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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ossenzersdorf Apr 11. 2016

4. 피렌체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내륙도시


우리는 기차로 여행했다. 차를 직접 운전할 게 아니라면, 유럽에서 도시 간 이동을 할 때는 기차가 최고인 것 같다. 기차로 네 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 이상이라면 침대칸을 쓰든지, 비행기를 타든지.


다른 교통수단도 마찬가지겠지만, 기차는 기차만 줄 수 있는 특별한 느낌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나는 기차여행이 주는 독특한 경험을 즐긴다. 각자의 여정을 위해 타고 내리는 사람들(직행이 아닌 시외버스도 마찬가지지만)도, 창 밖으로 보이는 자연과 도시도 모두 서로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다. 만약 시를 쓴다면, 비행기나 고속버스가 아니라 바로 기차 안이 아닐까.


아침에 숙소를 떠나 가장 처음에 도착한 곳은 두오모였다.(사진에는 낮에 찍은 것이 섞여 있다.) 두오모는 두말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성당이다. 하지만 아름다운 성당이라는 말처럼 이 성당을 충분히 수식하지 못하는 말도 없을 것이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 두오모는 아직 가장 중요한 곳을 드러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우리는 먼저 우피치 미술관에 가기로 했다.


우피치 미술관에는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가 없었다. 하지만 꼭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한국인 가이드들이 워낙 많아서 귀동냥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목소리가 큰 건 조선족 가이드였다. 중세 예술이나 르네상스 예술은 성서나 그리스 로마 신화와 관련된 내용이 많아서 파고들면 끝이 없지만, 사실 모르고 봐도 그만이었다. 어차피 나는 인상파 이전 미술에 딱히 관심이 없었다.


'비너스의 탄생'과 같은 유명한 작품도 많았지만, 사실 자질구레한 작품도 많았다. 자질구레한 작품이 많은 것보다 더 문제는 비슷비슷한 작품이 많다는 것이었다. 우피치 미술관이 피렌체의 전성기, 메디치 가의 전성기에 주로 모은 작품들을 전시하는 곳이니 어쩔 수 없지만. 우피치 미술관의 좋은 점은 안에서 보는 바깥의 모습이었다.


이제 두오모 위로 올라갈 차례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피렌체를 두오모 돔, 큐폴라에 올라가기 위에 온다. <냉정과 열정 사이>로 유명해졌기 때문이다. <겨울연가>를 본 사람들이 남이섬에 가는 이유와 같다. 그래서 줄이 길다.

올라가는 길은 멀고도 힘들다. 길은 좁고 계단은 가팔라서 분명 높으신 분들을 위해 만든 건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중간까지는 올라가는 길과 내려가는 길이 달라 어차피 한번 길을 든 이상 돌아갈 방법도 없다. 더운 날 좁은 공간에 사람은 많아서 더 덥고, 바람은 가끔 좁은 창문으로 불 듯 말 듯하다.

그래도, 그래도 올라간 보람은 있다. 마치 오래 저축한 적금을 탄 것처럼 한 번에 보상받는다. 코폴라가 아름답다는 게 아니라, 코폴라에서 바라본 피렌체 시가지가 워낙 아름다워서다. 물론 사진 찍기 좋은 곳이기도 하다. 


아마 이 아름다움은 피렌체가 현대적인 도시의 모습으로 탈바꿈했다면 우리가 보지 못했을 것이다. 피렌체의 아름다움은 중세 사람들이 아름다운 건축물을 도시에 많이 남긴 덕도 있지만 그 아름다움을 잘 가꿔온 후세의 덕에 남은 것이기도 하다. 고층건물로 둘러싸인 경복궁처럼 두오모도 고층건물로 둘러싸였다면 아름다운 두오모는 있어도 코폴라에서 내려다 본 아름다운 두오모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다음으로 간 곳은 미켈란젤로 언덕이다. 역 근처에 들러야 해서 역 앞에서 버스를 타고 갔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하지만 시가지를 배회하는 버스의 느낌은 꽤 좋았다. 전에도 낯선 곳을 알고 싶을 때 종종 이용하던 방법이기도 하다. 유명한 관광지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소소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도 있고,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사는지도 알 수 있다. 대학생 때 브라티슬라바에서 무작정 트램을 탔을 때 파칭코가 많아서 충격을 받았던 적도 있다.


이번에도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 예쁜 여자가 있다니. 빅토리아 시크릿에 엔젤로 나와야 할 것 같은 아름다운 여자 두 분이 나란히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 그게 버스 안만 아니라면 한 폭의 유화 같은 장면이었다. 내가 세상에서 실제로 본 사람 중에 가장 예뻤다. 그리고 아쉽게도 중간에서 내렸다. 그 사람이야 피렌체에 살 테니 따지고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미켈란젤로 언덕은 교외에 있으니.

미켈란젤로 언덕은 야경으로 더 유명하다고도 하지만 일정상 야경을 볼 수는 없었다. 사실 전날 저녁 야경을 보려고 노력은 했지만 피렌체에 워낙 늦게 도착해서 실패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피렌체 풍경이라는 점에서 두오모 코폴라에서 내려다본 것과 비슷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여유를 즐길만한 시간이 있다면 바쁘지 않게 쉬기 딱 좋은 곳이었다. 다행히도 우리가 그랬다. 그리고 이것으로 피렌체 여행의 마침표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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