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가 읽고 구매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에세이 14]
어렸을 적 난 나의 방이 따로 없었다. 오빠 방 서랍장 한 칸이 나의 소유 공간의 전부였었다. 그곳에서 엄마 몰래 숨겨 뒀던 햄스터가 밤에 몰래 빠져나와 엄마를 기겁하게 만든 적도 있었다. 작은 방 한 칸 안의 더 작은 서랍 한 칸. 나의 수집의 역사는 그렇게 작았던 공간에서부터 시작됐다.
지금의 집으로 이사를 오면서부터 나는 나만의 방을 가지게 되었다. 처음에는 가지고 있는 물건이라곤 옷과 화장품이 다였기에 나의 방을 드레스룸으로 만들었다. 행거를 설치하고 화장대를 놓고. 그렇게 모두의 공간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책을 빌려 읽고 있던 나는 책을 구매하고 싶어졌다. 이왕 구매할 책, 어린 시절 채우지 못한 나의 공간을 더욱 '있어 보이게' 꾸며줄 지적인 책들로 골랐다. 고전 문학부터 인문, 과학, 경제 등… 비었던 나의 지적 허영심을 채워줄 책을 달에 기본 10만 원씩 계속해서 구매했다. 그렇게 책이 늘어나니 책장이 필요해졌다. 나는 나의 방에 놓을 책장을 구매했다.
책장을 구매해 보니 책에 쌓여 앉아 읽을 공간이 필요해졌다. 책상을 구매하기로 했다. 그러나 책장은 넣어져도 책상을 넣을 공간이 부족했다. 행거를 분해했다. 다른 가족의 옷은 각자의 방으로 다 옮기고 나의 방 한쪽, 스타일러 옆 공간에만 행거 일부를 남겨두고 가장 큰 공간에 원목 책상을 놓았다. 구색이 갖추어졌다. 나의 방은 이제 드레스룸이 아닌 서재가 되었다.
셀 수 있는 책 318권. 책장에 책을 채우고 책상 위 공간에도 책을 올려두는데 318권이 필요했다. 열심히 일해 번 돈으로 책을 마음껏 사서 채우니 멋진 어른이 된 것만 같았다. 나의 공간은 그렇게 멋있어졌다. 처음 한동안은 열심히 책을 읽었던 것 같았다. 그러다 한여름이 오니 무척 너무 더웠다. 이전에는 이렇게까지 덥지 않았었는데 언젠가부터 여름이 무지하게 더워졌다. 에어컨 바람이 센 거실에서 생활을 하기 시작하다 보니 나의 방은 차츰 정리되지 않고 계속 늘어나는 책과 짐이 쌓여만 갔다. 서재에서 창고방이 되고 말았다.
방을 정리하다 문득 만화책을 구매해 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처음 구매한 만화책은(사실상 첫 구매는 아니지만) 옛날 만화책 대여점에서 빌려봤던 순정만화의 감성이 그리워 서점 사이트 베스트에 있는 순정만화책으로 구매했다. 돈을 버는 사회인의 여유는 만화책 1권 5,400원(당시 인터넷가)은 우스웠다. 3배로 비싼 소설책, 비문학 등도 무지성 구매 하는데 그런 일반책들보다 3배 저렴한 만화책이 대수일까. 나는 만화책을 3배 더 많이 구매하기 시작했다.
작은 리빙박스에서부터 모이기 시작한 만화책들이 점차 팽창해지기 시작하자 공간이 부족했다. 스타일러 옆 최후의 행거조차 철거하고 안 입는 옷도 깔끔히 정리했다. 몇 가지 없는 옷은 오빠방 옷장과 안방의 옷장에 나눠 넣었다. 그렇게 2번째 책장, 만화책을 전시해 둘 책장을 구입해 설치했다. 썸네일 사진 속 만화책장은 24년 4월 20일 만화책장을 처음 설치하고 꾸며둔 모습이다.(현재는 책장이 3개로 늘었다. 그 모습은 차마 사진을 찍을 수가 없기에 가장 예뻤을 때를 남겨본다. 즉, 지금의 방 상태가 몹시 엉망이다.)
