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취준생의 일주일

자기 성찰의 글쓰기란 [초단편 13]

by 연서글서


20XX.XX.X4 | 月 | ☁︎


오늘도 엄마, 아빠, 동생 모두 출근하고 나서야 비로소 나의 아침이 시작 됐다.

지난주에는 집에서만 공부를 하려 하니 안 된 듯. 운동 한 시간 하고, 근처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토익, 자격증 오늘 분량 끝. 자소서 좀 써봤음.

오늘 나름 잘 해낸 듯. 내일도 나와서 하는 걸로. 아자아자!




20XX.XX.X5 | 火 | ☁︎


근육통에 시달려서 오늘은 결국 못 나갔다. 나갈 수가 없었다. 괜찮아 내일 나가면 돼.

아직 화요일인 걸.




20XX.XX.X6 | 水 | ☃︎


너무 춥다. 눈이 펑펑 내린다. 창 밖에서 신난 소리가 타고 올라온다.

초딩들 다 나온 거 같다. 뭐가 저렇게 즐거울까?

근심걱정 없던 저 시절이 그립다. 책임질 것도 없는 저 나이 때가 최고 행복했던 거 같다.

저 땐 참 좋았었는데…


저 애들은 알까? 지금의 순진무구함이 한 글 자만 빠져버리면 멍청함이 된다는 것을…




20XX.XX.X7 | 木 | ☔︎


어제 쌓였던 눈은 밤사이에 흔적도 없이 다 녹아 버렸고,

빗물이 되어 하수도로 흘러가 다시 바다로 가겠지.


누구는 쉽게 비가 되어 쉬운 순환 과정을 거치지만,

저 얼음 결정들 또한 걸린 시간만 다를 뿐 결국엔 다시 물이 되어 흐른다.


지금은 도태된 나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똑같아질 거야…




20XX.XX.X8 | 金 | ☼


날씨가 좋아 밖에 나갔다. 겨울치곤 더운 날씨인 듯.

실내에서만 보내기 아까워 주변 공원에 산책을 나갔다.


개들을 데리고 산책 나온 아줌마, 아저씨.

피크닉 세트를 대여해 나온 어려 보이는 커플.

손에 커피 한 잔씩 들고 무리 지어 산책 중인 회사원.


같은 날, 같은 시각, 같은 장소 모두 다 한 자리에 있다. 나도 있다.




20XX.XX.X9 | 土 | ⛅︎


주말이 되어 온 가족이 다 함께 모여 치킨을 먹었다. 동생이 쏜 거다.

요즘 다시 유행하는 흑백요리사 2를 보며 동생이 자기도 만들 수 있을 거 같다고 한다.

웃음이 난다. 저 사람들이 그냥 요리사가 됐나… 지가 어떻게 함?

엄마, 아빠는 동생한테만 유하다. “우리 OO 이는 요리도 잘하겠지~” 하며 동생의 허세에 응해준다.

저거 버릇없이 큰 건 다 우리 부모님이 잘 못 키워서 그런 거다.




20XX.XX.X0 | 日 | ⛅︎


주말이 다 끝나간다. 이번 주에는 운동을 하루 밖에 못 갔네; 내일부터는 정말 열심히 다녀야겠다.

다음 주에 공부할 것들도 다 체크해 뒀다. 아자아자!


비록 지금은 이렇다 할지라도 희망과 근심을 그리면서 바람직한 내일을 소망한다.

- COSMOS




― 해석 ―

이 일기에는 숨은 장치가 셋 존재한다. 첫 번째로 화자의 '감정'을 '날씨'로 표현했다. 월요일 일기를 보면 파이팅 하는 시작으로 기분이 좋아 보이지만, 날씨는 흐림이다. 자신만 빼고 모두 출근하는 가족들의 눈치를 보고 있는 중이며, 혼자만 백수 취준생인 것에 대한 우울감을 잊으려 과하게 텐션을 올린다. 두 번째로는 수요일 일기 내용 '순진무구함이 한 글 자만 빠져버리면 멍청함이 된다는 것을…'에 있다. 여기서 말하는 한 글자는 '미(未)'로 놀기 좋아하던 '미성년' 화자가 나이를 먹고 '성년'이 되면서 오랫동안 취준생으로서, 그냥 쉬었음 청년인 지금의 화자 자신 상황에 대한 심리를 나타내는 문장이다. 즉, 놀기만 해도 아무 걱정 없었던 어릴 시절을 그리워하고 어린아이들을 질투하고 있음을 보인다. 마지막 세 번째가 가장 큰 반전을 가진다. 일기의 날짜를 보면 일자의 앞자리가 가려져 있다. 이것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이 날 일요일을 '0(제로)'로 만들기 위함이다. 다시 말해, 일요일 화자의 '다짐'은 제로 '없던 일'이 되어 버림을, 다음 주 화자의 모습을 예고하는 것이다. 다음날이 새로운 시작인 '1'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냐라는 시선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아니다. 이 이야기는 꽉 닫혀있다. 다른 날 일기 내용에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다. 토요일 일기 내용과 주말 날씨 '맑음'에서 알 수 있다. 명성 있는 유명인이 걸어온 노력의 결과는 인정하는 화자이지만, 바로 옆에서 지켜봐 온 동생의 노력은 무시하며 낮잡아 본다. 이 화자는 자신과 다른, 한 사람 몫을 하고 있는 동생을 계속해서 운이 좋아 취업에 성공한 것으로 생각한다. 동생에 대한 열등감이 동생을 무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자는 평일 동안 열심히 일해온 가족들과 똑같이 주말을 함께 TV 앞에서 힐링하며 보낸다. 일기 내용을 보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제대로 취준생으로 해온 것 없으면서 심적으로도 아주 편안하고 주말은 노는 날이란 인식을 가진채 일요일 저녁 무렵에서야 '내일부터, 다음 주부터' 라며 스스로를 응원한다. 결국 행복회로를 잔뜩 돌린 정신승리의 일종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자신과 같은 환경 속에서 자라온 동생의 노력의 결과는 무시하며 쉴 건 다 챙겨 쉬는 화자의 '다짐'은 과연 힘이 있을까, '다짐' 한 마디로 화자의 인생이 바뀔까라는 의문의 시선을 던져본다.




