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글
세 번째 이직을 할 때까지만 해도 나는 직장인으로서 성공한 삶을 꿈꿨다. 연봉을 높이고, 승진을 하고, 임원이 되고, 그 커리어를 인정받아서 45살쯤에는 한 5개 회사에서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월급을 받는 대성공한 월급쟁이가 되는 것!
꿈도 참 야무졌지. 그동안 쌓아온 커리어를 돌아보면서 혼자 만취했던 것 같기도 하다. 홍보, 브랜드 마케팅, 제휴 마케팅, 파트너십이라는 다양한 직무를 각기 다른 분야의 기업에서 경험했으니 다음 업종은 어디로 가볼까? 하면서 한잔 더, 한잔 더를 외쳤달까.
업종을 넘나드는 이색적인 콜라보가 눈길을 끄는 시대인만큼, 더 많은 업종과 직무를 경험하면 그만큼 날 찾는 곳도 많아지겠지? 더 많은 인적 네트워크와 업무 경험이 프리랜서의 삶에 한 발씩 가까워지는 길이라 철썩같이 믿었다.
어느 한 직장에 묶이지 않고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 어느 장소에서 어떠한 형태로 일하든 눈치 볼 필요 없는 디지털노마드의 삶, 그러면서도 안정적인 고정 수입을 벌어 들일 수 있는 라이프 사이클을 실현하는 게 나의 큰 꿈이었다.
한동안 오매불망 쫓아다녔던 구글코리아 김태원 상무님의 강연에서 들었던 진정한 자유, 내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자유! 그 자유를 얻기 위해 햇살 좋은 봄날 날씨가 어떤지도 알 수 없는 사무실에 처박혀 내 청춘을 보낸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직장인 8년 차에 접어든 나는 성공이고 나발이고 그냥 이 지긋지긋한 직장 생활을 때려치우고 싶어 졌다. 이대로 악착같이 버텨서 직장인의 끝판왕까지 올라간다 하더라도, 남의 돈 벌면서 진정한 자유를 찾겠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모순이다.
회사 빼면 시체인 삶. 직장이 내 평생을 책임져주지 않는데, 마치 그럴 것처럼 살아내고 있는 나의 삶에 문득 공포감이 몰려왔다. MZ세대가 이른 퇴사를 하고, 나 자신을 브랜딩 하는데 열을 올리는 이유가 다 있다. 부캐를 키우며 이를 가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거다.
근데 나는 대체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거지? 주말을 위해 5일을 희생하는 삶. 그래도 이 월급이라도 버니까 맛있는 것도 먹고, 여행도 다니고, 취미생활이라도 할 수 있는 거라 자위하며 일요일 밤에는 다음 주 어떻게 버티나 우울해하고, 다 이러고 사는 거지 반복하면서 다시 또 월요일이다.
그러고 보니 취업을 하고 직장인이 된 이후에는 진지하게 내 삶에 대해 고민했던 적이 없었다. 이직 시기에 주어지는 짧은 휴가는 그동안 소진해버린 에너지를 채우기 위한 보상심리로 미친 듯이 여행을 다니면서 보냈고, 그러곤 또다시 이번 회사는 다르겠지 하는 희망으로 출근을 했다.
지금보다 조금만 더 벌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더 벌어도 개 같은 건 마찬가지였다. 이직을 자주 했던 것도 직장 생활을 통해 느끼는 성취감, 일의 재미나 보람 같은 게 2년을 꽉 채우면 리셋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남들 하는 건 다 하고 살고 싶고, 친구들 생일에 선물 정도는 고민 없이 보내고 싶다는 이유로 나를 채찍질했다.
근데 그 채찍이 얼마 전부터 안 통하기 시작했다. 이직과 직장인으로서의 성공에 열을 올리던 내가 해를 거듭할수록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다. 물론 그런 생각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발목을 잡는 건 신입일 때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바로, 카드값과 불안감.
그래, 카드값은 솔직히 퇴직금이 나오면 갚을 수 있는 범위이니 넘겨보기로 한다. 그렇다면 불안감. 얘는 어떡하지 진짜? 일단 월급쟁이가 아니면 뭘 해 먹고살지에 대한 대책이 없으니 불안하다. 게다가 지금까지 직장인이었기에 안정감 있게 영위할 수 있었던 모든 것들을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해진다.
고정 수입 따위 놓아버릴 수 있는 용기도 부족하고, 회사 등에 업고 일하고 사람들 만날 때랑 무명인 내가 맨땅에 헤딩할 때랑은 차원이 다르다는 것도 뼈저리게 안다. 코로나 시대에 갑자기 치킨집이나 카페를 창업할 수도 없고, 대유행인 코딩은 시작했다가 두 번째 날쯤 포기할게 뻔하다.
그럼 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월급쟁이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 먹고사는데 도움이 될만한) 핵심역량은 무엇인가? 10년 넘게 운영해온 블로그는 상업적으로는 이용할 생각이 없기 때문에 이걸로 돈을 벌 수는 없고, 유튜브도 하고 있지만 거의 남편과 일상 기록 남기기 수준이라 탈락이다.
갑자기 대학생 때 하던 고액과외를 하려니 지금은 학종도 많이 달라졌고, 나의 주요 과목이었던 고전문학도 손을 뗀 지 너무 오래되어서 나랏말싸미부터 다시 공부해서 가르쳐야 할 것이다. 쇼호스트 아카데미 시절에 배웠던 보이스 코칭을 하려고 해도 코로나 시대에 수업이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동안 뭘 많이 하기는 했는데 이거다!라고 밀고 갈만한 게 딱히 보이지 않는다. 직장을 다니다가 때려치우고 제주도에서 게스트하우스를 하거나, 홍천 숲 속에 감성 숙소를 오픈하거나, 창업을 해서 시드 투자를 받는 사람들은 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을 한 걸까.
평생직장도 없고, 퇴직도 빨라진 시대. 어제와 오늘의 변화를 따라가기가 버거운 시대에 살고 있다. 이렇게 살면 안 될 것 같아서 기록을 남긴다. 이러다 갑자기 퇴직해야 될 나이가 돼서 고민에 빠지기엔 너무 늦는 거 아닐까. 뭐라도 계속 고민하다 보면 이거다 싶은 게 나오겠지.
하나 분명한 건, 내게 주어진 삶을 더 이상 억지로 버티며 살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출근하기 싫어. 퇴근하고 싶어. 이 말을 달고 살면서 왜 나는 계속 불행을 자초하고 있는 걸까. 불행을 인지하고 있으면서 똑같은 방식으로 대응하다가 죽음의 문턱에서 후회하는 삶을 살지 않겠다.
월요일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살아있음에 감사를 느낄 수 있는 생의 기쁨을 만끽하는 삶을 살 것이다.
자, 목표는 정했으니 세부계획을 짜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