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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석 Jan 18. 2024

비빔밥 같은 일상

일상의 힘


뒤늦은 코로나는 이상한 두통과 어지러움을 동반했다. 다행히 콧물과 기침은 많이 나오지 않았다. 사람들 말을 들어 보면 증상이 다 제각각이다. 기침을 너무 심하게 해서 목이 갈라지는 듯한 느낌, 수영장에서 코에 물이 들어가고 난 후의 기분 나쁜 찡함, 맛을 잘 못 느끼는 미각의 문제 등 사람마다 비슷한 경우도 있고 다른 경우도 있다. 난 이 중에서 코에 물이 들아간 기분 나쁜 두통을 며칠간 겪었다. 어지러움증이 기본적으로 있는데 증상이 심해지니 더해졌다. 그래도 어찌어찌하여 코로나는 지나갔다. 죽을 것 같이 아프고 하루가 일주일 같던 격리 생활도 언제 그랬냐는 듯 벌써 추억이 돼 버렸다.


내가 하는 그래픽 디자인 일은 바쁠 때가 몇 번 있는데 3월, 5월, 7월, 10-12월이 그렇다. 그중에 11-12월이 가장 바쁜데 작년도 어김없이 어디서 알고 그렇게 연락을 하고, 일을 주시는지 감사하게도 정말 많이 바빴다. 단순히 디자인만 하는 게 아니라 디자인부터 인쇄까지 하는 경우가 많아 인쇄, 배송 시간까지 생각하고 작업을 해야 한다. 1인 디자인 회사라 혼자 여러 일을 하다 보니 바쁠 때는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그래도 바쁜 게 좋다. 바빠야 일을 많이 하고 일을 많이 해야 수입이 생기기 때문에 그렇다. 일이 없는 게 더 고역이다. 그래도 바쁠 때 힘든 건 어쩔 수 없다.


지난주에 코로나를 겪고 이번 주 월요일부터 작업실에 나왔다. 오랜만에 와서 바닥도 쓸고 이것저것 정리하고 일을 조금 하고 퇴근했다. 다음 날 왔는데 바닥에 물이 고여 있다. 웬 물이지? 하며 마포로 닦는데 천장에서 물방울이 톡 떨어진다. 위를 쳐다봤다. 작업실 인테리어 하면서 천장을 노출로 마감했는데 1m가량 길게 물이 번져 있다. 그리고 맺혀 있던 물방울이 아주 천천히 톡 떨어진다. 아뿔싸. 큰일이다. 다른 곳을 둘러 보니 몇 군데 물의 흔적이 더 있다. 작업실에 컴퓨터, 스피커, 건반, 일렉 기타, 베이스 기타 등등 전자 제품이 많다 보니 걱정이 들었다. 주인 할아버지께 말씀을 드리고 만나서 함께 본 후 퇴근을 했다.



다음 날 와 보니 물이 더 번져 있고 물방울도 더 많아졌다. 툭툭 떨어지는 물방울을 받으려고 다 먹은 아몬드 빈 통, 한라봉청 유리병 등을 가져와 바닥에 놓았다. 안 그래도 3층에서 물이 새는 일이 있어 날이 풀리면 주인 할아버지께서 외벽 방수 공사를 할 계획이었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1층 천장에서 물이 새니 나도 당황했지만 할아버지는 더 놀라셨다.


어제 급한 디자인 작업이 있어 저녁부터 새벽까지 집에서 일을 했다. 늦은 출근을 하려고 준비 중인데 주인 할아버지께서 설비 업자가 곧 오는데 작업실에 언제 올 수 있느냐고 전화가 왔다. 아내가 차려 준 아점을 급하게 먹고 작업실에 도착하니 2층 주인 할아버지 집에서는 이미 설비 업자가 탐지기로 물이 새는 곳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할아버지께서 내려와 물이 새는 곳을 찾았다고 말씀하셨다. 화장실 변기로 들어가는 수도관 연결 부위라고 하신다. 다행히 바닥을 깨거나 하지 않고 밖에 나와 있는 수도관만 고치면 되는 거라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고 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게 됐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거의 마무리 중이다.


작년 말엔 일 때문에 바빠서 힘들고, 연초엔 코로나에 걸려서 힘들고, 작업실 천장 물이 새서 힘들었다. 힘든 일은 길을 걷다 만나는 사람들만큼이나 흔하게 찾아온다.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그렇게 힘들다고 한 시간들이 어느새 지나가 있고 잊고, 잊히고 또 힘든 일을 만나는 반복되는 일상. 힘든 일은 늘 가까이에 있다. 그래서 이 힘든 일들은 사실 힘든 일이 아니다. 일상이다. 일상이 그런 것이다. 그래서 일상은 그냥 일상처럼 살아가면 된다.



1월은 비수기다. 일이 많이 없다 보니 또 걱정이 든다. 내야 할 돈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속절없이 시간은 평화롭게 흘러간다. 일상이다. 이 일상은 힘든 일이기도 하고 좋은 일이기도 하고 아무 일도 아닌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살아 있으면 되고 살아나가면 된다. 2024년 들어 정신없이 보내고 있는 날들이지만 그래도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아팠던 코로나가 일주일 만에 끝났고 작업실 천장에 물이 새는 것도 며칠 만에 잡혀 다시 일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비빔밥 같은 복잡한 일상과 일들이지만 막상 먹어 보면 맛있는 비빔밥처럼 이 일상이 나를 살 찌우게 한다. 버티는 힘을 기를 수 있게 하고 단단한 근육을 만들어 준다. 일상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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