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AI 디지털 교과서, 실상은 무엇인가?」 토론문
AI 디지털교과서가 뭐에요?
AI 디지털교과서는 학생 개인의 능력과 수준에 맞는 다양한 맞춤형 학습 기회를 지원하고자 인공지능을 포함한 지능정보기술을 활용하여 다양한 학습자료 및 학습 지원 기능 등을 탑재한 소프트웨어로 다음과 같이 세 가지 특성을 가진다.
AI에 의한 학습 진단과 분석(Learning Analytics)
개인별 학습 수준과 속도를 반영한 맞춤형 학습(Adaptive Learning)
학생의 관점에서 설계된 학습 코스웨어(Human-Centered Design)
AI 디지털교과서 활용으로 인한 기대효과는 다음과 같다. 학생은 최적화된 맞춤학습 콘텐츠로 배우고, 교사는 데이터 기반으로 수업을 디자인하며, 학부모는 자녀의 학습 활동 정보를 풍부하게 제공받을 수 있는 교육 환경으로 변화한다. 좀 더 자세히 부연하면,
교사는 학생별 학습경로와 지식수준을 이해하고, 데이터 기반 참여형 수업(토론, 협력, 프로젝트학습 등)을 설계하며, AI 보조교사의 활동 분석을 참고하여 평가, 학생별 학습성취에 맞는 개별 학습을 제공하며,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생의 성장을 기록하고 지지하게 된다.
학생은 학습 속도에 맞는 학습을 통해 학습에서 성공을 경험하고 내재적 학습 동기와 자아존중감이 향상되면서 가정과 학교에서 이해·지지받는 ‘나’로 성장하게 된다.
학부모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자녀가 학습에서 겪는 어려움과 자녀의 강점․약점을 파악하고, 진로탐색·설계에 다양한 활동 정보를 참고하여 자녀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내 아이에게 맞는 정서적 지지·격려하게 된다.
정말로 그렇게 될까? AI 디지털교과서의 정의, 특성, 기대효과와 실제 개발된 것 사이의 간극은 없을까? 교사 스스로 교육적 선의에 입각하여 “그럼요, 간극은 없어요. 있더라도 곧 극복할 거에요.”라고 말한다면, 이상과 현실의 차이는 곧 교사/학생의 능력 차이로 둔갑하게 될지도 모른다. 원래는 가능하지만 당신이 무능해서 실현이 안 되는 거라고.
AIDt인가요? aidT인가요?
깜짝 놀랐다. AI에서 A는 Adaptive Learning이고, I는 Interesting & Immersion이었다! 어쩐지 현재까지 들리는 이야기로는 Artificial Intelligence의 면모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사실 AI 디지털교과서에서 ‘AI’의 역할은 ‘AI에 의한 학습 진단과 분석’에 국한된다. ‘AI 보조교사’라는 단어가 [그림 1]에 등장하지만 과연 Chat GPT나 CLOVA X처럼 대화형으로 요청하면 생성 결과를 곧바로 내놓을지는 미지수다.
‘AI 디지털교과서’라는 단어는 AI와 디지털과 교과서의 합성어다. 여기서 현실적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뭘까?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에서 말이다. 나는 AI도 반대하지 않고, 디지털도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이것을 굳이 교과서와 연결하려는 시도에 반대할 뿐이다. 왜냐하면, 대한민국 교과서는 검정 교과서이거나 검정에 가까운 인정 교과서이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견해 혹은 소수 의견을 담기 어렵다. 심지어는 책의 규격과 분량까지 통일한다. AI 디지털 교과서로 바뀌면 그러한 관행이 사라질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2022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교과서 역시 기존의 관행대로 선정되었다.
AI 디지털교과서는 자기 완결적일 수 없다. AI와 디지털의 도움과 협조를 필요로 하는 결핍된 교과서여야만 한다. 학생과 교사의 관심사에 따라 질문과 답이 꼬리와 꼬리를 무는 교과서여야만 한다. 그러나 현재의 AI 디지털교과서는 그런 의미를 담고 있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오늘 토론회에서 발제자 주정흔 박사는 현재의 AI 디지털교과서가 사용될 교실의 모습을 상상해볼 것을 권한다. 학생 개개인이 자신의 수준에 맞는 문제를 풀어가며 자신의 속도에 따라 학습하는 모습을 상정하고 있지는 않은가? 결국은 교사의 표준화된 수업 이후 학생이 풀지 못한 수학 문제나 문법이 잘못된 문장 등과 같은 특정한 지식의 틈(gap)을 식별하고, 그 틈을 채우는 것이 실제적인 AI 디지털교과서의 역할이 되는 것이다.
