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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ossenzersdorf Aug 01. 2016

6. 토스카나

온전한 나만의 여행

로마에서 숙박한 이틀째였지만 나는 토스카나로 떠났다. 친구들은 바티칸에 갔지만 나는 그 곳에 갈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로마에 오면 한 번은 꼭 가봐야 한다는 바티칸이지만, 굳이 두 번 갈 곳도 아니었다. 천주교 신자인데도 두 번 가기는 싫었다. 볼 건 다 봤고, 사람 많을테고.


그래서 나만 이 날 따로 일정을 잡았다. 나는 토스카나로 떠나기로 했다. 결정하기 전에 토스카나에 대해 충분히 잘 알고 있었거나 원래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은 아니었다. 내가 토스카나에 대해 알던 것은 중심지가 피렌체라는 것 정도였다.


혼자 여행할 때는 혼자 여행하는 맛이 또 있다. 그래서 여럿이서 여행을 다니다보면 혼자 여행하는 게 그리울 때도 있다. 물론 투어로 가는 거니 혼자 자유여행을 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는 없지만, 혼자 여행이 그리울 때쯤 딱 맞게 혼자 여행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버스를 꽤 오래 탔다. 로마와 토스카나가 가까운 건 아니다. 피렌체에 오는 관광객도 많으니 거기서 출발하면 더 가깝지 않을까 생각도 했지만 불행히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그래도 덕분에 이탈리아 고속도로 휴게소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 수 있었다. 참고로 커피와 빵을 세트로 사면 좀 더 싸게 먹을 수 있다는 것 정도를 제외하면 별 거 없다. 그리고 어차피 내일 폼페이에 가기 전에 경험할 일이기도 했다.

투어니까 당연한 거지만 가이드 분이 와인이나 이런 저런 것들을 설명하며 버스에서 지루하지 않도록 해주시긴 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갔고 첫번째 장소에 도착했다. 발도르차 전망대라는 곳이었다. 안타깝게도 발도르차 전망대에서 본 전망들은 사진에서 보던 것만큼 아름답지 못했다.


계절을 잘못 찾아온 모양이다. 수확이 끝난 밭에 남은 건 황량함밖에 없었다. 다른 걸 다 떠나서 전체적인 색감이 칙칙해서 전망을 즐기긴 쉽지 않았다. 만약 봄이었으면 어땠을까 상상해보기도 했지만 상상으로 즐길 수는 없는 법이다.


이동하는 중에 멋진 집이 보였다. <글래디에이터>에서 주인공인 막시무스의 집으로 나오는 곳이라고 했다. 참고로 집으로 돌아가는 상상에서 나오는 집이다. 나는 토스카나에 오기 전에 일부러 <글래디에이터>를 보거나 그러지는 않았던 이유로 막시무스가 집으로 돌아가는 상상을 하는 장면까지는 기억이 났지만 이 집이 나오는 장면은 기억을 하지 못했었다. 사실 그 영화를 언제 봤는지도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오래 전에 본 영화긴 했다.


이 곳을 지나 도착한 곳은 반뇨 비뇨니라는 곳이었다. 반뇨 비뇨니 중앙에는 저렇게 큰 온천이 있다. 옛날부터 유황온천이 있는 마을이었다고 한다. 마을 중앙에 있는 온천은 옛날에는 이용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이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대신 족욕은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온천물이 인근 하천으로 가는 수로인 셈인데, 시간도 많고 해서 발을 잠깐 담가봤다. 일단 따뜻했고, 물의 느낌도 좋았다.


이렇게 수로를 흐른 물은 폭포처럼 골짜기로 떨어진다. 어째서 물이 흐르는 쪽이 유독 주위보다 높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풍경은 발도르차 전망대보다 나은 듯도 했다. 멀리 막시무스의 집도 보인다. 이 마을도 높은 언덕에 있어서 다른 곳의 풍경이 눈 아래로 넓게 펼쳐진다. 마침 풍경이 좋은 곳에는 벤치도 놓여있고 나무그늘도 있어서 우리나라였다면 김밥을 싸서 자주 놀러올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 곳곳도 아기자기하게 예뻤다. 동화 속 마을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수수한 매력이 있는 곳이었다. 어린이가 없는 놀이터도, 아직 점심시간이 되지 않은 레스토랑도, 손님이 많지 않은 기념품점도 활기차지는 않았지만 한적하면서도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이었다. 온천 마을답게 말이다.


다음 행선지로 가는 곳곳에 포도밭이 펼쳐졌다. 가이드 분이 우리가 갈 와이너리에 대한 설명을 하고 계셨다. 가는 길에 다른 유명한 와이너리가 있으면 그 와이너리에 대한 설명도 빼놓지 않았다. 이 투어를 함께 하는 사람들 중에는 와인에 대해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많았겠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귀에 잘 들어오진 않았다.

우리가 간 곳은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라는 와인으로 유명한 몬탈치노라는 지역이었다. 그 중에서도 우리는 Barbi라는 와이너리에 갔다. 수많은 와이너리 중에 하필 이 와이너리가 선택된 까닭은 와인 숙성에 오크통을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크통 대신 스테인리스를 사용하는 와이너리는 사진이 예쁘게 나올 리가.

