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원석 Sep 07. 2023

디자이너는 어떻게 완성되어 가는가


디자이너의 일상

디자인 작업을 하다 보면 정말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아마 사람 상대로 일을 하는 모든 직업이 그렇겠지만 얼굴 한 번 보고 지나치는 일이 아니고 소통을 해야 하고 일정을 잡아야 하고 납품까지 하는 모든 과정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일을 하면 할수록 사람에 대해 연구하게 되고 생각하게 된다. 내가 만든 제품이나 작품을 판매하는 것과는 다르게 상대방이 의뢰한 일을 완성하고 만족시키는 일은 늘 어렵다. 세상 모든 사람이 다 다르듯 모두의 취향 또한 다 다르다. 심플한 걸 좋아하는 사람, 화려한 걸 좋아하는 사람, 무채색을 좋아하거나 컬러풀한 걸 좋아하거나. 어떤 때는 본인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를 때도 있다. 이런 복잡한 상황에서 디자이너는 결과물을 만들어야 하고 더 나아가서는 그 디자인이 소위 먹히게끔 해야 한다. 이 과정이 물 흐르듯 넘어가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굽이굽이 울퉁불퉁 우왕좌왕 진행된다. 그래도 좋은 결과(디자이너도 소비자도 만족하는)로 이어질 때는 만족감이 크지만 나쁜 결과(결과적으로)로 이어질 때면 말할 수 없는 무기력감이 들기도 한다.


안목 기르기부터

디자인은 옷을 골라주고 입혀주는 코디네이터와 같아서 그 사람의 체형, 성향, 직업, 성별을 파악하고 집요하게 분석해야 한다. 머리끝에서부터 아무도 보지 않는 신발 밑창까지 정체성과 어울림을 잘 버무려야 한다. 그래서 디자이너는 관찰 능력이 중요하다. 맥락을 파악하는 힘을 길러야 하고 숨은 맥락까지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사람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너무 거창한 얘기 같지만 사실이다. 디자인을 하려면 디자인 관련 책뿐만 아니라 인문학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어떤 디자인이든 사람으로부터 나오지 않은 것이 없고 그 디자인을 소요하는 것 또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디자인을 잘하려면 안목을 길러야 한다.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즐길 줄도 알고 소비할 줄도 알아야 한다. 전시관 관람, 영화 관람, 여행, 직업 체험 등 여러 경험을 해야 한다. 경험이 곧 힘이고 많이 보는 것이 안목을 기르는 방법 중 하나다. 주의할 것은 볼 때 꼭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관찰하고 경험할 때 생각을 해야 한다. 왜 저렇게 했을까. 좋은 디자인은 왜 좋은 것인지, 그렇지 않은 디자인은 왜 그런 것인지, 저 디자인은 어떻게 상상하게 하는 것인지, 이 디자인은 왜 불편한 것인지. 비교하고 생각하며 좋은 디자인, 완성도 있는 디자인을 알아볼 수 있도록 안목을 길러야 한다.



프로그램은 일단 접어두고

프로그램을 잘 다루는 것은 기본 중에 기본이지만 프로그램을 잘 다룬다고 해서 디자인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하는 디자인을 잘 아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어떤 디자이너고 어떤 디자인을 하고 있으며 어떤 디자인까지 할 수 있는지. 내가 할 수 있는 디자인 범위 내에 이 프로젝트를 어떻게 완성할 건지 생각해야 한다. 결국 기술 이전에 철학이다. 내 디자인 철학이 확립되어야 어떤 디자인이든 할 수 있다. 프로그램은 해야 하는 게 분명해지면 그걸 구연하기 위해 배우고 익혀서 표현하면 되는 것이다. 프로그램을 익히는 것을 소홀히 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밸런스를 잘 맞춰야 한다는 얘기다. 디자인 철학이 먼저고 프로그램은 나중이다. 결국 다양한 사람을 만족시키는 디자인은 다양한 경험과 디자인을 시도하며 얻은 축적된 데이터가 쌓여서 잘 표현될 때 가능한 것이다. 그 경험은 책상에만 앉아서 컴퓨터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몸을 움직여 경험해야 하고 찾으러 다녀야 한다. 사람이 살아가고 소통하는 모든 과정 속에서 디자인의 맥락을 발견할 때 디자인에 대해 조금 알아가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나만 할 수 있는 디자인

그렇게 디자인에 대해 축적된 경험과 기술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이제는 내 디자인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디자인, 나만이 할 수 있는 디자인을 발견하고 지금 하고 있는 디자인이 내 디자인인지 타인에 의해 만들어지는 디자인인지 알고 디자인해야 한다. 그렇게 분별력 있는 디자인을 할 수 있어야 그때부터 내 디자인, 나만의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는 작업들을 해나갈 수 있다. 생각해 보면 모든 일이 비슷한 것 같다. 비단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모든 직종이 결국 같은 맥락이다. 경험을 해야 하고 기술을 익히고 내 것을 찾는 과정. 그렇게 완성해 갈 때 내 생각을 잘 전달할 수 있고 타인의 생각 또한 경청하고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말은 이렇게 쉽게 하지만 내게도 디자인은 늘 어려운 영역이다. 어떤 부분은 찾았고 어떤 부분은 아직 찾아가는 과정 속에 있다. 디자인 경력이 많다고 해서 마냥 잘하는 디자이너는 아니다. 작업을 할 때 더 깊고 넓게 생각하는 자세로 임할 때 성장하는 디자이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조금만 더 브랜드하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