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rossenzersdorf Sep 07. 2015

3. 밀라노

유럽에 내딛은 첫 걸음

 두바이를 출발한 비행기는 밤늦게 밀라노 말펜사 공항에 도착했다. 입국심사를 받고, 짐을 챙기고, 공항에서 긴 시간을 헤맨 결과 시내로 가는 셔틀버스는 탈 수 없는 시간이 되어버렸다. 대신 말펜사 익스프레스라는 기차를 타고 시내에 있는 Milano Centrale역에 도착했다. 전에 온 적이 있는 역이었는데, 그 때보다 공사가 훨씬 늘어난 느낌이었다.(http://blog.daum.net/hksada/82 참조)

 숙소는 생각보다 역에 가까워서 그나마 빨리 찾을 수 있었다. 한밤 중이라 길을 찾기도 어려웠지만 결국 어떻게든 찾아낼 수 있었고, 여행은 다음 날부터 시작됐다.


아침에 숙소 앞 지하철역에서 밀라노 카드부터 샀다. 전날 샀으면 말펜사 익스프레스도 할인받을 수 있었겠지만, 전날 공항에서는 한밤이라 밀라노 카드 비슷한 걸 파는 사람도 없었다. 하긴 애초에 공항버스가 아니라 열차를 탄 이유가 버스표를 파는 사람이 퇴근해서였다.


밀라노 카드를 사려고 했는데 상인 분이 그냥 교통카드를 주셨다. 처음엔 이게 맞게 받은 건지도 잘 모르다가 거스름돈을 받고서야 무언가 잘못됐음을 알았다. 현대 사회에서는 아라비아 숫자가 만국 공용어다.

밀라노 두오모

내가 유럽에 다녀온 후 방송에서 다시 보게 된 관광지가 두 군데 있다. 토스카나 투어에서 가봤던 피엔차 마을이 JTBC의 <내 친구...>에 아름다운 풍경을 가진 곳으로 소개되었고, 밀라노 두오모는 여러 뉴스에 나왔다. 나라 망신 뉴스 말이다.


두오모에서 나왔더니 한 흑인 분이 내게 와서 공짜로 팔찌를 채워준다고 하셨다. 그래서 그러라고 했다. 그리고 팔찌를 채워준 뒤의 행동이 달랐다. 돈을 달라고 했다. 주변에 있던 흑인 한두명이 더 와서 나를 에워쌌다. 실 한가닥으로 된 예쁘지도 않은 팔찌 하나에 2유로라니. 꼭 비싸서 그런 건 아니지만 어쨌든 돈을 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경찰 부르자고 했다. 그랬더니 그들이 그러라고 했다. 내가 다시 말했다. 당신들이 돈을 받고 싶으면 당신들이 경찰을 부르라고.


그러는 사이에 친구들이 왔고, 그들은 결국 팔찌를 손톱깎이로(가위같은 거 없나?) 잘라서 유유히 사라졌다. 사실 나는 유럽 어느 나라에 가서도 꿇리지 않을만큼 키가 큰 편이고 (다 살이지만)건장한 편이다. 하지만 그 분들도 못지 않게 키도 크고 무섭게 생긴지라 여성분들이나 노약자분들의 경우 꽤 위압감을 느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무섭게 생겼다는 말에 편견이 들어가있는 게 아니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그 분들 중 일부는 아마도 덜 검어서 위장크림 같은 걸 바른 것 같기도 했다. 물론 추측이지만 진짜라면 그들이 의도한 결과일 뿐이다.


느낀 게 하나 더 있다면 언어가 통하지 않는 관광지에서도 이런 분들은 영어를 꽤 잘한다. 이탈리아어를 모르는 사람에게 이탈리아도 꽤나 말이 잘 안 통하는 곳이지만 이 분들만은 말이 잘 통했다. 파리에서도 그랬고, 브라티슬라바에서도 그랬다. 나는 브라티슬라바에서 집시에게 차라리 돈을 주고 길을 물어본 적도 있었다. 어차피 준 돈은 푼돈이니 관광책자를 사는 것보다 훨씬 이득이다.

젤라또나 가게를 보여줘야 하는데 사진이 없다. 이 돔이 있는 사거리 중 한 쪽에 우리가 먹은 SAVINI라는 젤라또 가게가 있다.

두오모 옆에는 상가 거리가 있다. 중앙에 있는 사거리 위는 돔으로 덮여있고, 그 외 거리에는 아치형 지붕으로 덮여있다. 이 사거리에 젤라또 가게가 있다. 같이 간 친구들은 로마에 있는 Fassi의 Riso맛을 최고의 젤라또로 꼽지만 나는 여기서 먹은 젤라또가 제일 맛있었다. 명품거리에 있는만큼 가격도 비싸지만, 비싼 돈 내고 먹어도 될 만큼 맛도 고급지다.


다음으로 간 곳이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으로 유명한 산타마리아 성당. <최후의 만찬>은 미리 예약을 해야 볼 수 있다. 우리는 미리 예약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작품을 볼 수 없었다. 대신 Codex Atlanticus라는 기획전시를 볼 수 있었다. (참조 : http://www.milan-museum.com/codex-atlanticus.php)


쉽게 말해, 다 빈치의 드로잉을 통해 그의 과학적 연구 등을 알아볼 수 있는 전시였다. 여기까지만 보았다면, 그냥 볼 만도 했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전시는 이 성당에 있는 게 전부가 아니었다.


성당에서 나온 우리는 건너편에 있는 가게에 들어갔다. 이 가게는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벨을 누르면, 직원이 나와서 문을 열어준다. 그렇게 우리가 첫번째 문을 통과하면 문이 닫히고, 두번째 문이 열렸다. 그렇게 가게에 들어갈 수 있었다. 물론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물건들을 파는 가게였다. 예를 들면 19세기에 만든 루이비통 캐리어라든지. 명품이 대부분 원래 그렇지만, 여기 있는 물건들은 나이까지 먹어서 사용가치에 비해서 터무니없는 가격들이 붙어있었다. 처음부터 살 생각도 없었고, 직원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진귀한 물건들을 많이 구경했다. 구경은 공짜이니, 추천할 만한 관광코스인 것 같기도 하다.


중간에 빵집에 들러 빵도 먹었다. 길을 걷다보면, 아름다운 거리와 분위기 있는 가게도 많다.


그 다음에 간 곳이 Biblioteca Pinacoteca라는 곳이었다. 앞에서 설명했던 Codex Atlanticus라는 기획전시가 이 곳으로 이어지기 때문. 물론 꼭 그래서만 온 것은 아니고, 밀라노 내에 남은 기차 시간까지 딱히 볼 만한 게 없기도 했다.


그리고 지옥의 코스가 이어졌다. 이 기획전시를 보려면 앞의 장황한 상설전시를 관람해야 하는데, 이게 독일박물관과 다를 바가 없었다. 입구만 있고 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지역의 예술작품을 마구잡이로 모았는지 작품의 퀄리티가 높은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모르는 곳에서 시간을 왕창 보내고 나서 Codex Atlanticus전 관람을 끝낼 수 있었다. 전시 자체는 다 빈치의 생각과 연구를 볼 수 있어서 좋았지만 그냥 한국에 오면 시간될 때 한번쯤 볼만한 전시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2. 두바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