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갑낫을 Dec 24. 2021

땅을 보러 다니는 중입니다.

인생 2막 준비위원회

뭐라도 해야겠다는, 해야 한다는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내 인생에 있어서 내가 그 타이밍을 자각한 첫 번째 시기는 중3 즈음이었을 거다. 친구들이 선행학습한다고 수학의 정석이 어렵네 마네 했을 때, 나는 수학의 정석이 뭔지도 몰랐었다.


그때 갑자기 마음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끓어올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성적엔 별 관심도 없던 내가 이대론 아니 되겠는데? 뭐라도 해야 되겠는데? 싶었다. 매우 뜬금없이 이제부터 공부에 집중해서 좋은 대학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별다른 공부 방법을 몰랐던 나는 시험 때가 되면 교과서를 통째로 외워버렸다. 수학 교과서에 있는 풀이 방식을 외우고, 영어 지문을 외우고, 사회나 가정 같은 과목도 그냥 냅따 교과서를 다 외워서 시험을 봤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때 사법고시 같은걸 준비했어야 하는 게 아니었나 싶다.


아무튼 갑자기 내 안에 결심이 서고 나니 모든 일이 일사천리였다. 고등학교에 진학하자마자 이전과는 다른 삶이 펼쳐졌다. 나도 모르는 새에 전교에서 등수를 앞다투는 사람이 되어 있었고, 난 글로벌 인재가 될 거라면서 아이비리그에 진학해야겠다는 맹랑한 꿈도 꾸게 됐다.


사람이 역시 꿈을 크게 가져야 그거에 반에 반이라도 되는 거 같다. 아이비리그를 꿈꿨기에 인 서울 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그 이후로도 열정 하나 가지고 대외활동, 여행, 알바 등등을 끊임없이 해댔다. 그렇지만 그 이후 이렇다 할 결심이 서는 일은 별로 없었다.


그러던 와중 두 번째로 이거다 싶었던 일이 상해에 가는 거였다. 갈망하던 취업에 성공하고 인턴 생활까지 잘하고 있던 내게 상해에서 글로벌 청년 창업 활성화 사업을 통해 정부 지원을 받으며 3개월간 살아볼 수 있는 기회가 왔고, 나는 고민 없이 상해를 선택했다.


그렇게 상해에서 계속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사람 인생 진짜 한 치 앞을 모른다. 나는 그 프로그램이 끝나고 다시 평범한 직장인이 되었다. 한 직장에 오래 다닐 깜냥이 안돼서 이직도 두 번이나 하고 출근하기 싫어, 퇴근하고 싶어 반복하면서 버텼더니 벌써 내년이면 직장인 10년 차다.


지난번 글부터 이렇게 살면 안 될 거 같다고 징징거렸는데 진짜 안될 거 같아서 10일간의 리프레시 휴가를 다녀왔다. 긴 휴가를 다녀오고 나면 카드값의 압박을 체감하며 리프레시가 되어야 하는데 마음속에 뜨거운 무언가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건 왜일까.


해남 설아다원에 머물 때의 일이다. 해남 설아다원은 판소리와 다도 선생님을 하시는 사모님과 만 오천 평의 녹차밭을 가꾸며 숲해설가를 하시는 사장님이 운영하시는 곳인데, 체크아웃하는 날 사모님이 해주신 말씀이 우리 부부의 정수리를 후려쳤다.


“요즘은 세상 사는 방법이 많이 다양해졌잖아요. 조금만 용기를 내면 진짜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어요. 인생 짧아요. 지금까지 정말 원하는 대로 살아봤던 적 있어요? 이젠 두 사람도 진짜 원하는 삶이 뭔지 한번 고민해봐요.”


두륜산 산자락을 바라보며 우전차를 내려 마시던 그날의 대화가 나를 다시 행동하게 했다. 그날 이후 우리 부부는 틈만 나면 땅을 보러 다니는 중이다. 인생 2막은 지금까지 살아왔던 포장도로에서 하차해 울퉁불퉁하고 덜컹거리는 옆길로 새어보자고 결심했기 때문이다.


지금 하지 않으면 너무 늦거나, 지나온 10년을 똑같이 반복하며 살아낼게 뻔하다. 내게 주어진 생애를 그렇게 꾸역꾸역 보내다 갈 순 없다. 조직 밖에서, 스스로의 고민과 행동으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해 낼 수 있는 자생 능력을 키우는 것이 우리의 첫 번째 미션이다.


무섭고, 설렌다.




작가의 이전글 월급쟁이가 최고라는 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