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2막 준비위원회
작년 여름부터 겨울까지 우리 부부는 토지 매매와 소형 주택, 이동 주택 구매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더 이상 누군가의 눈치를 봐가며, 평가를 당해가며, 평생을 사무직으로 썩을 순 없으니 뭐라도 일을 벌여보자는 의기투합에서였다.
오랜만에 SWOT 분석과 시장조사까지 하며 감성숙소 사업을 시작해보자는 계획이었다. 여행에 미친 부부다운 결정이었다. 그렇게 포천부터 여주까지 땅이란 땅은 다 뒤져가며 평일엔 네이버 부동산에 살고, 주말은 현장 답사를 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땅이란 것이 참 신기한 게 한번 보면 다르고, 두 번 보면 또 다르다. 같은 땅인데 답사를 갈 때마다 매번 다르다. 그리고 토지의 용도와 허가란 그리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었다. 계획관리, 생산관리 지역에 따라 건폐율이 다르고 펜션업과 농어촌 민박업의 허가 조건이 다르고, 이 모든 게 또 지역마다 조금씩 달랐다.
모두가 처음부터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수많은 실패와 공부가 필요하겠지만 멘땅에 헤딩하며 큰돈까지 태우려니 쫄보 부부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발목 잡는 두려움이란 녀석도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래도 이번엔 끝까지 해내고 싶어 친구들에게 멋들어진 감성숙소 하나 차려서 여유롭게 살거라 호언장담을 해두었는데..
아무튼 객기인지 끈기인지 모르겠지만 끝장을 보자며 길바닥에 기름을 뿌리고 다니던 우리는 결국 우붓을 떠올리게 하는 아주 마음에 드는 매물을 발견하게 된다. 당시가 겨울인지라 조금 을씨년스럽긴 했지만 앞쪽은 모두 논밭이고, 뒤쪽 민가 한 채와도 거리가 있고, 지적도로도 접해있는 완벽한 계획관리 토지!
심지어 토지는 일부 개간도 되어 있었고, 시청 허가 건축과에 이것저것 확인해봐도 걸리는 게 없었다. 우리는 몇 번이고 그 땅을 답사하며 "여기다! 드디어 찾았다! 이제 이동 주택 발주 넣고 사업자등록만 하자"는 야무진 꿈에 들떠있었다. 이 계획대로라면 22년 3월 가오픈, 6월엔 영업을 시작할 수 있고, 지긋지긋한 조직생활과도 안녕인거다.
그치만 돌다리도 일곱 번은 두들겨 보고 건너는 남편의 특성상 객관적인 검증 절차가 필요했다. 우리는 토지매매 관련 정보를 얻고 도움을 받았던 카페에서 전문가 선생님께 동행 답사를 요청했고, 눈발이 날리는 12월의 어느 날 운명의 땅에서 선생님을 만났다.
우리는 이미 계약한 우리 땅인 마냥 선생님께 이 땅의 장점과 앞으로의 포부를 밝혔다. "이제 곧 여름이 되면, 이 땅 앞은 전부 푸르른 논밭이 될 거고 그건 거의 우붓을 한국에 옮겨 놓은 거라고 할 수 있죠! 우붓을 그리워하는 모든 이들이 이 숙소를 찾아올 거예요."
"음.. 여긴 적합한 땅이 아니에요, 이유는..."
이제와 돌이켜보니 그 땅을 이미 계약하고 그 선생님을 만나게 아니라 얼마나 다행이던지. 선생님이 조목조목 말씀해주신 이유들 하나하나가 우리가 우붓 타령하느라 놓치고 있었던 부분이라 소름이 쫙 끼치면서 수긍을 할 수밖에 없었던 그날. 우리는 앞으로 돌다리는 무조건 열 번은 두들겨 보고 건너자고 다짐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