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세비야
세비야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이미 일주일 이상 스페인의 태양 아래 익은 상태였다.
걸어 다니기만 해도 지치고 더워서 삼십 분에 한 번씩 카페에 들러 시원한 커피를 들이켜고 싶은 충동과
싸워야 했다.
성당도 볼 만큼 봤고, 멋진 건물, 쇼핑 거리도 지겨워질 만큼 그 어떤 것도 내 감각에 와 닿지 못했다.
그렇게 녹아버리기 직전의 몰골로 걷고 있는데, 저 멀리서 빨간 옷을 입은 여인이 춤추는 모습이 보였다.
얼굴에는 완벽한 화장을 하고 구두를 신고 소매와 자락이 긴 빨간 드레스를 입고 플라멩코를 추는
여인은 잎이 울창한 나무를 배경으로 아주 아름다운 춤 자락을 선보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멀리서 보니 나무에서 막 자라난 붉은 꽃 같았다.
한여름 더위에 그녀가 어떤 심정으로 춤을 추는지, 그 공연을 위해 어떤 연습을 견뎠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땀으로 범벅돼 불평만 내뱉는 추한 우리들은 그녀의 고귀한 춤을 감상할 자격이 없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