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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간단 리뷰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처음으로 읽는 김영하 소설

by 노랑연두


김영하라는 소설가는 유명한데 웬일인지 그의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었다. 되려 처음으로 읽은 건 그의 에세이집이었다. 십 년 전 회사에서 하던 독서모임에서는 돌아가면서 책을 선정하면 일괄로 구매해서 같이 읽었는데 그때 같은 팀 팀원이 ‘보다 ‘를 추천했기 때문이다. 글은 신선했고 흥미로웠다. 마치 알쓴신잡의 그처럼. 그래서 소설도 한번 시도해 봤지만 소설은 너무 매운맛이라 끝까지 읽을 수가 없었다. 그 뒤로 그의 에세이집만 몇 권 더 읽었었다.

몇 주 전 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리고 나서도 한참을 책상 위에 올려놓다가 2시간 전쯤 책을 집어 들었고 끝까지 읽어냈다. 이제는 선정적이고 염세적이라 할 법한 이 소설을 읽어낼 만큼 나이가 들었나 보다.


책을 40페이지쯤 읽었을 때인가 첫째 아이가 와서 물었다.

무슨 내용이야?

고객을 찾기 위해 신문과 잡지를 읽는 주인공이 자신의 고객 이야기를 알려준다며 시작한 이야기가 형제 모두와 몸을 섞는 여자와 형이 폭설이 내린 도로에 갇힌 부분으로 접어들었을 때였다.

엄마도 모르겠어. 더 봐야 할 거 같아.

9살 아이의 눈높이에 맞게 내용을 정리할 수 없어 그렇게 대답했다.


다 읽었지만 여전히 아이에게 설명하긴 쉽지 않다. 인생을 파괴하고 싶은 사람들을 찾아서 파괴를 도와주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는 클림트의 유디트를 닮은 두 여자를 자살로 이르게 만드는 어떤 남자와 그녀들을 돕는 남자의 이야기? 아니면 존재의 허무함을 느끼는 자들을 돕는 자와, 그 자들의 허무함을 증폭시키는 자의 이야기인가? 어떻게 표현해도 초등학생 어린이에겐 쉽게 설명할 수 없는 내용이긴 하다. 그래도 뭔가 생각에 생각을 꼬리 물게 하는 여운이 있는 소설이었다.


예전에는 그저 선정적이라고만 생각해 덮어버렸던 이 소설이 이번에는 선정적인 소재를 넘어서 다루는 방식이 보이기 시작했다. 요즘 creative writing 수업을 들으며 매주 500 단어짜리 이야기를 쓰고 단편소설을 읽고 감상을 써내는 탓인가. 그런 눈으로 봤을 때 이 소설의 문장들은 정제되었고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옛날 소설인데도 옛날 소설 느낌이 많이 나지 않다.


아무튼 19금의 좀 거북한 내용들이 나올 수 있지만 그걸 충분히 견딜 수 있는 독자라면 읽어볼 만한 책이다. 나왔을 당시 왜 그렇게 센세이셔널했는지 이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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