와이너리는 어두웠다. 그래서 제대로 된 사진을 많이 건지지는 못했다. 와이너리 내부에는 물론 와인을 숙성하는 오크통도 있지만, 내부가 온전히 와인 숙성을 위한 공간만으로 이루어진 건 아니었다. 와이너리의 역사를 설명하는 공간도 있었고 빈티지 별로 와인을 모아놓은 창고도 있었다. 그 중에는 정말 오래된 와인들도 있었는데 그런 와인들이 있는 곳은 와이너리 안에서도 아주 어두운 곳에 있어서 자세히 보기는 어려웠다. 와이너리 내부는 전체적으로 신기한 공간이었다.


와인을 시음할 수 있는 시간도 있었다. 두 종류의 와인을 맛보는 정도로만 마셨는데 이 때만 해도 평소에 와인을 거의 마시지 않았던 터라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마셨다.


와이너리 투어를 끝내고 몬탈치노 마을로 갔다. 언덕에 있어 경치가 매우 좋은 곳이다. 동네에 잘하는 가게가 많아서인지 아니면 일정 상의 이유인지는 몰라도 여기서 점심을 먹는다고 했다. 우리는 가이드 분께서 추천해주시는 가게 중 한 곳으로 갔다.

초점이 안 맞았지만 이 사진밖에 없다.

역시 인간은 아는만큼 보고 느끼는 법이다. 와이너리 투어를 하기 전 가이드 분이 와인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부터 <신의 물방울>이라는 만화 이야기가 나왔다. 대학교 다닐 때 교수님들이 이야기하셔서 이름은 가끔 들어보긴 했지만 당시에는 그 만화가 어떤 내용인지 어떤 만화인지 전혀 몰랐다.


와인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파스타에 대해서도 잘 몰랐다. 미트 소스 파스타의 일종인 라구 파스타를 먹어본 적 없는 것까진 그러려니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때 파스타에 생면을 쓰기도 한다는 걸 아예 몰랐다. 내가 생각하는 파스타의 스테레오타입은 건면을 사용한 것이었다. 만약 지역에 따라, 요리에 따라 생면을 사용하기도 하고 건면을 사용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으면 생면으로 만든 라구 파스타를 더 재밌게 즐길 수 있지 않았을까.


<신의 물방울>에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는데 와인 이야기도 나오지만 이 지역 음식 이야기도 나온다. 당연히 생면으로 만든 파스타도 나온다. 만약 봤으면 나의 토스카나 여행은 다른 경험이 되었을 것 같다.


파스타를 먹었을 때 처음 느낀 건 면이 참 맛있다는 것이었다. 중국집 짜장면 중에 직접 손으로 때린 수타면 같은 느낌이었다. 미트소스인 라구도 물론 맛있었다. 일행 중에 스테이크를 시킨 분이 한 조각 주셨는데 그 것도 맛있었다. 토스카나 특산물이 소라더니 명불허전이었다.

남는 시간엔 몬탈치노 마을을 둘러봤다. 마을은 옛날 모습을 잘 간직한 아기자기한 모습이었다. 마을에는 잘 단장된 가정집들이 있고, 교회도 있고, 와인 가게가 특히 많았다.


마을을 둘러보면서 젤라또도 사먹었다. 젤라또는 이탈리아의 유명 젤라또 가게들에서 파는 것처럼 특별한 맛은 아니었지만 기본에 충실한 맛이었다.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 맛이었다.

마을 꼭대기에는 성이 있었다. 성이라고 하기엔 요새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성벽이 높은 것에 비해 내부 규모도 작고 안에 아무 시설도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피엔차다. 작은 마을 같지만 비오 2세라는 교황이 자신의 고향을 발전시키기 위해 만든 계획도시라고 한다. 이 마을은 1996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선정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발도르차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이기도 하다.

앞서 말했듯이 토스카나의 특산물은 소다. 그래서 소고기도 유명하지만 소가죽도 유명하다고 한다. 피엔차에는 소가죽을 직접 가공해서 가방이나 벨트 등 여러 제품을 직접 만드는 공방이 있었다. 가죽으로 물건을 만드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기도 한다. 더 정확히는 계속 물건을 만들고 계신다. 나는 딱히 살 물건은 없어서 구경만 하다가 나왔다.

식료품점도 많았다. 식료품점에서는 마치 우리나라에서 장이나 젓갈을 파는 것처럼 다양한 치즈, 햄 등을 팔고 있었다. 그 중에는 양 치즈를 판다면서 맛을 볼 수 있도록 가게 앞에 얇게 자른 치즈를 놓은 곳도 있었다. 이보다는 세련된 가게들 중에서는 비누나 향초를 파는 곳도 있었는데 나는 가격에 맞추느라 오가닉 비누를 샀다. 여러가지 향과 색이 있어서 종류별로 샀다. 이 것으로 토스카나 여행도 마침표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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