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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석 Feb 07. 2024

지금껏 잘 버텨준 아들에게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에게


2007년 3월 16일, 출산 예정일보다 두 달 앞서 태어난 아이가 있었습니다. 몸무게는 894g. 세상 빛을 보며 힘껏 내 질러야 할 울음소리조차 짧은 신음소리로 대신하고 곧바로 인큐베이터에 온갖 기계 장치를 달고 삶과 죽음 가운데서 최선을 다해 살아난 아이. 바로 우리 둘째 아들 유민이 이야기입니다. 유민이가 벌써 17살이 되었습니다. 한국 나이로 하면 18살이겠네요. 담당 의사가 6살까지가 고비라고 했습니다. 그때까지 잘 버티고 6살을 넘으면 좋아질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유민이는 약 4살까지 마치 유치원을 드나들듯 응급실과 중환자실을 다녀야 했습니다. 함께하는 것 외에 유민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늘 웃으며 즐겁게 살아가는 유민이가 참 대견했습니다.


오늘을 기억하며 유민이를 그렸어요. @원석그림


올해 드디어 유민이가 고등학교에 진학합니다. 원래 나이로는 작년에 입학해야 했지만 초등학교를 1년 늦춰 들어가는 바람에 한 살 어린 동생들과 학교 생활을 해냈어야 했죠. 사춘기에 접어들어 간혹 외롭다는 말을 할 때면 마음이 미어졌습니다.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놀고 단체 생활도 원활하게 하면 좋으련만 유민이는 집 밖으로 나가면 모든 게 긴장 상태입니다. 타인과 대화하는 것, 자연스럽게 노는 것. 유민이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죠. 그래도 몇몇 친구들이 유민이와 잘 지낸다는 이야기를 듣고선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유민이는 고등학교 특수학급에 배정되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일반학급과 특수학급에 모두 속해 있어서 일반 학급 아이들과도 지내고 또 다른 시간엔 특수학급에서 진행하는 수업에 참여합니다. 진학 전 여러 고민이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잘 된 일인 것 같습니다. 비슷한 환경의 또래와 마음을 나누고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며 누구나 누리는 학창 시절을 평범하게 보낼 수만 있다면 너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오늘은 유민이의 현재 상태를 더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청소년정신의학과에 다녀왔습니다. 몇 가지 검사를 하고 상담을 하며 앞으로 해야 할 여러 이야기들을 들었습니다. 좀 더 일찍 병원을 찾았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유민이가 의학과 치료의 도움을 받으면 조금 더 좋아질 수 있다는 말에 희망적이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유민이에 대해 잘 알지 못해서 부족하고 느린 것만 탓하던 나 자신이 너무 원망스러웠습니다. 아빠로서 더 다정히 말하고 좀 더 기다려줬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던 자신을 반성하게 됩니다.


유민이에게는 3살 터울 형이 있습니다. 유민이 옆에서 늘 든든한 형으로 있어준 우리 큰아들 지민이인데요. 동생이 어릴 때부터 아파서 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동생에게 더 나눠줘야 했던 아들 지민이가 참 고맙습니다. 그래도 유민이에게 형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요. 형과 함께 장난도 많이 치지만 형을 보며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어서 유민이에게는 참 든든하고 좋은 형인 것 같습니다. 동생이 밖에서 실수할까 봐, 질책을 받거나 무시당할까 봐 가끔 유민이에게 지나치게 잔소리를 하지만 그래도 어쩌겠어요. 팔은 안으로 굽는 거죠. 남자라 겉으로 표현을 잘 못해도 항상 유민이를 뒤에서 바라봐주는 지민이가 있어서 참 감사합니다.


그리고 21살 때 만나 49살이 될 때까지 함께 있어주고 온갖 어려운 고비를 넘기며 같이 웃고 울었던 아내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돈 버는 능력으로 보면 빵점인 남편을 항상 믿어주고 기도해 주는 아내가 있기에 이 시간까지 버티고 살아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고 싶은 것들이 많이 있었을 텐데 늘 가족에게 양보하고 아들 둘 키우며 고생했던 아내. 더구나 몇 년 전 암 수술과 여러 치료로 몸과 마음이 너무나 지치고 힘들었을 아내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어렵고 어려운 고비를 넘겨 이제 조금씩 건강을 회복하고 있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조심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모쪼록 여러 해를 잘 버티고 이겨내 완치 판정을 받고 이전보다 더 건강한 삶을 이어가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을 기억하며 주저리주저리 글을 남깁니다. 혼자만의 생각으로 넘어갈 수도 있었는데 이 시간을 잊지 않기 위해 오늘을 기록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에게 우리 유민이, 지민이, 아내가 자랑스럽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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