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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ossenzersdorf Aug 08. 2016

8. 베네치아

이 곳을 다시 오는 게 아니었는데

이 곳을 다시 오는 게 아니었는데.


나는 이 도시를 4년 전 온 적 있었다. 로마도, 파리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베네치아는 두 번 온 게 가장 후회되는 도시 중 하나였다. 전에는 1박 밖에 하지 않아서, 1박마저도 취침시간을 포함해 24시간 정도밖에 주어지지 않은 것이어서 도시를 충분히 보지 못했고, 이번에는 베네치아에서만 2박 3일 동안 여행하면서 제대로 보다 못해 과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베네치아를 구석구석 돌아봤지만 그래도 후회가 남는 도시였다. 두 번 올 곳은 아니었다는 얘기다.


JTBC <비정상회담> 1회

<비정상회담>에 나오는 알베르토의 고향은 베네치아라고 한다. 알베르토가 베네치아에 대해 한 얘기 중 하나가 중국인들이 베네치아에서 음식 장사를 해서 베네치아 음식이 맛이 없다는 것이었다.(1회) 그 음모론의 진위는 알 수 없으나, 확실한 게 하나 있다. 베네치아 음식은 이탈리아 어느 곳보다도 비싸고 맛이 없다는 것이다. 특별히 맛있는 걸 찾아다니지 않는다면 말이다.

내가 간 곳도 마찬가지였다. 비싸고 맛도 없었다. 나는 예전부터 라자냐를 먹고 싶었는데 국내에서는 이런저런 이유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가도 먹을 기회가 흔치 않았다. 그래서 베네치아가 이탈리아 여정의 마지막 도시이기도 해서 꼭 먹어보려고 시킨 거였다. 근데 맛이 없었다. 실망이었다.


4년 전에도 곤돌라를 탔다.  그 때는 혼자 탔는데 그래서 귀족이 된 기분이었다. 당시 나는 주워들은 이야기로 성수기에는 100~120유로 정도를 내야한다고 알고 있었고, 그게 한 명이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너무 큰 돈이라 다 낼 수 없었다. 그래서 소지금을 털어서 '곤돌리에에게 80유로가 있는데 한 명이니까 타게 해 주세요.'라고 부탁했다. 그랬더니 곤돌리에가 흔쾌히 승낙했다. 그날따라 곤돌리에가 기분도 좋고 설명도 열심히 해주셨다. 노래도 불러줬고, 사진도 찍어줬다. 나는 원래 곤돌라가 혼자 타면 싼 건지에 대한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덤터기를 쓴 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어차피 매몰비용이었기 때문에 아쉬워하지 않기로 했다.

이번에도 곤돌라를 탔다. 우리는 가능한 싸게 타고자 했다. 대담하게 60유로로 흥정을 해보기로 했다. 대부분 거절했지만 한 분이 그러자고 하셨다. 자기가 집에 가야 하는데 자기 집 앞까지만 태워주는 조건이었다. 당연히 종점은 우리가 모르는 추상적인 집 앞이 아니라 특정된 지점이었고, 일반적으로 가는 코스의 대부분을 돌았다. 그리고 운전을 마친 뒤 곤돌라를 묶어두고 집에 들어가는 곤돌리에의 뒷모습이 보였다.


당신이 충분히 부자라면, 일행이 있어도 혼자 타기를 권한다. 혼자 오면 당연히 혼자 타기를 권하고. 만약 내가 그 이유로 '곤돌리에에게 물어보고 싶은 걸 다 물어보기도 편하고, 가장 좋은 자리에 앉아 경치를 독점할 수도 있다.'고 말하면 충분히 설득력있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배에 앉아있는 동안 당신은 귀족이 된 느낌을 경험할 것입니다.'라고 말하면 어떨까. 어차피 여행은 일상에서 보고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경험하기 위해서 떠나는 거다. 좁은 배에 다닥다닥 모여앉아 수다를 떨면서 다들 사진기를 바깥쪽으로 향하고 사진찍기에 바쁜 건 그다지 특별한 경험같지 않았다. 다른 도시가 아닌 베네치아에서, 바포레토가 아닌 곤돌라를 탄다면 혼자 타는 게 특별한 경험이다. 커플이라면 둘이 타는 것까진 말리지 않겠다. 둘이라면 적어도 나란히 탈 수 있으니까.


