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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리스EGGIE Apr 28. 2023

풍경이 사라져 그린 풍경화

산책을 하다 발견한 사라진 풍경에서의 영감

한국과 미국에 오가며 사는 나에게 집에 가만히 있지 못하고 도시 곳곳을 돌아다니는 습관이 생겼다. 특히 새로운 그림을 시작하기 전에 마치 준비 운동을 하듯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나의 긴 산책은 주로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까지 이어졌다. 해가 뜨고 지는 사이, 모두가 바쁜 낮의 도시와 조우했다. 그 시간대 도시의 소리, 향기의 변화가 만들어내는 인상이 종종 그림 속 이야기가 되었다. 낯선 공간을 발견하거나 주변의 대화를 엿듣고 느낀 감정을 모양과 색으로 표현해 보기도 했다. 어떤 날엔 아무런 계획 없이 지하철역 한 지점을 거점으로 짧은 여행 같은 산책을 했다.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듯이 걷고, 바라보다 멈추어 상상에 잠기길 반복했다.


그날은 문득 잠시 일하던 서울숲역 근처 공터의 풀밭이 떠올랐다. 높은 건물들 한가운데 아주 넓은 공간이 그저 식물들을 위해 존재했다. 정성껏 키워낸 나무나 꽃들의 다양한 종류를 보면 ‘공터의 풀밭’이라기보다 ‘유럽의 작은 정원’ 같기도 했다. 미국의 동화 작가 타샤 튜터의 정원처럼 모든 식물이 사람의 손으로 부지런히 심겨 있었다. 서울숲역에서 내려 설레는 마음으로 풀밭을 향해 올라갔다. 사진을 찍을 준비를 마치고 지상에 다다랐다.


풍경은 회색이었다. 지하철역 주변 공터가 비어있는 상태로 남아있을 리 없었다. 도시에서 자연은 언제든 인공물로 대체될 위태로운 상태인 것을 잠시 잊고 있었다. 공터 한가득 세워진 차들이 주변 네모난 긴 건물들을 잘라 옆으로 눕힌듯했다. 햇빛이 비치니 번뜩번뜩 하면서 차가운 반사광이 빛났다. 반짝반짝이 번뜩번뜩으로 바뀌어 버렸다.


빼곡히 들어선 차들 사이로 햇빛에 바짝 마른 황토색의 건조한 모래가 보였다. 메마른 주차장 바닥의 모래 찌꺼기가 건조한 바람에 날려 탁한 공기와 어울렸다. ‘이제야 어울리네. 원래 이랬어야 했다.’ 하는 퍼석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사진을 찍지 않았다.


사진 대신 머릿속에 작은 풍경화를 그렸다. 멀리서 보이는 공터의 풀밭에는 무릎 위까지 오는 연한 녹색의 풀들이 한 덩어리가 되어 폭신한 이불처럼 보였다. 가을의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온갖 빛깔을 내며 반짝이는 풍경이었다. 풀밭 사이로 얼굴을 다가가면 촉촉하고 진한 갈색의 흙이 초록 줄기들에 찐득하게 달라붙어 있다. 그리고 그 주변을 새카만 개미들이 길을 내며 걸어 다닌다. 공터의 풀밭은 초록빛 우주에 온갖 색의 별들이 반짝이는 다른 행성의 하늘 같았다. 눈을 감으니 높게 뻗은 주변의 건물들에 대비되어 작고 깊이 파인 웅덩이 같아 보이던 풀밭이 보였다.


집에 돌아와 사라진 풍경을 기억해 캔버스에 담았다. 실제로 그림을 그리는 시간보다 상상하는 시간이 길었다. 이미 사라진 풍경을 기억해야 했기 때문에 눈을 감아야만 보이는 것들이었다. 기억 안에서 그곳은 졸음이 올 때 몸을 누일 수 있는 작은 침대,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는 유일한 옹달샘, 문이 없는 방에 하나 남은 창문, 지구 밖으로 떠난 우주인이 숨을 쉴 수 있는 동그란 행성 같았다. 회색빛 도시에서 우아한 빛을 내는 ‘공간’을 볼 수 있었던 짧은 순간을 나는 그렇게 묘사했다.       


사람들이 그저 스쳐가는 거리를 산책했다. 나의 산책은 목적을 가진 이동과 달리 멈추고 쉬는 시간이 중요했다. 멈춤은 지나칠 수 있는 풍경을 오랫동안 기억하게 만드는 힘을 줬다. 그래서 서울숲의 사라진 풀밭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그곳에 머물며 사진처럼 멈춘 찰나의 풍경을 그리지 않았다. 도시 개발로 인해 황패 하게 변한 풍경도 그리지 않았다. 나는 사라진 풀밭의 기억을 여러 사물에 빚대어 새로운 풍경화를 그렸다.


산책을 하다 마주치는 꽃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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