물론 이 속에서도 별처럼 빛나는 교사가 존재할 것이다. 예컨대 평소 거꾸로 학습(flipped learning)을 실천하던 교사에게는 AI 디지털교과서를 유용한 교수·학습자료로 사용할지도 모른다. 더 나아가 미래에는 AI 보조교사가 교사를 대신하여 학생과 학습 상담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교육의 비용을 줄이겠다는 발상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공교육은 저비용 고효율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심은 만큼 거두는 것. 그것이 바로 교육이다.
AI 디지털 교과서에 대한 세 가지 우려의 시선
여기, 교육부의 디지털 교과서 정책에 대한 우려가 담긴 세 편의 글을 소개한다. 먼저 한숭희 서울대학교 교육학과 교수의 글. 한숭희 교수는 경향신문 칼럼 「디지털 교과서 정책이 말하지 않는 사실」에서 ① 교육부가 말하는 인공지능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GPT 등 거대언어모델(LLM)이 아니며, ② 디지털 교과서 개발 과정 초기에 교육 전문가나 학교 교사들의 참여가 거의 없었고, ③ 학교가 단순히 에듀테크들이 제공하는 학습 플랫폼의 프로그램들을 ‘구독’하는 사용자이자 데이터 제공자임과 동시에 비용 지불자로 전락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현수 교수는 칼럼 「디지털 교과서, 전면 도입 중단해야」에서 전 세계에서 표출되고 있는 디지털 교육과 교과서의 부작용을 소개하면서 현 시점에서 디지털 교과서 전면 도입에 대해 재고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그 이유는 ① 디지털 교과서는 학습을 향상시키지 못하며, ② 디지털 교과서에 기반한 학습은 여러 인지능력, 특히 주의집중력을 훼손시킨다는 연구결과가 넘쳐나고 있으며, ③ 디지털 교과서 사용은 심각한 건강과 심리문제를 유발하며, ④ 디지털 교과서 사용에 친숙한 환경을 가진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 사이의 격차가 커질 수 있고, 끝으로 ⑤ 디지털 교과서는 아이들의 사고력, 판단력, 통합적 능력도 사라지게 할 것이며, 지적 도둑질과 표절, 잘못된 인용과 지식의 배합으로 지식 생태계를 파괴할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서울 초등교사 한희정 교사는 칼럼 「왜 남의 떡은 커보이기만 할까!」에서 영국의 에듀테크 도입을 살피고 있다. 첫째, 영국에서는 여러 공학 기술을 활용하여 교육 기관의 일상적인 업무를 관리하도록 지원하고 교수 활동을 보조하는 실천적 행위를 ‘에듀테크(Edu-Tech)’가 아닌 ‘에드테크 (Ed-Tech)’라 칭하고 있다. 둘째, 영국의 교육-기술 도입은 철저한 사전 조사와 현황 파악, 강점과 한계, 문제점을 아우르는 목표와 방향 설정하에 이루어진다. 영국 교육부는 『학교에서의 기술 조사 보고서 2022-2023(Technology in Schools Survey Report: 2022 to 2023)』를 통해 영국 학교에서 교육-기술은 주로 세 가지 방식, ① 학교 관리 및 행정, ② 교육과 학습지원, ③ 정서적 지원에 사용되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셋째, 인공지능을 교사와 학생 간의 교수-학습 활동을 대체하는 것뿐 아니라 교육 관련 여러 방향의 지원 역할로 인식하고 있다. 이에 반해 “한국의 디지털 전환은 오로지 AI 디지털교과서에만 맹목적으로 매달리는 듯하다. 맞춤형교육은 단순히 수준에 맞는 문제를 주야장천 풀게 하는 게 아니다. 진짜 맞춤형은 학생에게 학습 욕구와 동기를 만들어 주는 것에서 시작한다.”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가서
아직 우리는 AI 디지털 교과서의 실체를 모른다. 그런데 당장 내년부터 학교 현장에 도입을 해야 한다. 나는 지금 말이 안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학교는 기술의 실험장이 아니다. 지금의 상황은 AI 디지털 교과서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교육부가 호스트이고 학교는 게스트의 위치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교육기관은 장밋빛 환상을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정책이 도입될 때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해 먼저 고민하고 그것이 실제로 발생했을 때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예컨대 교육부는 2022년 ‘교육 분야 인공지능 윤리 원칙’을 발표하면서 “교육 분야 인공지능은 사람의 전 생애에 걸쳐 전인적 성장을 최고 가치로 삼으며, 사람의 인격을 존중하고 개성을 중시하여 사람의 능력이 효과적으로 발휘될 수 있도록 제공되어야 한다”고 선언한 바 있다.
