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A Nov 26. 2021

얼굴도 모르는 상대와 일한다는 것

나는 프리랜서 번역가로 꽤 오랜시간 일했다.

최근엔 주로 외국 회사에서 일감을 받는데 그들과는 스카이프나 이메일로만 소통한다.

오늘 주로 거래하는 중국에 위치한 글로벌 회사에서 6분짜리 번역을  시간안에    있느냐고 연락이 왔다.

잠깐 낮잠 자려던 나는 얼른 일어나 책상에 앉았다.

다 해가려는 참에 다시 독촉 메일이 한 번 왔다.

다 해 놓고 보내놓으니 글자 수를 줄여달라고 요청이 왔다.

한 줄에 40글자 이하로 줄여야 한다는데 내 눈엔 40글자 이상이 없는데?

아무튼 시키는 대로 줄여주고 나서도

한 문장에 대해서 또 AS 요청이 와서 해 주고 나니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사람 쪼는 게 한국 회사 못지 않네 싶어서였다.

그런데 그 매니저가 Thank you for your patience 로 시작하는 메일을 보냈다.

미리 룰을 알려주지 않은 자기 잘못이며, 그래도 끝까지 성의를 다해줘서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그 한 마디에 내 마음은 눈 녹듯 풀렸다.

여러번의 메일이 오간 끝에 그는 'Really appreciated'라고 썼다.

수고했고, 고마웠다.’

직장 다닐 때는 좀처럼 들어보지 못한 말이었는데.

그 한 마디가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을까?

아무리 성의를 다해 일을 해다 바쳐도 돌아오는 건 지적 뿐이고, 고맙다는 말 한 마디 들은 적 없으니.

지구의 어느 쪽에 있을지도 모르는 얼굴도 모르는 상대를 믿고 일을 한다는 건 참 놀라운 일이다.

초연결 시대는 우리를 이렇게 낯선 타인을 신뢰하게 한다.

부작용으로 얼굴도 모르는 상대에게 사기를 치거나 피싱하는 일도 가능해 졌지만.

세계가 확장되고 타인을 믿고 마음열 수 있다는 건 디지털 시대가 주는 선물인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하루만 불행하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