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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미잘 Oct 29. 2024

내 아이의 친구들

학부모님께 거는 전화는 항상 긴장된다. 걸기 전에 통화 버튼을 한참 응시하다가, 누른다. 말씀드릴 내용은 J요즘 친구 관계에서 겪고 있는 어려움이다.

J가 속한 3인방이 있다. 서로 어울려 지내다 나머지 둘이 J에 대한 불만이 생겼다. 얘기를 들어보니 몇 달 전부터 이런 갈등이 지속되어 왔고 그동안 셋이서 관계 회복을 위한 노력도 해봤지만 실패한 모양이다. 그래, 사람이 쉽게 변하질 않지. 다른 친구들은 J를 빼고 둘이서 어울렸으면 하는데 J는 3인방을 떠나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렇다고 대놓고 "너 저리가."라고 말할 수 없는 두 친구는 어정쩡하게 3인방을 유지하고 있다. 당연하게도 어정쩡함은 J에게 상처로 돌아온다.

학부모님은 해당 내용에 대해 잘 알고계신 상태였다. 안그래도 내게 전화를 해야하나 하고 고민하고 계셨다며 J가 많이 힘들어 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자신의 자녀에 대한 답답한 마음을 밝히시면서도 나머지 두 아이들에 대해 '나쁜 아이, 이기적인 아이'라고 표현하셨다. 통화는 서로 계속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기로 하고 마무리되었으나 나는 마음이 불편했다.


초등학교 4학년 여자아이들은 사춘기의 시동 정도는 걸고 있는 것이 틀림 없다. 사춘기까지 운운하지 않더라도 또래 관계가 중요해지고 무리 개념이 자리잡는 시기다. 동시에 아직은 관계 맺기에 미숙해서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하거나 관계의 선을 넘는 실수를 하기도 한다. 하여 개별적인 차이는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 4학년 어린이들의 사교 수준은 고만고만하다. 더군다나 삼삼오오라서 어떤 아이를 나쁜 아이라고 표현한다면, 내 아이도 비슷한 행동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서 제 얼굴에 침뱉기일 뿐이다.

그러나 내가 마음 불편했던 지점은 자신의 친구에 대한 부모의 부정적인 평가를 아이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아이가 아무리 자세히 자신의 학교 생활에 대해 얘기하더라도 부모가 전해들을 수 있는 이야기는 단편적일 수 밖에 없다. 그러니 학부모님의 마음 속에 J의 친구들이 이미지로 형성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어린이들에게는 어린이들의 삶이 있다. 삶은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며 우리는 시간 속에서 다양한 순간들을 살게 된다.

J는 다른 두 친구들과 함께 하는 것이 불편하고 때로 상처받기도 하지만 함께 웃고 즐기는 순간도 있다. 나머지 두 친구도 J를 밀어내고 싶긴 하지만 J에게 먼저 다가가는 순간들도 있으며 함께 하는 것이 즐거울 때도 있다. 어린이의 세계에서는 친구에 대한 불만과 서운함, 즐거움이 혼재되어 나타난다.

그러므로 어른이 해야할 것은 아이 대신 아이의 친구들에 대해 '착한 아이','나쁜 아이'처럼 거칠게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감정을 존중해주는 일이어야 할 것이다.

아이는 부모의 단호하고 일관된 평가에 혼란스럽다. 자신이 본 친구의 모습과 부모의 평가 사이에서 갈등한다. 부모가 나쁘다고 평가한 아이와 함께 노는 것이 즐거운 이유에 대해 설명할 수가 없다. 재밌게 놀았지만 부모 앞에서 계속해서 나쁜 아이가 되는 친구를 이해할 수도 없다.

어떤 부모도 친구에게 휩쓸리는 자녀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반대로 친구를 마음대로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조절이다. 우선 아이의 삶이 그대로 존중받아야 한다. 그런 후에야 조절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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