또한 AI 디지털교과서 ‘개발 원칙 및 방향’으로 다음과 같이 세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① 인간 존엄성을 위한 교육: 교육 당국과 전문기관, 개발에 참여하는 민간 등은 인공지능 기술이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고, 아이들의 삶을 위한 교육을 기획한다. ② 평등한 학습 기회 보장: 아이들이 언어, 장애, 지역, 계층 등 사회‧문화‧경제적 배경과 관계없이 신기술에 접근하고, 맞춤 교육 기회를 갖도록 설계한다. ③ 교사의 전문성 존중: 모든 아이는 신기술로 측정할 수 있는 범위 이상의 능력이 있음을 전제로, 교사가 이를 관찰하고 지지할 수 있도록 인공지능은 교사의 수업 준비, 평가 기록 등의 활동을 지원한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이 현실에 적용되기 위해서는 각 교육 주체들의 책임과 역할 역시 명확하게 배분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문제가 발생했을 때의 부작용과 피해는 모두 학교가 짊어지게 된다. 정책이 적용될 무렵 교육부 담당자는 이미 다른 부서로 자리를 옮긴 뒤일 것이다.
너무 무겁지도 않게, 너무 가볍지도 않게
AI. 디지털. 교과서. 수식어가 너무 무겁다. 그리고 그 결합이 혁신적이지도 않다. 기존의 관행과 습속을 하나도 바꾸지 않은 교과서 제도와 AI 디지털 정책의 결합은 너무나도 어색하다. 일반적으로 교사는 문제해결에서 성취감을 느낀다. “뭐 이딴 식으로 만들었어?”라고 짜증을 내면서도 해결 방안을 찾는 게 교사다. 그게 바람직한 경우도 많다. 얼리 어답터 교사들이 먼저 발견한 시행착오를 뒤따르는 교사들은 반복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행정업무의 영역에 국한된 이야기다. 수업은 완전히 다르다.
수학적 사유란 무엇인가? 영국의 수학자 키스 데블린(Keith Devlin)은 ‘what if?’ 즉, ‘만약 ~ 하면 어쩌지?’라는 가설적 사고와 탈현장적 추상을 특징으로 하는 ‘off-line thinking’이 인류의 문법적 언어와 상징적 수학의 기반이 되었다고 말한다. 즉 수학적 사유라는 것은 지금 당장, 바로 여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온라인적 상황에 매몰되지 않고 한 발자국 떨어져서 ‘딴 생각을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수업 시간 내내 학생들을 디지털 도구에 붙잡아 놓는 방식이 수학적으로 올바르게 보이지 않는다. 적어도 초등과 전기 중등 수학과 교육과정에서는 말이다.
AI 디지털교과서의 사용은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아니,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도 현장의 교사들은 그것의 의미를 찾아낼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화려한 수식과, 거기에 투여되고 있는 엄청난 예산과, 전국의 교사들을 붙잡아 놓는 어마어마한 시간이 아깝지 않으려면, 우리는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특히 수학 교사라면 한 발자국 떨어져서 ‘what if?’ 즉 ‘만약 그렇지 않으면 어쩌지?'라고 딴 생각을 할 필요가 있다. AI 디지털교과서가 현장에 도입되었을 때, 수업의 모습은 어떻게 바뀔지, 우리 아이들에게 과연 이러한 변화는 바람직한 것일지 질문하고, 유추하고, 탐구하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 수학교사들에게 필요하다.
이 글은 사단법인 전국수학교사모임과 수학교육정책연구소모임이 공동으로 주관한 제4회 수다존 「수학 AI 디지털교과서 실상은 무엇인가?」의 토론문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