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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상혁 Oct 02. 2016

문제는 민주주의다

혁신교육의 방향을 묻다

함께 읽는 책 No. 16

마이클 애플 · 제임스 빈(2007), 『마이클 애플의 민주학교』


마이클 애플 · 제임스 빈(2007), 『마이클 애플의 민주학교』



살아남는 것이 중요한 시대


민주주의는 모호하다. 민주주의는 시민인권, 투표권, 언론의 자유 등을 신장시키는데 큰 기여를 했지만 한편으로는 신자유주의를 심화시키고 공공성을 무력화시키며 거대정당의 과두정치를 불러오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민주주의는 두 가지 상반된 공격을 동시에 받는다. 하나는 민주주의를 기득권에 대한 위협으로 느끼는 집단의 공격이고, 다른 하나는 오늘날의 민주주의가 특권층과 결탁하여 타락의 길을 걷고 있다고 여기는 집단의 공격이다. 더 큰 문제는 민주주의가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저 살아남는 것이다. 


누구는 여기에 생존주의라는 이름을 붙인다. 생존이 시대정신이 된 것이다. 사실 ‘생존’이라는 키워드가 낯설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올 여름 그 어느 때보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예년 같으면 시원한 가을바람을 만끽해야 할 시기에도 마치 한여름처럼 무더웠다. 이제 지구 온난화는 먼 미래의 일이 아닌 지금 이 곳의 현실이 된 것이다. 과연 우리는 지구의 평균기온 상승을 2℃ 이내로 막을 수 있을까? 지금 추세로는 불가능해 보인다. 파국이 눈앞에서 어른거린다. 지속가능성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우리는 지금 지구의 생존 자체에 물음표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우습고도 슬픈 현실이다.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이 이 뿐만이 아니다. 최근 들어서는 인공지능과 로봇혁명이 인간의 자리를 넘보고 있다. 가까운 미래에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고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식을 대체하는 디스토피아에 대한 예언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민주학교란 무엇인가


‘민주주의가 밥 먹여 줘? 네 실속이나 챙겨’가 시대정신이 되어버린 시대.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는 학교 역시 민주주의의 이중성이라는 딜레마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무상급식과 학생인권이 확대되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특목고와 자사고가 늘어나고 국정교과서 체제로 회귀하고 있다. 학급회, 학생회, 학부모회, 교직원회, 학교운영위원회 등 직‧간접 민주주의 제도를 모두 갖추었으나 학교폭력과 성적에 대한 민원 앞에서는 무기력하기만 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하는 국가의 의무와 자신들의 견해를 관철시키려는 이해집단의 민주적 권리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긴장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민주학교’를 말하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민주주의 모호성은 학교 앞에서 더욱 짙어진다. 적어도 민주주의를 명시적으로 반대하는 사람을 찾아보긴 어렵다. 민주적 삶의 방식이 학교에서의 민주적 경험을 통해 학습된다는 것도 상식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민주주의를 뒷받침해야 할 학교는 역사적으로 민주적이었던 적이 거의 없는 기관이다.” 여전히 협력보다는 경쟁을 강조하고, 공공선보다는 개인성을 강조하며, 공동체의 시민이 아닌 졸업장의 소비자를 배출하고 있다.


민주학교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반영한 단어이다. 첫째, 민주학교는 사회, 혹은 학교 내의 반민주적인 조건들에 주목한다. 둘째, (이것이 정말 중요한데) 민주학교의 교사들은 (그러한 조건들을 자신들이 변화시키기 전까지는) 이 조건들이 현실을 규정하는 힘임을 정확히 알고 있다. 셋째, 그러기에 민주학교의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보다 의미 있는 지식과 지배세력이 요구하는 지식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노력한다. 예를 들어보자. 국가교육과정에 대한 지식이 없이, 교수법에 대한 식견이 없이 어려운 환경에 있는 학생들에게 풍부한 교육 경험을 제공한다는 것은 자기기만이다. 학생의 재능을 발견하지 못하는 안목의 부재를 평등의 추구로 왜곡하거나 지적 호기심을 잃은 학생과의 타협을 학생에 대한 이해로 포장해서는 안 된다. 



