 속출하고, 뭘 고쳤으면 좋겠다고 피드백을 주려면 너무 많은 시간이 소비되거든요. 그러다 보니 고쳐쓰기 즉 퇴고 단계는 수업에서 생략되기 일쑤입니다. 글쓰기의 아주 중요한 단계인데도 말이죠.
하지만 AI를 이용하면 이 과정이 조금은 수월해집니다. 제가 이용할 AI는 구글에서 제작한 gemini입니다. 아래는 제가 입력한 프롬프트예요.
초등학교 교사입니다. 초등학교 4학년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국어 교과에서 사실에 대한 의견 쓰기를 지도할 때, 학생의 글에 대한 피드백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학생들의 첫 번째 문장은 교사가 제시한 사실에 해당하는 문장이므로 평가하지 않습니다. 아래의 루브릭을 참고하여 학생 글에 대한 피드백을 제공해 주세요.
1. 양식 : 기준을 참고하여 표로 표시하되 학생 수준에 해당되는 곳에 간단하게 O로 표시 +총평( 간단하기 1~2 문장으로) + 피드백
2. 기준 : 매우 잘함, 잘함, 보통 (세부 기준을 세워서 평가하되 세부 기준은 표에 제시하지 않습니다.)
3. 수준 : 초등학교 4학년 (10살)
4. 평가 항목
- 사실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가?
-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이 잘 드러나는 글인가?
- 문장이 전체적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가?
5. 피드백 : 피드백은 학생들이 읽고 글을 수정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수준에서 예시와 함께 제시해 주세요.
이런 프롬프트와 함께 아래 학생 글을 집어넣으면 됩니다. 그럼 짜잔! 학생 글에 대한 피드백이 쏟아져 나옵니다. 솔직히 모든 피드백이 다 적절하거나 마음이 쏙 들지는 않아요. 그래도 ctrl+c, ctrl+v 한 번이면 피드백이 끝난다니 엄청난 일 아닌가요? 써먹을 만하죠.
이런 수업을 하는데 필요한 디지털 기기요? 아뇨. 깜박하고 노트북을 제 때 예약 못 했어요. 그래서 학생들에게 사실에 대한 의견 쓰기를 종이 활동지에 쓰도록 했어요. 이 활동지들은 제가 모두 타이핑해서 데이터화시킨 후에 하나하나 복사 + 붙여 넣기로 AI 피드백을 받았죠. 피드백 결과물이 한글 파일로 복사하면 형식이 깨지길래 또 google docs로 개인별로 하나씩 생성했네요. 다음 주에 학교에 가면 또 개인별로 인쇄하여 종이로 나눠줄 거예요. 고친 결과물도 종이로 쓰게 할까요? 아날로그와 디지털 그리고 AI가 뒤섞인 현장 전투형 'AI 하이 테크를 활용한 깊이 있는 수업'이죠.
이만큼 열심히 했다고 자랑하고 싶은 게 아니고요, 힘들었다고 찡찡대고 싶은 것도 아니에요. 그냥 어딘가엔 이렇게 세련되지 못한 AI 수업 연구도 있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요. 환경이 늘 완벽할 수는 없잖아요. 이 구질구질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학생들이 피드백을 받아 본 후에 피드백 자체를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면 일일이 구질하게 설명하고 다녀야 할 겁니다. 만약 그렇게 해서 나온 글이 생각보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더 구질구질해지겠죠. 뭐가 그렇게 자꾸 구질구질해지냐고요? 제 마음이요.
때로 그 구질구질이 가르침의 필연인가 싶기도 합니다. 수업이 끝나고 나면 항상 뭔가 불편하고 찝찝한 마음이 남습니다. 깨끗하지가 않아요. 잘 이해하지 못했을 것 같은데 조용히 지나가는 학생들이 눈에 밟히고, 개념을 제대로 정리한 것이 맞는지 의심스러워요. 어떤 학생을 볼 때면 사고를 더 확장시켜주지 못해 아쉽기도 하고요. '내가 이해하기 쉽게 잘 가르쳤나? 짜임새 있는 수업이었나?' 하는 반성은 디폴트 얼룩입니다. 어떻게 진행해야겠다 계획해도 까먹고 지나가기 일쑤. 그래요. 완벽한 수업이란 없다는 것을 알죠. 하지만 알면서도 무작정 만족하기는 어려워요. 눈앞에 학생들이 있으니까요. 멍한 얼굴, 모르겠다는 표정, 지루한 얼굴, 옆 친구와 킬킬대는 얼굴. 안경을 괜히 썼나 봐요.
AI는 세련되고 깔끔해 보여요. 무슨 질문을 해도 곧장 대답해 주죠. 심지어 잘 모르겠다, 못하겠다는 표현도 깔끔해요. 그래서 AI를 활용한 수업도 그랬으면 했거든요. 누군가는 수업에 그런 세련됨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죠.(그게 AI와 디지털 때문인지도 알 수 없지만.) 저는 아직 아닌가 봐요. 일단은 아직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