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를 향해 시위를 당기는 궁사를 보았다 곧게 당겨진 화살이 궁사의 몸속을 통과하여 가라앉는 것을 보았다 화살이 가라앉는 사이 세상은 떠다닌다 책들 새들 거울들 가벼운 웃음과 쉬운 분노들 삶은 소란스럽다 파도가 출렁이는 삶에도 일순간 멎는 고요가 있어야 한다며 숨을 깊게 마시고 물속을 훑는다 저 밑바닥에 화살이 닿을 때까지 몸속에 물이 가득 찰 때까지 온 세상이 잠길 때까지
이윽고 화살이 닿으면
놓는다
화살은 떠나고 눈은 떠나지 않는다 표는 앞에 있다 표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지 바다는 궁금해하지 않는다 파도를 계속 보내면서 궁사는 서 있다
숨은 얼마나 참아야 합니까?
바다는 답이 없다
바다에 답이 있을 리가 없다고
파도가 꾸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