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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상혁 Nov 06. 2023

태양과 물과 바람의 학교

학교의 생태적 전환을 생각한다

오늘 아침 시설 주무관님과 함께 학교 옥상에 올랐다. 영림중학교를 ‘태양과 물과 바람의 학교’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영림중학교가 녹색 건축 인증을 받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의 생각은 이렇다.

첫째, 태양의 학교. 1979년 개교한 노후한 영림중학교를 리모델링 할 때, 외벽과 창호의 단열재 보강과 함께 이왕이면 외벽 외장재를 BIPV(건물일체형 태양광발전시스템)로 시공하는 것이다. 둘째, 물의 학교. 우리 학교는 이미 영림관과 연결된 빗물 저금통이 있다. 셋째, 바람의 학교. 본관 옥상에 풍력 발전기를 설치하는 것이다. 옥상에 올라보니 동서남북 탁 트여있어서 바람은 어느 정도 불 것 같다. 물론 정확한 에너지 진단이 필요하겠지만.      



주무관님은 교장 선생님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매우 지난한 과정이 될 거라고 대답했다. 그렇다. 매우 지난한 과정. 우선 학교 공동체의 공감을 얻어야 한다. 둘째, 학교 공동체가 승인하더라도 필요한 예산을 확보할 수 없다면 아무 소용 없다. 셋째, 우리 학교 상황에 가장 적합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하다. 넷째, 학교 주변 주민들의 민원에 대비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뚫고 정말로 우리 학교를 태양과 물과 바람의 학교로 만들 수 있을까? 


우리나라는 지난 2020년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각 부문별로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한 탄소 배출량 감축 시나리오를 발표한 바 있다. 건물 부문의 탄소 배출량은 2018년 기준(52.1백만 톤 CO2)으로 전체 배출량(727.6백만 톤 CO2)의 7.1%에 이른다. (건물 부문 밖에서 이뤄지는 간접 배출량까지 합치면 전체 배출량의 4분의 1가량 된다.) 이에 정부에서는 2021년 12월 국토교통 탄소중립 로드맵을 발표해 건물 부문 온실가스 직접 배출량을 2018년 대비 32.8%, 2050년까지 88.1%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런데 전국 초·중·고등학교 건물의 약 40%는 30년 이상 된 노후 건물이다. 특히 학교 다섯 곳 가운데 한 곳은 영림중학교와 같이 40년 이상 되었다. 즉 탄소중립을 떠나 안전상의 이유로도 신축 혹은 리모델링이 필요한 학교가 매우 많은 것이다. 따라서 노후화된 학교를 제로에너지 건물로 신축하거나 그린 리모델링을 하는 것은 탄소중립 실천을 위해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탄소중립학교’라는 개념도 등장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녹록지 않다. 첫째, 학교는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닌 교육이 이루어지는 장소다. 학교를 새로 짓든 리모델링을 하든 상당히 오랜 시간이 소요되며 그 기간 동안 학교를 다니는 학생과 교직원들에게는 여러 가지 불편한 일들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둘째, 학교 공간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도 중요한 문제다. 과거의 학교는 천편일률적인 공간이었다. 그러나 미래교육의 핵심은 학생 중심의 개별화 맞춤형 교육과 이를 위한 자율적인 학교교육과정 운영이다. ‘공간은 제3의 선생님’이라는 말이 있다. 미래교육의 흐름에 맞게 학교 공간 역시 혁신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니 노후화된 학교를 녹색 건축물, 더 나아가 탄소중립을 위한 제로에너지 건물로 전환하는 것은 매우 까다로운 고차방정식을 푸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기술적인 추진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은 학교 공동체에서 철학을 공유하는 것이다.      


▲ 친환경 물병 오호(Ooho)를 수업 중 만드는 영림중 학생들  © 윤상혁  


내가 생각하는 ‘태양과 물과 바람의 학교’는 다음과 같다.


첫째, 생명의 근원인 태양과 물과 바람을 허투루 쓰지 않는 학교 

둘째, 기후변화로 인하여 인간과 비인간이 겪고 있는 고통에 귀기울이는 학교

셋째, 지속불가능한 산업문명을 넘어 지속가능한 생태문명을 지향하는 학교 


11월에 진행될 혁신학교 운영 TF에서 이와 같은 생각을 교직원들과 공유하려고 한다. 새해를 생각하며 씨앗을 준비한다. ‘태양과 물과 바람의 학교’라는 생각의 씨앗. 태양과 바람과 물의 순환 속에서 씨앗이 자라나듯이 학교 역시 서로의 연결 속에서 생태적 지혜의 순환이 이루어지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그러니 ‘태양과 물과 바람의 학교’는 하나의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이다. 새로 시작되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화자는 학생과 교사가 되어야 한다. 나는 이것을 '학교의 생태적 전환'이라 부르고 싶다.      



이 글은 교육희망 2023년 11월 5일자 기후정의 코너에 <태양과 물과 바람의 학교>라는 제목으로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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