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프리랜서 번역가로 꽤 오랜시간 일했다.
최근엔 주로 외국 회사에서 일감을 받는데 그들과는 스카이프나 이메일로만 소통한다.
오늘 주로 거래하는 중국에 위치한 글로벌 회사에서 6분짜리 번역을 세 시간안에 해 줄 수 있느냐고 연락이 왔다.
잠깐 낮잠 자려던 나는 얼른 일어나 책상에 앉았다.
다 해가려는 참에 다시 독촉 메일이 한 번 왔다.
다 해 놓고 보내놓으니 글자 수를 줄여달라고 요청이 왔다.
한 줄에 40글자 이하로 줄여야 한다는데 내 눈엔 40글자 이상이 없는데?
아무튼 시키는 대로 줄여주고 나서도
한 문장에 대해서 또 AS 요청이 와서 해 주고 나니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사람 쪼는 게 한국 회사 못지 않네 싶어서였다.
그런데 그 매니저가 Thank you for your patience 로 시작하는 메일을 보냈다.
미리 룰을 알려주지 않은 자기 잘못이며, 그래도 끝까지 성의를 다해줘서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그 한 마디에 내 마음은 눈 녹듯 풀렸다.
여러번의 메일이 오간 끝에 그는 'Really appreciated'라고 썼다.
‘수고했고, 고마웠다.’
직장 다닐 때는 좀처럼 들어보지 못한 말이었는데.
그 한 마디가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을까?
아무리 성의를 다해 일을 해다 바쳐도 돌아오는 건 지적 뿐이고, 고맙다는 말 한 마디 들은 적 없으니.
지구의 어느 쪽에 있을지도 모르는 얼굴도 모르는 상대를 믿고 일을 한다는 건 참 놀라운 일이다.
초연결 시대는 우리를 이렇게 낯선 타인을 신뢰하게 한다.
부작용으로 얼굴도 모르는 상대에게 사기를 치거나 피싱하는 일도 가능해 졌지만.
세계가 확장되고 타인을 믿고 마음열 수 있다는 건 디지털 시대가 주는 선물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