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퇴를 쓰고 집에 가는 길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자동차 창문에 작은 물방울들이 생기더니 제법 투두둑 소리가 난다. 오늘 비 예보가 있었던가?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우산을 꺼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람들은 맑은 날 연기라도 하려는지 비가 오지 않는 것처럼 묵묵히 길을 건넌다. 자세히 보면 걸음이 조금 빨라진 것 같기도 하고.
아침에 우산을 챙기지 않은 날 비는 당황스럽다. 어린 시절 나는 좀 산만한 타입이었다. 엄마가 챙겨준 우산도 현관에 두고 가는 경우도 많았다. 우산 없이 마주치는 비가 잦았다. 엄마는 멀리서 근무했으니 그런 날이면 1541 콜렉트콜로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가 늘상 데리러 올 수는 없다. 아빠가 못 오는 날들이 더 많았다. 아빠는 그냥 비 좀 맞고 가라고 했다. 그래. 비는 오고, 우산도 없는데 무슨 방법이 따로 있었을까? 아빠한테는 알겠다고 씩씩하게 대답하고는 처마에 숨어 비가 그치길 기다렸다.
그럼 가만히 서서 사람들 구경을 했다. 우산을 들고 온 꼼꼼한 학생들은 우산을 쓰고 집으로 돌아갔다. 교문 앞에서 우산을 들고 서있던 엄마들도 아이들과 함께 사라졌다. 나와 같이 콜렉트콜 전화를 하고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던 애들도 하나둘 부모님 차를 타고 떠났다. 처마 밑에는 나 혼자 남았다. 때로 비가 그치는 날도 있었으나 비가 그치지 않는 날도 있었다. 책이 젖을까 봐 가방을 앞으로 매고 울면서 걸었다.
우산을 챙기지 않은 과거의 나를 비난했다가 오지 않는 아빠를 원망한 후에는 혼자 남은 내가 불쌍해서 울었다. 집까지는 걸어서 30분 거리. 아무리 뛰어도 비가 오면 머리가 젖었다. 제일 싫은 건 신발과 양말이 젖는 거였는데, 싫어도 어쩔 수 없었다. 어느 놀이공원 어트랙션의 노래처럼 옷, 머리, 신발, 양말이 다다 젖는 거다.
웃긴 건 그렇게 머리도, 신발도, 양말도 다 젖고 나면 비를 맞으며 걷는 건 꽤나 재밌었다. 걸을 때마다 양말 사이로 물이 빠져나왔다. 나중에 감기에 걸릴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젖은 머리도 시원하고 좋았다. 노래도 흥얼거렸다. 보나 마나 생쥐꼴이었겠지만 아까 다들 집에 가버렸으니 어차피 길가에는 아는 사람도 없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비 맞는 게 좋은 아이였다. 아니, 비 맞는 걸 싫어하는 어린아이도 있나? 그런데도 울면서 빗길을 걸었던 건 그저 비교에서 오는 허황된 감정이었을 것이다. 다른 애들은 우산을 챙겼는데, 다른 애들은 부모님이 데리러 오시는데. 비교가 낳은 부러움은 나를 쉽게 자기 연민에 빠트렸다.
어른이 된 후로는 갑작스러운 비를 맞닥뜨릴 일이 별로 없었다. 우산을 준비하거나, 가까운 곳에 차가 있거나, 꼭 필요하다면 근처에서 우산을 샀다. 그러나 다시 비가 오더라도 더 이상 울지 않는다. 흥얼흥얼 콧노래나 부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