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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돈은 없어.

by 비갑낫을


“학업에 관련된 걸 제외하고, 용돈이나 경제적인 지원은 없어.” 2007년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엄마가 선포했다.


아니 내 친구는 엄빠가 주는 용돈으로 어제도 네일을 받고, 미팅 나갈 때 입을 옷을 잔뜩 쇼핑했는데 이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인지.


게다가 중고등학교 시절 내내 부모님이 하라는 대로 꾸역꾸역 공부해서 이제야 대학교에 왔는데 무슨 공부를 더 하라는 것인가.


그렇지만 엄마가 그렇게 선포한 이상 상황이 바뀔 것은 없다는 것을 잘 알았기에 나는 멘붕을 느낄 새도 없이 알바 구하기에 나섰다.


오히려 잘됐다 이거야. 내가 번 돈으로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면 뭐라고 안 할 테니 내 스타일 짧은 치마 여러 개 사고, 여행 가고 하고 싶은 거 다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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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무슨 알바를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마침 학교 앞에 오픈한 미스터피자 서빙 알바에 지원했고, 그렇게 나의 첫 아르바이트 인생이 시작되었다.


파트타임 알바였기 때문에 근무 스케줄을 매니저 언니가 짜주었고, 그 시간에 맞추어 일을 하면 되는 거였는데 개인적으로 난 오픈조가 더 좋았다.


마감조는 청소가 너무 빡세서 매장 청소는 물론이고 손님들이 걸어 다니는 입구부터 2층 계단까지 걸레질을 해야 했는데 이때 약간 현태가 쎄게 왔기 때문이다.


아니 내 방걸레질도 해본 적이 없는데 여기에서 왜 피클 국물 떨어져서 찐득한 계단을 닦고 있는 거지? 돈이 무섭다는 걸 처음 느꼈다.


당시 미스터피자는 샐러드바를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알바생의 임무는 샐러드바 관리 및 주문받기, 서빙하기 정도였다.


이때 우리 매장은 손님이 별로 없거나 배고프면 알바생들이 샐러드바 메뉴들과 탄산음료를 자유롭게 먹을 수 있었고, 당시 같이 일하던 사람들이 너무 좋은 사람들이었다.


특히 자기 가게인 것처럼 맡은 일을 묵묵하고 싹싹하게 잘 해내는 매니저 언니와 정직원과 알바들을 차별 없이 살뜰하게 챙기고


문제가 발생하면 누구보다 먼저 나서서 해결해 주는 부지점장 오빠를 보면서 나도 언젠가 저런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몇 개월만 하고 그만두지 뭐! 했던 미스터피자 알바는 더 적은 시간을 투자하고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일자리를 구하기 전까지 무려 1년 6개월이나 했다.


출퇴근 시간이 찍히는 카드를 빼곡하게 채우면 시급으로 계산된 월급을 받게 되는데 그렇게 번 돈은 막 쓸 수가 없더라.


내 시간과 노동이 고스란히 녹아든 돈을 네일과 쇼핑, 음주가무에 모두 쏟아부을 수는 없었다. 신중하고 또 신중하게 돈을 쓰는 습관은 아마도 이때 깃든 것 같다.


한국 스타일로 키워놓고 갑자기 미국 스타일로 경제적 독립을 말하는 거에 분개했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우리 엄마의 용돈 지원 불가 정책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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