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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졸업 후 재수생이 됐다

by 원석


예술중학교에 낙방한 나는 선택의 여지없이 집과 가까운 중학교에 입학했다.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했고, 여전히 틈만 나면 그림을 그렸다. 교과서나 공책에는 글보다 그림이 많았다. 유일한 낙이 그림만은 아니었다. 축구를 너무 좋아해서 꿈이 화가에서 축구 선수로 바뀌었다. 방과 후 다른 반과 축구 시합이 있으면 아이들은 항상 나를 찾았다.


삼촌이 국민학교 때 축구부 활동을 했는데 삼촌한테 기본기를 배운 게 도움이 됐다. 스스로 잘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체고를 목표로 두었다. 100m를 13초에 뛰어야 체고에 갈 수 있다고 해서 나름 혼자서 열심히 연습했고 결국 13초대에 뛸 수 있게 됐다. 그런데 그 정도로 체고를 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특출 나게 잘하거나 부모의 관심이나 뒷바라지가 있어야 하는데 그때는 몰랐다. 그저 열심히 즐겁게 하면 다 되는 줄 알았다.


중 3이 되어 진학상담을 하는데 담임 선생님이 호텔에서 얼음 조각하는 조각가나 극장에서 대형 그림을 그리는 화가를 해보라고 권유했다. 그때는 그게 너무 시시해 보였다. 공부 못 한다고 이런 직업을 추천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음 조각가나 극장에서 그림 그리는 화가의 수준을 얕봤다. 선생님은 나름 나한테 맞춘 직업을 소개했을 텐데 그때는 그게 서운했다. 그리고 그 직업도 쉬운 일이 아닌 걸 나중에야 알았다.


체고를 갈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예고를 준비했던 것 같다. 다시 미술학원을 다니며 준비했는데 될 턱이 없지. 떨어졌다. 그럼 인문계 고등학교를 가면 되는데 하기 싫은 공부를 3년간 해야 하는 게 너무 싫었다. 재수하기로 결심했다. 연합고사도 안 보고 중학교를 졸업했다. 다행인 것은 7살에 국민학교에 입학했기 때문에 1년간 재수를 해도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또래와 나이가 같다는 것이다.


공업고등학교를 알아봤다. 인덕공고, 서울북공고. 두 곳에 디자인과가 있었다. 둘 중에 한 군데는 꼭 들어 가리라 다짐을 하고 1년 동안 열심히 공부해 보겠노라 다짐했다. 그리고 신설동에 있는 수도학원 종합반에 등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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