문제는 민주주의야, 바보야


이 책은 바로 그러한 교사, 그러한 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먼저 밀워키에 위치한 프래트니 학교에서는 언어를 하나의 온전한 총체로 접근하는 교수법의 적용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카브리니 그린에 위치한 버드 공동체 아카데미는 새로운 학교 설립을 위한 캠페인을 통해 민주주의를 교육과정 속에서 구현하고 있다. 매디슨에 위치한 마켓 중학교에서는 학생들과 교사들이 자신들과 세상에 대한 질문들을 바탕으로 교육과정을 함께 계획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케임브리지에 위치한 린지 직업학교의 사례도 흥미롭다. 이 학교는 전통적인 인문교육과 직업교육의 이분법을 넘어 공동체 중심의 프로젝트를 통해 직업교육을 재구성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뉴욕의 센트럴파크 이스트 중고등학교 온전한 형태의 대안학교가 아닌 학교 속의 학교라는 개념을 통해 대규모 학교를 특징짓는 비인격적인 익명성을 극복하고 민주적 학습공동체를 형성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민주주의는 그럴듯한 정치적 수사를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구체성을 통해 형성된다. 학교 역시 마찬가지이다. 민주학교는 두 가지 현실을 직시한다. 하나는 기업의 요구를 중심으로 교육의 목적을 재규정하려는 자들과 교실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어떤 것이라도 계량화할 수 있다고 믿는 자들의 압력, 교육과정과 교과서에 가해지는 극우보수집단의 공세, 그리고 공동체와 학생들로부터 유리된 행정의 경직성과 같은 것들이다. 민주학교에 있어서 이 모든 것들은 제대로 된 교육을 할 수 없는 핑계거리가 아니라 반드시 극복하고 넘어가야 할 구체적 현실이 된다. 


다른 하나는 학생들의 삶과 연관된 지식에 대한 사유이다. 지식에는 그것이 세상에서 올바로 쓰이는지 지켜볼 책임이 따르며 우리는 지식이 사람과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할 때까지 안다고 말할 수 없다. 교육의 목표는 어떤 과목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정통하는 데 있으며, 학습의 과정과 결과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민주학교의 사례들은 주제 중심의 교육과정에 대한 아이디어가 지배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충족되지 못한 공동체의 요구(린지 직업학교), 사회적, 환경적 주제에 대한 관심(프래트니 학교, 버드 아카데미, 마켓 중학교), 중요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 찾기(센트럴파크 이스트 중고등학교)에 초점을 맞추었던 것은 지식을 바라보는 관점이 기존의 학교와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책의 이야기들은 그대로 우리의 현실과 연결된다. “문제는 민주주의야, 바보야(It's the democracy, stupid)” 민주주의는 우리 아이들의 삶과 미래가 걸려 있는 문제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이곳의 이야기를 담은 실천의 문제다.



민주학교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반영한 단어이다. 첫째, 민주학교는 사회, 혹은 학교 내의 반민주적인 조건들에 주목한다. 둘째, (이것이 정말 중요한데) 민주학교의 교사들은 (그러한 조건들을 자신들이 변화시키기 전까지는) 이 조건들이 현실을 규정하는 힘임을 정확히 알고 있다. 셋째, 그러기에 민주학교의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보다 의미 있는 지식과 지배세력이 요구하는 지식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노력한다. 예를 들어보자. 국가교육과정에 대한 지식이 없이, 교수법에 대한 식견이 없이 어려운 환경에 있는 학생들에게 풍부한 교육 경험을 제공한다는 것은 자기기만이다. 학생의 재능을 발견하지 못하는 안목의 부재를 평등의 추구로 왜곡하거나 지적 호기심을 잃은 학생과의 타협을 학생에 대한 이해로 포장해서는 안 된다.



함께 읽는 책 No. 16

마이클 애플 · 제임스 빈(2007), 『마이클 애플의 민주학교』

마이클 애플 · 제임스 빈(2007), 『마이클 애플의 민주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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