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떤 부류에 가까울까?
우리는 대부분 우리 스스로가 이타적인 사람이라고 믿는다.
이타적이라고 하기에는 마음이 찔린다면, 최소한 이기적이지만은 않다고 느낄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대부분 우리가 남을 위해 해준 걸 기억하지,
남이 우리를 위해 해준 건 잘 기억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미묘한 기억-덮어쓰기는 우리가 경험하는 관계의 어려움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이다.
내가 더 많이 해줬네, 너가 더 많이 해줬네 같은 주제는 친구, 가족, 연인 사이에서
무수하게 반복되면서 서로의 마음에 앙금을 만들어내는 주제이니까 말이다.
최근에는 특히 '나르시시스트'라는 단어가 자주 언급되는 것 같기도 하다.
남보다 자기 안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해로운 사람,
이것이 사람들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회자되는 나르시시스트의 정의이기도 하다.
그런데 한편으로, 우리는 절대로 이런 해로운 사람들처럼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칠 일도, 상처를 줄 일도 없는 선량한 사람들일까?
글쎄, 곰곰이 되돌아보면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분명히 살면서 누군가에게 말이나 행동으로 상처를 준 순간이 있을 수밖에 없다.
왜냐고? 그건 우리가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의도와 다르게 말이나 행동, 마음이 읽힐 순간은 차고도 넘친다.
그건 너의 상황, 나의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며
실제로 내 말이 무신경했을 수도 있고 그로 인해 상대가 다른 때와는 달리
특히 타격을 입을 만한 상황에 처해있어서 였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이 모든 상처와 심기불편함은 여러 우연의 일치에서 비롯된 결과라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상처를 받은 입장에서도, 준 입장에서도
이 모든 불편함을 좀 더 가볍게 생각할 만한 여지가 생기는 것도 같다.
나를 특히 무시해서, 내가 모자라서, 적절히 대응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나와 그의 상황과 심성, 순간의 감정이 개입한 부지불식간의 결과이니까 말이다.
결론적으로 누가 나의 어떤 부분으로 인해 심기가 불편했거나,
마음이 상했을 만한 순간은 내가 모르는 사이에도 이미 몇번이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그걸 나에게 드러냈느냐 아니냐의 차이일뿐.
그렇게 보면 차라리 나에게 속시원하게 그런 불편함을 얘기해줬으면 싶지만,
막상 말로 들으면 기분이 썩 유쾌하지 않은 것도 사람의 마음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모두 조금씩 이기적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이기적인 걸 인정할 때 남이 이기적인 게 보이고,
그러다 보면 조금씩 이 본능적인 욕구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생기게 된다.
'나는 이타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이기적으로 굴었을리 없어'와 같은 생각은
내가 만든 나의 이미지 안에서 진짜 나의 행동과 모습을 바라보지 못하는 허상과도 같다.
내가 이기적일 수 있는 가능성을 의심하지 못하는 순간이야 말로
내가 남들에게 가장 이기적이어질 수 있는 순간의 시작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러한 의심의 가능성에 우리를 자유롭게 내맡겨야 한다.
내가 어떤 사람이어야 된다고 생각하기보다,
불완전한 사람으로서 때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고
나의 안위나 이익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내가 만든 나의 이미지를 지키기 위한 방어적인 태도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결국에 내가 엄청나게 선하거나 이타적인 사람이 되지 않고도
남들과 그럭저럭 잘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을 진정으로 위하거나 존중하지 못하는 사람은
어떤 일관된 특징들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이들은 악한 사람은 아니지만, 어떠한 연유로 남을 배려하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면서 고립되기를 자처하는 부류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이같은 특성이 '하지 않는'이 아닌 '하지 못하는' 역량의 문제에 가깝다는 것이다.
다음 글에서는 진짜 이기적인 사람들의 몇 가지 특징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