지금은 사진 속 모습 보다 2~3배 더 증식했다. 만화책이 이렇게 부피를 많이 차지할 줄 꿈에도 몰랐다. 엄마는 말씀하셨다. "너 그거 감당 못하는 거야. 그만 좀 사!" 옳으신 말씀. 감당 못 할 정도로 만화책을 구매하고 있었다. 그러나 멈출 수 없었다. 모으고 있는 작품들은 완결까지 모아야 하고, 그 사이에 나오는 신작들에 눈이 돌아가고 침이 고이는 걸. 내 방이잖아. 내가 갖게 된 '나만의 공간' 이잖아. 그렇게 나는 물질적으로 채워나가던 지적 허영심이 가랑이 찢어진 수집가의 허영심으로 변환되었다. 난 나의 분수를 지금도 모른 채 있다.
"덕질의 끝은 부동산"이라는 말이 있다. 캐릭터 굿즈들까지 구매하고 있는 요즘 더 큰 집과 더 많은 방의 개수를 가졌으며 하는 소망이 있다. 하중 걱정 없이 책을 쌓을 수 있는 안전한 집이 필요하다. 지금의 우리 집은 오래된 구축이라 만화책을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가 불안감에 휩싸여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만화책 구매를 멈추기엔 초판과 특전을 놓친다는 불안감이 짓누르는 수집병에 거린 나는 그것을 깨부수기가 여간 쉽지 않다. 몰랐을 때면 몰라도 수집 욕구가 충만한 나에게 이런 요소들은 절대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이제는 거실에까지 나의 만화책들이 나와있다. 엄마는 매일 도착하는 택배에 진절머리 나셨다. 지금은 더 큰 집으로 이사만이 답인 것 같다. 덕질의 끝으로 향하고 있다. 그러나 끝은 또 진정한 끝이 아니다. 시즌2가 있으니까. 난 지금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는 나조차 알 수 없지만 무엇이 나를 둘러쌓고 있는지는 이제는 확실히 알겠다. 그것은 채워도 채워도 모자란 나의 수집에 대한 욕망이다.
에세이가 떨어진 지는 한참 되었다. 처음부터 가지고 있던 에세이를 긁어모았을 땐 7편에 불가했었다. 지금 나는 14번째 에세이를 쓰고 있는 중. 즉 7편의 새로운 에세이를 계속해서 뽑아내었고, 앞으로 계획으로는 16편을 더 뽑아야 한다. 글감주제를 모으기 시급하다. 그렇게 글과 콘텐츠를 쓰지 못하고 보지 않아 불참 선언한 그날의 글감주제 「부동산」을 가져왔다. 가장 먼저 떠오른 문구가 "덕질의 끝은 부동산"이었다. 내가 지금까지도 현재진행 중인 멈출 수 없는 소유욕에 대한 나의 고찰을 적어보기 좋을 듯싶어서 이렇게 써본다.
공간에 대해서 써보면서 알게 되었다. 나의 이 욕망은 어렸을 때 나만의 방이 없었고 그렇기에 내 것이라는 소유를 들어낼 대상들 가짓수가 적었기 때문에 형성된 것이 아닐까 하는 나의 소비와 수집에 대한 합리적인 욕망의 출처를 말이다. 첫 시작이었던 지적 허영심도 마찬가지다. 활자 중독이라고 명 했긴 했지만, 그보다는 어렸을 때 채우지 못했던 탐구 욕구가 성인이 되어 밑독 터져 끊임없이 채우고 채우고 또 채우고 있는 것이라는 것임을 말이다.
글을 써보면서 나는 나를 조금 더 세밀하게 들여다보며 알아가 본다. 그런 글쓰기를 강력히 추천한다. 소크라테스도 말하지 않았는가. "나 자신을 알라"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그래야 타자를 이해할 수 있고 함께 사는 세상을 조금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하고 배려하며 아름답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림을 그려보고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