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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이제 술 마실 수 있습니다.

반가운 소식

by 말미잘

1년 가까이 지속되어 왔던 금주령이 해제됐다. 둘째가 생겼기 때문이다.

임신 12주 차. 심장박동수도 안정적이고 초음파로 아이 모습도 확인했다. 의사 선생님이 말씀해 주시기 전에는 어디가 머리고 어디가 다리인지 잘 구분되지 않는 꼬물이가 아내 뱃속에서 자라고 있다.

전에 글에서 둘째를 가지길 원한다고 소원한 적 있다. 이제야 이루어졌다. 나의 브런치를 알고 있는 지인들에게 이렇게 소식을 전한다.


우리 첫째 아이는 요즘 좀 잠드는 시간이 늦어져 8시 반에서 9시에 잠자리에 든다. 보통 6시에서 7시쯤 일어나니 낮잠 자는 1~2시간을 합치면 보통 11~12시간 잠을 자는 셈이다. 매일 충분히 자고 일어나서 그런지 하루 종일 에너지가 넘친다. 나도 12시간씩 자면 에너자이저가 될 수 있는 걸까?

우리 부부 둘 다 아이를 돌보다 피곤함으로 거실 아무 곳이나 널브러져 있는 날이면 아내는 때로 이렇게 묻는다.

"우리, 괜찮은 걸까?"

"뭐가?"

"하나로도 이렇게 힘든데 둘이면 더 힘들지 않을까?"

"괜찮을 거야."

무심한 말로 아내를 달랜다. 아내는 둘째가 태어나면 삶이 너무 고되지 않을까 걱정하지만 나는 이미 받아들이기로 했다.

'당연히 힘들겠지.'

속으로 말을 삼킨다.


둘째가 태어나면, 첫째를 키울 때 지나쳐왔던 그 모든 어려움에 더해서 첫째를 돌봐야 하고, 첫째와 둘째의 조합이 만들어낼 또 다른 힘듦이 있으리라. 아는 누나는 아이 둘을 키우며 여행을 가지 못하게 된 것을 아쉬워했다.

"애 하나만 있을 땐 다 갈 수 있어. 나도 그때는 애기 데리고 어떻게 여행을 가나 싶었는데, 갈 수 있어. 그때 가둬야 해. 애가 둘이면 당분간 여행은 끝이야. 갈 수 있을 때 가."

다행히도 나는 여행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그러나 포기해야 할 것이 여행뿐일 리 없다.


둘째는 분명 우리가 가까스로 숨 쉬던 육아의 틈마저 막아버릴 것이 분명하다. 취미 생활은 그리운 꿈이 될 거고, 하고 싶었는데 미루어 왔던 일이 있다면 아득해질 것이다. 쉴 시간이 더 사라질 것이고, 간간히 연락을 주고받던 지인들과의 만남도 싹둑 잘려나가겠지. 무엇보다 늘어나는 집안일에 치이게 되겠지.

육아라는 게 이런 걸까? 하고 싶은 일들을 모두 '애 크면'으로 미뤄놓고 막상 애가 크면 하고 싶은 일을 다 하기엔 너무 나이 들어 버리는 건 아닐까? 아이와 가족을 위한 삶을 살다가 나라는 사람을 잊어버리는 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육아를 희망했고 둘째를 바라던 나조차도 좀 무섭다.


그러나 괜찮을 것이다. 아내를 달랬던 말을 다시 한번 쓴다.

물건을 사기 위해 돈을 내듯이,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시간을 들이듯이, 아이를 키우기 위해 돈과 시간을 내는 것뿐이다. 어려울 것 없다. 우리는 돈과 시간을 쓰는 일에 익숙하다. 다른 점이라면 나를 위해 썼던 돈과 시간을 가족과 아이들을 위해 쓰게 된다. 하지만 그건 나의 소멸이 아니라 확장이다. 더 어려운 조건에서도 나와 동생을 키워냈으며 여전히 우리 형제를 사랑해 주시는 부모님을 보면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그래도 두려운 마음이 든다면, 이제 와서 어쩔 텐가?

눈 딱 감고 일단 풍덩 빠져들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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