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쟁이가 최고라는 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만

남편과 싸운 날, 전날 술을 너무 많이 마신 다음날... 의도치 않게 월급루팡을 하게 되는 날들이 있다. 나는 이런 날, 지금 내가 대표면 어떨까 생각하며 마음을 다 잡는다. 내가 만약 감성 숙소를 운영하는 사장님이라면 전날 숙취로 토하면서도 객실 정비와 손님맞이를 해야겠지. 루팡 같은 건 꿈도 꾸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월급쟁이가 최고지!" 라며 버텼는데 이제는 월급으로도 돌려 막을 수 없는 지점에 와버렸다. 내 돈을 버는 일이라면 토하면서 뭐라도 하겠지. 남의 돈을 번다는 건 이렇게 약간의 위안이 되는 날이 있는 반면 대부분의 날들이 지옥이다. 평가, 경쟁, 실적 압박 등으로 꽉 조여진 보정속옷 같은 조직생활이여..

사실 나는 세 번째 회사에 이직을 하고 나서야 직장 생활에 포텐이 터졌다고 볼 수 있다. 신입사원 시절엔 평가가 좋을리 없었고, 두 번째 회사에서는 팀 평가 기반이라 개인의 퍼포먼스가 드러날 일이 적었고, 세번째 회사에서는 조직 내 포지셔닝, 성과 관리도 어느 정도 할 수 있는 업무 수준이 되어서 좋은 평가와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2년마다 겪는 매너리즘에 내가 조직 부적응자인 줄 알았기 때문에 평생 직장인으로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을 줄 알았다. 그래서 세 번째 이직을 하면서는 한번 잘해보고 싶은 의지도 강했다. 그동안은 없었던 그 의지 덕분인가? 나도 조직에 잘 적응해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사람이구나! 그걸 세 번째 회사에서 깨달았다.

근데 나란 늬연, 대체 뭐가 문제일까. 적어도 몇 년 전까진 월급쟁이 직장인 외엔 다른 삶의 방식에 대해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으니 이 삶이 맞겠지, 이게 최고겠지, 월급뽕 맞아가며 버티고 합리화하며 살아왔다. 문제는 이제는 내가 조직생활에 신물이 났고 그 어디로도, 다른 회사에는 가고 싶지 않아 졌다는 데 있다.

그리고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월급쟁이가 최고라는 건 이미 옛날 말이 되어버린 건 아닐까? 고정적이고 안정적인 월수입. 물론 그 분야에선 월급쟁이가 최고일 수 있다. 하지만 그 고정 수입을 나 스스로가 안정적으로 벌어낼 수 있다면? 월급쟁이가 최고가 아닐 수도 있다는 가설을 나 스스로 증명해낼 수 있다면?

그럼 나는 더 이상 누군가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도합 세 시간의 출퇴근 시간을 길바닥에 낭비하지 않아도 되고, 누군가가 답을 이미 정해놓고 도출해내기를 원하는 과정에 내 영혼을 갈아 넣을 필요도 없이 자유의 몸이 된다. 생각만 해도 너무 짜릿해서 몸서리를 치다가 이 희망 회로의 반대 경우를 생각하니 또 오싹해진다.

암튼 더 이상 불안에 떨 수만은 없으니 일단 뭐라도 해보기로 한다. 저번 글부터 세부 계획을 짜 보겠다고 했는데 아직도 제자리인 것 같겠지만 그동안 캐릭터 그리기를 시작했고(추후 내가 론칭하는 브랜드나 캠페인에 사용될 친구), 안주스타그램 계정을 오픈했으며(매일 먹고 마시는데 이걸 그냥 둘 수는 없으니 콘텐츠화 하자는 차원에서), 통영 달아마을 빈집살기 프로젝트에는 도전했다가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이런저런 새로운 활동에 도전해보며, 나는 보다 더 현실적인 대안을 짤 필요성을 느꼈다. 나란 늬연은 대안이 확실하거나 안정적인 월급쟁이 생활을 포기할 수 있을 만큼 매력적인 일이어야 퇴사가 가능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첫 번째 시작은 나의 블로그와 유튜브 콘텐츠를 선순환 유입 구조로 만드는 것, 두 번째는 상해에서의 경험을 떠올려 정부 지원 사업에 도전하는 것, 세 번째는 월급의 재투자가 되겠다.

워런 버핏 형님이 말씀하셨듯 자면서도 돈을 버는 방법을 한시라도 빨리 찾지 못한다면 나는 죽을 때까지 “이건 아닌데”를 반복하면서 살아야 할 것이다. 찾아내고야 말 거다. 내가 놀고먹고, 잠을 자고, 똥을 쌀 때에도 돈을 벌 수 있는 그 방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