일기의 형태를 빌려 쓴 초단편소설은 올해 첫 글쓰기 1월 쓰다:Re 모임의 글감 주제 「일기」로 제출한 글이다. 해석글은 없었다. 우리 모임에는 글을 읽고 다 같이 글에 대한 이야기를 추론하는 과정이 있기에 숨겼고, 나의 글에 대한 해석을 할 때 비로소 꺼낼 수 있었다. 반전을 가진 소설이기에 해석과 다시 보는 재미를 주었다. 확고한 작가 나의 견해가 담겨있다. 모든 취준생, 그냥 쉬었음 청년을 비하하는 내용은 아니다. 그저 화자처럼 이러한 행태를 보이는 이들을 딱 잡아 꼬집고 싶었다. 정말로 최선을 다해 노력해 보았는지 묻고 싶었다.


이 달 함께 본 콘텐츠로는 불렛저널 다이어리 콘텐츠로 유명한 저자 리니 작가님의 《기록이라는 세계》를 읽었다. 나는 평생 일기를 제대로 써온 역사가 없었다. 초등학생 때 써야 하는 방학일기 숙제도 마지막 날 몰아서 쓰곤 했다. 그러나 올해는 달라지고 싶었다. 일기를 꾸준히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나는 지금까지도 꾸준히 두 가지의 일기를 쓰고 있는 중이다. 감정일기와 5년 일기이다.



감정일기는 MOODA라는 앱을 통해 쓰고 있다. 그날 감정을 색과 표정으로 보여주어 모아 놓고 보면 나의 감정 변화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기록이라는 세계》는 "부정적인 감정에 사로잡혀 있을 땐 보이지 않던 것들이, 시간이 흐르고 마음이 가라앉자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어요." "나 자신과 삶을 더 사랑하게 되었노라고 답하고 싶어요. 실수 하나에 내가 싫어지고, 실패 하나에 내가 미워졌던 시절을 지나서 내가 경험하는 인생의 모든 순간에 나름의 의미와 이유를 붙여줄 수 있게 되었거든요. 이 과정을 통해 저 자신에게 더 나아질 기회를 선물"이라고 일기 쓰기에 대한 믿음을 엿볼 수 있었고, 한 달을 꾸준히 써오면서 이 말들이 사실인 것을 이제는 나도 알게 되었다.


5년 일기는 2030년까지 나의 마지막 삼십 대를 담기 위한 용도로 시작했다. 서른다섯에서 아홉까지. 사십 대가 되기 전 마지막 발버둥의 심정으로 5년 간의 성장 기록용으로 쓰고 있다. 오롯이 나라는 존재에 대한 집중해 보는 5년의 시간을 가지며 기록해 본다. 나를 알아가는 글쓰기로 오늘 일기를 한 번 써보는 건 어떨까?


❝ 하루라는 단위에 집중할 땐 내가 살아온 365일 중 300일은 별로인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달력에 기록된 일주일, 한 달, 6개월, 1년의 시간은 다른 말을 하고 있더라고요. 오늘 하루가 별로여도 괜찮았어요. 시간이 지나고 보니 힘들었던 날도, 무의미해 보였던 날도 모두 나를 만들어온 소중한 시간이었거든요. ― 《기록이라는 세계》


❝ 실제로 나는 일이 꼬여 자괴감이 들 때마다 다이어리를 펴고 내가 해온 일들을 복기한다. 그러면 깨닫게 된다. 내가 100가지를 다 망친 게 아니라 그중 두세 가지에서 실수했을 뿐이며 나머지 97가지는 여전히 잘 굴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 증거를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바닥을 쳤던 자존감은 다시 균형을 찾는다. ― 《거인의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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