다음에 간 곳은 리알토 다리였다. 파트리크 쥐스칸트의 소설 <향수>에서 주인공은 다리 위에 있는 향수 가게에서 일한다. 그리고 주인공이 떠나자, 다리가 무너져 향수 가게도 최후를 맞이한다. 이 소설을 보면서 다리 위에서 장사한다는 게 익숙한 느낌은 아니었는데, 그 때 떠올린 게 이 다리다. 실제로 이 다리 안에는 많은 상점들이 장사를 하고 있다. 다만 딱히 살 건 없는데 나만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니었는지 구경하는 사람은 많아도 사는 사람은 많지 않아보였다.


우리는 리알토 다리를 건너가 곤돌라가 많이 세워진 곳에서 우리가 곤돌라를 싸게 탄 건지 시험해보고자 했다. 표지판에 100유로 정도 받지만 80유로에도 태워준다고 했다. 60유로에 태워달라고 했더니 'in the next life'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재치있는 거절이었다. 싸게 탄 건 맞는 것 같았다.


다음날 아침 종탑에 올랐다.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에 있는 종탑이었는데, 종탑이니 높기도 했지만 도심에서 바다 건너 있어서 베네치아가 한 눈에 확 들어온다는 게 가장 좋았다. 한편 성당 앞에는 예술 작품인 듯한 금빛 구조물이 서 있었는데 이게 뭔지는 아직도 정확히 모르겠다.


무라노는 유리공예로 유명한 섬이다. 나는 지난 여행 때 베네치아에서 유리 공예품을 사서 아는 형에게 선물했다가 한국에서 열어보니 산산조각 나 있어서 결과적으로 쓰레기를 선물하게 됐다는 슬픈 과거가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유리공예 제품을 사는 대신 만드는 과정을 구경하기로 했다. 공짜로 보여주진 않는다. 입장권을 사서 들어가야 하는데, 스탠드가 있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안락한 관람 환경은 아니었다. 그래도 내용은 재밌었다. 유리로 말 같은 모양들을 만들어내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한 번은 볼 만했다.


부라노는 집 벽면을 형형색색으로 칠해 전체적으로 보면 알록달록한 느낌이 드는 섬이었다. 개별 가옥들이 엄청나게 예쁘게 지어진 건 아니지만 집마다 각자의 색을 칠하는 것만으로 섬이 이렇게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벽화마을 같은 게 늘어나고 있는데 여긴 벽화는 없지만 참고할 만한 사례가 될 것 같았다. 사실 굉장한 감명을 받을 수 있는 곳인지는 모르겠는데 사진은 기가 막히게 잘 나오는 곳이긴 하다. 사진이 여행의 중요한 목적이라는 분들에게 추천할 만한 곳이다.


리도 해변은 언제나 그렇듯 아름다웠다. 해변만 아름다운 게 아니라 바포레토를 타고 리도 섬으로 가는 길, 리도 섬에 도착해 해변까지 가는 길에 보이는 풍경이 모두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다만 같이 간 친구가 말했듯이 해수욕을 즐기는 연령대가 좀 올드한 느낌은 있었다. 아이들이 놀 만한 놀이터 같은 공간도 있었는데, 나잇값 못하고 놀았던 기억이 나긴 한다. 뭐 가끔은 그럴 수도 있지. 바포레토를 타고 리도 섬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한 섬에 세워진 베니스 영화제 홍보 광고판이 문득 눈에 보였다.


다음날 아침 산 마르코 광장에 갔다. 어디서 많이 본 풍경인 것 같았다. 알고보니 게임에서 보던 풍경이었다. 나는 대항해시대 온라인이라는 게임을 하는데 유독 베네치아는 현실과 비슷한 것 같았다. 게임의 시대적 배경을 고려하면 그만큼 베네치아가 과거의 모습을 잘 지키고 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산 마르코 광장 이외에도 베네치아 도시 내에 있는 여러 곳을 돌아다녔지만 기억나는 것은 구겐하임 미술관이 그날 문을 닫아서 못 봤다는 것밖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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