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설동은 낯설었다. 꽤 오래된 듯한 건물의 교실엔 학생들이 바글바글했다. 가고 싶은 학교를 정하고 나니 이제 공부를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합반에는 생각보다 학생들이 많았는데 검정고시를 보려고 하는 친구들이 꽤 있었다. 그중 부모님이 안 계시는 친구를 알게 됐는데 여동생과 둘이 살고 있었다. 만나서 즐겁게 지내다가도 문득 그 어린 나이에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지 대견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고등학교를 진학하면서 그 친구와는 연락이 끊겼는데 가끔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지금처럼 휴대폰이 있었으면 연락처를 저장했을 텐데 무척 아쉽다.
고등학교를 가기 위해 재수를 선택한 나는 스스로에게, 가족들에게 떳떳하고 싶어 정말 최선을 다해 공부했다. 집에 손님이나 친척이 와도 인사만 하고 방에 들어와 늦은 시간까지 공부했다. 코피 터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내 생에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한 적은 없었다. 공부가 좋아서 한 건 아니었는데 열심히 하다 보니 실력이 늘고 실력이 늘다 보니 재미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공부를 안 했던 이유가 공부에 취미가 없기도 했지만 확실한 동기부여가 없었던 게 가장 큰 이유가 아니었을까 싶다. 동기부여가 없어도 열심히 하는 성향의 사람도 있겠지만 난 동기부여가 필요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 당시 음악을 많이 들었다. 가요는 변진섭, 최용준, 김현식, 공일오비, 유재하 등을 들었고 특히 김현식을 좋아했다. 팝송은 큰누나가 팝송 모음집이라고 줬던 테이프를 들었는데 제목과 가수는 생각이 안 나고 노래만 기억난다. 좋아했던 노래였는데 영어라서 그랬는지 제목과 가수를 찾아보지 않았다. 그런데 그렇게 들었던 팝송이 지금까지 음악을 취미로 하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됐다. 노래 한 곡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인트로는 어떻게 하는 건지, 각 악기 밸런스는 어떻게 맞춰야 하는지, 귀에 익고 몸에 밴 것 같다. 그 시절 싸구려 카세트와 테이프, 헤드폰으로 듣던 음악이 지금 컴퓨터나 휴대폰에서 듣던 음악보다 좋았다. 손을 움직여 테이프를 되감고, 누르고, 돌리는 과정 자체가 음악이었다.
그렇게 공부도 열심히 하고 음악도 즐겨 듣는 새에 1년여의 시간이 지나고 연합고사가 다가왔고 시험을 치렀다. 서울북공고를 최종 선택해 지원했고 발표날 학교를 찾았다. 합격자 명단은 운동장 임시 게시판에 큰 전지로 붙여져 있었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차근차근 보며 이름을 찾기 시작했다. 언제쯤 내 이름이 나올까 하던 차에 반가운 이름을 발견했다. 신원석. 합격했다. 당시 공고가 인문계 고등학교보다 커트라인이 높았기에 정말 좋았다. ‘아, 이제 그림을 그릴 수 있겠구나. 나도 디자인을 배울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을 하며 들뜬 마음으로 집으로 달려갔다. 도착했더니 아버지가 친구분과 말씀을 나누고 계셨다. 아버지께 합격했다고 말씀드렸다. 겉으론 내색을 안 했지만 친구분에게 은근히 자랑을 하셨다.
그렇게 재수생 시절을 마감하고 서울북공고 디자인과에 입학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꿈만 같았다. 하지만 입학 후 멘붕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