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가 된 시골쥐

나와 맞지 않은 시티룩을 입고서 [초단편 14]

by 연서글서


무사히 편집을 끝내고 서른네 번째 영상 업로드를 마쳤다. 규칙적이진 않지만 그래도 꾸준히 영상을 찍어 틈틈이 편집해 올리다 보니 어느 시점부터는 미세하게나마 조회수와 구독자 수가 천천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반복되는 일상 속 무료함을 느낄 때 우연히 본 유튜브 영상이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브이로그였다. 특별할 것 없는 하루를 찍어 올린 영상인데도 시청하며 함께 소통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것을 보고 흥미가 생겼고, 이 정도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도전해 본 게 지금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한 자릿수였던 구독자 수가 어느새 1백 명을 넘어섰다. 아직까지 어떤 층의 사람들이 별것 아닌 이런 영상을 보는 것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우선 감사하다. 댓글도 달리기 시작하니 읽는 재미도, 답글을 다는 재미도 상당했다. 특히 나의 영상 중에서 가장 많은 댓글이 달린 영상은 이제까지 모아 둔 만화 책장 소개 영상이었다.


그 뒤로는 만화책 수집에 관련된 오타쿠 일상 브이로그로 점점 방향성이 잡혀 나가는 듯해 내가 어느 정도 소화할 수 있을지 고민 중에 있었다. 영상 중 오타쿠로서 흥미를 느끼는 주제를 띌 때마다 나의 텐션이 더 올라 그런지 보는 독자들도 즐거워하는 듯해 이 방향으로 가는 것이 맞는 것 같긴 했다. 오늘 올린 영상도 나와 같은 만화책 수집러들이 아는 그런 일상의 모습이다. 그동안 모은 책들 중 방출할 것을 중고서점에 판매하는 영상인데 생각도 못 한 약간의 으쓱한 해프닝이 가미되어 댓글 반응을 조금 기대하고 있다.


퇴근 후 집에 도착하자마자 어제 올린 영상 댓글을 확인했다. 오늘은 꽤 많은 댓글들이 달렸고 하나하나 감사의 인사를 달았다.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한 번씩 듣는 편이긴 해요(웃음). 이번 영상에는 유독 많은 수를 차지하는 긍정적인 호응에 입꼬리가 올라가며 가볍게 손가락을 움직였다. 뿌듯함에 기분이 상승 곡선을 탔을 때 한 댓글이 나를 현실로 잡아 끌어내렸다.


@dkrvmffj

13:55 ㅋㅋ 방구석 오타쿠라 그런가 옷 입은 것 좀 봐.

어려 보이려고 용을 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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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상들은 댓글이 그렇게 많이 달리는 편이 아니다 보니 이와 같은 악플이 달린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고, 심장이 벌렁벌렁 뛰기 시작했다. 해당 댓글에 '싫어요'도 아닌 '좋아요'를 클릭한 사람이 3명이나 찍혔다니 저 댓글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심장이 더 거세게 뛰었다. 여기에는 뭐라고 답글을 달아야 하는 걸까. 13:55 찍어둔 타임라인에는 시청자들의 반응을 기대했던 해프닝 장면이 찍힌 부분이었다. 내용은 중고서점의 직원이 생년을 확인하는 장면이 들어있었다.


“총 35,700원이 고요, 생년월일이 어떻게 되시나요?”

“92****”

“아! 죄송해요. 어려 보이 셔서요!”


미성년자는 책을 판매할 수 없는 규정 때문에 연령 확인을 한 장면이었다. 삼십 대 중반에도 미성년자로 오인받은 해프닝에 우쭐했던 나였기에 영상을 올리기 전부터 구독자 반응을 기대했었던 부분이었다. 좋은 댓글들만 달려봤기에 이번과 같은 반응은 생각도 못 했었다.


이날 내가 입은 옷은 별것 아니었다. 많이 추워져서 하얀색 패딩 자크를 목 끝까지 올려 입은 게 다였을 뿐이었는데. 분명 이십 대 때만 해도 나도 나름 여성스럽게 꾸며 입기 좋아했었다. 아이라인도 두텁게 그리고 짧은 치마도 입고, 그러나 삼십 대가 되면서 모든 게 다 귀찮아 화장도 하지 않고 머리도 질끈 묶어 다니며 편한 옷으로 무장한 채 출퇴근해 왔다. 얼핏 보면 시험에 찌든 학생들의 패션 같긴 하지만, 이게 그렇게 어려 보이려고 용을 쓴다는 말을 들을 정도인 걸까? 오랜만에 들어본 원색적인 비난에 심장이 덜컥 쪼였다.


이날 이후부터 나는 나의 모습을 찍어 올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커져갔다. 그러나 댓글 하나에 주눅 들은 모습을 보이기엔 상처 난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서 옷을 새로 다 장만했다. 나와 다른 스타일을 추구하는 친구들에게 받은 쇼핑몰 주소에서 베스트 상품들을 구매해 입었다. 영 어색했지만 참았다. 미용실도 갔다. 삼십 대가 된 후 염색 한 번 한 적 없던 새카맣던 머리카락에 색을 입혔다. 친구가 밋밋한 헤어가 학생처럼 보인 것일 수도 있다 해 헤어 스타일도 바꿔 봤다. 오랫동안 손 놓았던 화장도 하고 영상을 찍어 올렸다. 그때와 같은 반응은 더 이상 없었다. 그렇게 나는 부족했던 이 나이대의 옷장을 채우기 시작했다.


@vosdldjTejs

엥? 요즘 올라오는 영상들 별로… 나만 그래?

만화책 소개가 재밌어서 구독했었는데 순 헤메코만

올라와서 재미 없어짐. 헤메코 볼 거면 다른 사람 거 봤지.

구독 취소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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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쥐와 도시쥐」를 글감으로 받았을 때 어렵지 않게 글을 성공적으로 완성할 줄 알았다. 쉽게 생각하고 초단편소설을 써보았다. 그러나 막상 초고가 완성 되었을 때 이번 글은 실패한 글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전하려는 내용이 잘 표현이 되었는지, 생각했던 주제의 단상에 부합한 내용인지 스스로에게 의문이 갔다. 널리 알려진 이솝우화 「시골쥐와 도시쥐」는 안전한 재미없는 삶과 향락을 즐기는 위험한 삶 중 어느 삶이 더 좋은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의 이번 글에 녹여낸 것은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여 선택한 길과 타인의 시선에 집중하여 선택한 길에 대한 이야기를 표현했는데 글감 주제에 부합하는 글이라고 봐지는지 잘 모르겠다.


해석이 필요한 유머는 실패한 유머랬다. 그렇다면 해석이 필요한 소설은 실패한 소설인 것일까? 그렇다고 하기에는 역자 해석란이 있는 소설책들도 있어서 그건 아닌 것 같고 그저 나 스스로가 떳떳하게 성공적인 글이라고 하지 못한 이 애매모호함이 실패한 글로 이끄는 것 같다. 그러나 글쓰기에 실패한 글도 써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패한 글이 왜 어떠해서 실패했는가 어느 부분이 부족했는가 오답노트로써 이번 글을 남겨본다.


하지만 글 자체로는 나쁘지 않게 마음에 든다. 그러면 됐다.(그,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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