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라는 것이 두려운 게 아니다 [에세이 13]
태생부터 결혼이란 제도에 갈망이 없었던 모태 비혼인을 뽑자면 나를 뽑을 수 있을 것이다. '결혼식'이라는 허례허식의 화려한 '이벤트' 요소로써의 꿈은 꿔 본 적 한 번쯤은 있었던 것 같지만(이 또한 오래되어 기억나지 않음) 결혼식 그 이후에 대한 기대는 없었다. 동화책, 순정만화, 등 언제나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로 끝맺음을 두고 애프터 메르헨(After Märchen), 즉 해피엔딩 스토리 후의 삶을 가까이에서 지켜봐 온 나로서는 현실은 그다지 낭만적이지 못한 고난의 연속임을 보아 왔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거기에 부합해 나는 아이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불호보다는, 아이는 나에게 '부담'에 가깝다. 오죽하면 노후에 영위할 수 있는 여유 재산이 축적되어 있을 때 후원 개념의 다 큰 아이 입양을 생각 중이다. 내가 낳아 내 자식을 책임지고 키울 자신이 없다는 것이 가장 적확할 것이다. 내 가정을 이룬다는 목적에 가장 크게 적용되어야 할 '책임감'은 나 하나 즉, 1인분 이상을 발휘한 적이 여태껏 없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1.5인분 많게는 2인분까지 수치적으로(저축량이라거나) 보여야 할 텐데 도무지... 어쨌든 전혀 자신이 없고 그렇게까지 책임을 업고 이 세상을 살아야 하나 라는 이기적인(나 하나만을 생각하는) 마음이 깊다고 본다.
이렇기에 나는 나의 비혼에 대한 확고함을 최근 아빠한테 터놓았더니 "그런 걸 네가 왜 신경 쓰냐, 남자가 신경 써야지." 라신다. 세상에!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그런 구시대적 발언을 하실까.(그리고 그 남자가 신경 써야 하는 것을 본인 또한 못하신 분이다. 아빠, 이건 냉정히 짚고 가야죠.) 사람 인(人)은 두 사람이 기대어 버팀목을 형성하는 상형 문자라고 들은 기억이 있다. 나는 결혼이, 나의 가정을 이룸이 사람 인(人) 자와 같다고 생각한다. 한쪽이 기울면 버티지 못하는 게 가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텼다면, 그 가정은 한쪽의 희생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깨닫고 버티고 이끌어 와준 존재에 대한 경의와 존중과 사랑을 깊이 표해야 한다.
최근 감명 깊게 본 일본 소설이 있다. 나기라 유 작가의 《그대, 별처럼》이라는 작품이다. 불륜으로 가정이 파괴되기도 하고 새로운 가정으로 이뤄지기도 하는 모습, 한쪽에게만 의존하는 가정의 모습,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 함께하는 가정의 모습, 등... 사랑의 형태가 다양하듯 기구한 사연을 가진 각 가정들의 이야기로 완벽할 수 없는 가정의 형태를 들어낸다. 나는 《그대, 별처럼》 대사 중 아래의 대사를 가장 좋아한다.
- 자기를 스스로 부양하는 것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최소한의 무기입니다. 결혼이나 출산 등의 환경 변화에 따라서는 일시적으로 보관해 둘 수도 있죠. 그러나 언제든 다시 꺼내 쓸 수 있도록 늘 손질을 해야 합니다. 여차하면 싸울 수 있게 말이죠. 어디든 날아갈 수 있어요. 독신이든 결혼을 했든, 그 준비가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인생이 달라집니다.
그리고 서른두 살 된 내게 기타하라 선생은 그렇게 말했다.
반려가 있든 없든, 자식이 있든 없든, 자기 두 다리로 서 있는 것. 그것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이며, 자신의 나약함을 타인에게 전가하지 않기 위해서다. 인간은 무리 지어 사는 동물이지만, 서로 돕는 것과 의존은 다르니까.
- 그대, 별처럼, p. 385
남편의 불륜으로 무너졌던 아케미의 엄마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안정을 취하며 자립하기 시작한다. 혼자인 여성들끼리 모인 터전으로 이주해 자식에게 의존하던 모습을 탈피해 간다. 독특한 형태의 가정을 이룬 아케미도 여차할 때를 대비할 수 있는 최소한의 무기를 가꿔간다. 어떤 형태든 어느 시기에든 혼자서 살아가야 할 때가 있음에 자기 두 다리로 서있기 위한 최소한의 준비는 우리들 누구든 필요하다.
최근 본 유튜브에서 '나 혼자 사는 이유'에 대해 다룬 영상을 보고 많은 공감을 했다. 가장 큰 공감을 불러일으킨 대목은, '고독사에 대한 두려움'과 '늙어 아플 나를 간병해 줄 존재에 대해'서였다. 대가족 형태를 벗어난 지금 누구든 고독사 할 수 있다(비혼이든 기혼이든). 우리는 '죽음의 존엄성'을 따질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길 위에서의 존엄'을 따져야 한다. 영상에서는 죽음 이후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이야기와, 나의 간병 수발은 간병인의 몫이지 배우자의 몫이 아니다, 늙고 아플 때 간병을 목적으로 배우자를 선택해 결혼하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는 단호하게 지적하는 그 부분이 정말 크게 와닿았다.
맞다. 그러한 이유로 혼자라는 것이 두려워서 결혼을 하는 것은 바보 같고, 이야말로 정말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대가 바뀜에 따라 다양하게 폭 넓어진 직업군과 더 나은 사회 보장 복지 혜택에 우리의 늙음을 기대해야지 의존하는 형태의 가정이 만들어지면 안 된다는 나의 신념이 더욱 확고해졌다.
https://youtu.be/BP-QTlaOCh4?si=o0MrucrBsyK_JvsL
나는 비혼주의자이다. 나는 혼자 사는 삶의 길을 걷기로 했다. 나는 나의 행복을 찾아 더 많은 이들과 어울려 이 생을 즐길 준비를 한다. 나는 행복 위에서의 존엄한 삶을 살다가 갈 것이다.
에세이를 써야 할 때 위의 영상을 보았다. 이때야 말로 나의 비혼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때가 도래했노라 싶었다. '비혼에 연애도 안 한다?' 완전 딱 내 얘기다. 난 지금 연애는 유보한 상태이다. 빠르면 40대에 자유연애를 꿈꾼다. 지금 내가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은 다들 결혼이란 목적이 뚜렷할 나이이기 때문에(난 남자들의 비혼을 믿지 못한다. 딩크도 마찬가지) 차라리 더 나이 듦에 사랑을 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때를 대비해 최소한의 총알을 장전하려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글로소득!) 내 꿈은 어린 남자 친구 키우기! 니까.(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