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말미잘 Aug 14. 2024

저 이제 술 마실 수 있습니다.

반가운 소식

1년 가까이 지속되어 왔던 금주령이 해제됐다. 둘째가 생겼기 때문이다.

임신 12주 차. 심장박동수도 안정적이고 초음파로 아이 모습도 확인했다. 의사 선생님이 말씀해 주시기 전에는 어디가 머리고 어디가 다리인지 잘 구분되지 않는 꼬물이가 아내 뱃속에서 자라고 있다.

전에 글에서 둘째를 가지길 원한다고 소원한 적 있다. 이제야 이루어졌다. 나의 브런치를 알고 있는 지인들에게 이렇게 소식을 전한다.


우리 첫째 아이는 요즘 좀 잠드는 시간이 늦어져 8시 반에서 9시에 잠자리에 든다. 보통 6시에서 7시쯤 일어나니 낮잠 자는 1~2시간을 합치면 보통 11~12시간 잠을 자는 셈이다. 매일 충분히 자고 일어나서 그런지 하루 종일 에너지가 넘친다. 나도 12시간씩 자면 에너자이저가 될 수 있는 걸까?

우리 부부 둘 다 아이를 돌보다 피곤함으로 거실 아무 곳이나 널브러져 있는 날이면 아내는 때로 이렇게 묻는다.

"우리, 괜찮은 걸까?"

"뭐가?"

"하나로도 이렇게 힘든데 둘이면 더 힘들지 않을까?"

"괜찮을 거야."

무심한 말로 아내를 달랜다. 아내는 둘째가 태어나면 삶이 너무 고되지 않을까 걱정하지만 나는 이미 받아들이기로 했다.

'당연히 힘들겠지.'

속으로 말을 삼킨다.


둘째가 태어나면, 첫째를 키울 때 지나쳐왔던 그 모든 어려움에 더해서 첫째를 돌봐야 하고, 첫째와 둘째의 조합이 만들어낼 또 다른 힘듦이 있으리라. 아는 누나는 아이 둘을 키우며 여행을 가지 못하게 된 것을 아쉬워했다.

"애 하나만 있을 땐 다 갈 수 있어. 나도 그때는 애기 데리고 어떻게 여행을 가나 싶었는데, 갈 수 있어. 그때 가둬야 해. 애가 둘이면 당분간 여행은 끝이야. 갈 수 있을 때 가."

다행히도 나는 여행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그러나 포기해야 할 것이 여행뿐일 리 없다.


둘째는 분명 우리가 가까스로 숨 쉬던 육아의 틈마저  막아버릴 것이 분명하다. 취미 생활은 그리운 꿈이 될 거고, 하고 싶었는데 미루어 왔던 일이 있다면 아득해질 것이다. 쉴 시간이 더 사라질 것이고, 간간히 연락을 주고받던 지인들과의 만남도 싹둑 잘려나가겠지. 무엇보다 늘어나는 집안일에 치이게 되겠지. 

육아라는 게 이런 걸까? 하고 싶은 일들을 모두 '애 크면'으로 미뤄놓고 막상 애가 크면 하고 싶은 일을 다 하기엔 너무 나이 들어 버리는 건 아닐까? 아이와 가족을 위한 삶을 살다가 나라는 사람을 잊어버리는 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육아를 희망했고 둘째를 바라던 나조차도 좀 무섭다.


그러나 괜찮을 것이다. 아내를 달랬던 말을 다시 한번 쓴다.

물건을 사기 위해 돈을 내듯이,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시간을 들이듯이, 아이를 키우기 위해 돈과 시간을 내는 것뿐이다. 어려울 것 없다. 우리는 돈과 시간을 쓰는 일에 익숙하다. 다른 점이라면 나를 위해 썼던 돈과 시간을 가족과 아이들을 위해 쓰게 된다. 하지만 그건 나의 소멸이 아니라 확장이다. 더 어려운 조건에서도 나와 동생을 키워냈으며 여전히 우리 형제를 사랑해 주시는 부모님을 보면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그래도 두려운 마음이 든다면, 이제 와서 어쩔 텐가? 

눈 딱 감고 일단 풍덩 빠져들어야지. 

작가의 이전글 AI와 함께 세련된 수업을 찾아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