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평 짜리 몽글의 방
나와 같이 살기 전, 몽글은 사람 하나 겨우 누울만 한 작은 원룸에 살았다. 몽글의 방은 진동했다. 벽에 손을 대면 미세한 떨림이 감지됐다. 건물 앞 도로에 다니는 차들은 땅을 흔들었고 그 떨림이 방 안까지 느껴졌다. 처음 이 집에 왔을 때는 이런 일상적인 지진에 익숙해진 몽글이 낯설었다. 가끔 트럭이라도 지나가는지 앉아있던 바닥이 출렁였다. 이 집에서 처음 잠든 날 집이 무너지는 꿈을 꿨다. 일상적으로 쌓여온 작은 균열들이 폭발하듯 한 번에 모든 게 무너졌다. 진동은 일상적이었고, 사고는 갑작스러웠다. 꿈속에서 난 속수무책이었다. 잔뜩 웅크린 채 손으로 머리를 쥐어 쌌다.
다섯 걸음이면 현관문에 닿을 수 있는 원룸에 처음 나를 부른 날 몽글은 말했다. “말했지만 방이 정말 작아요.” 나는 작은 방을 상상했다. 처음 자취방을 구할 때 여럿 보았다. 빨래를 널면 그 아래 웅크리고 자야 할 만큼 작은 방들. 햇빛도 들지 않아 암울했다. 화장실 변기에 앉으면 무릎이 문에 닿았다. 그곳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책을 보고, 오줌을 싸고, 친구를 초대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할 만큼 작았던 방들. 그런 방이 끝없이 많았다.
몽글의 방에서 온몸으로 기지개를 펴기 위한 이상적인 몸의 각도를 난 알고 있다. 하지만 무슨 수를 써도 팔을 완전히 펼 수는 없다. 몽글과 나는 유튜브를 보며 스트레칭을 하는데 그때마다 서로 완전한 자세를 할 수 없음을 염려한다. 우리는 점점 변형의 귀재가 되어 선생님이 알려준 자세와 이 방에서 가능한 자세 사이에서 적당히 타협한다. 가끔은 가만히 앉아 초록빛 나무가 가득한 정원이나 통유리로 햇빛이 잔뜩 들어오는 오피스텔 방 안에 매트를 깔고 앉은 스트레칭 선생님을 가만히 바라본다. 저런 공간을 점유하기 위해 필요한 건 어떤 유연함일까. 이 방에서는 그 유연함을 따라잡을 수 없을 것만 같다.
시간이 지나며 난 몽글의 방에 눌러 살게 됐다. 덕분에 작은 방에 사는 장점을 여럿 깨달았다. 화장실까지 다섯 걸음이면 도달했고, 청소는 오 분 안에 끝났으며, 모든 물건이 손 닿는 곳에 있었다. 몽글과 나는 가끔 쓰던 펜이나 핸드폰 충전기, 곰돌이 잠옷을 못 찾고 헤맸는데 그때마다 이 작은 방에서 물건이 사라지는 건 미스터리라고 말하며 웃었다. 그런 물건들은 대부분 깊숙한 곳이나 자주 입지 않는 옷의 주머니에서 발견된다. 이 방에서 영원히 나가지 않는다면 영원히 물건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상상이 가끔 현실이 되기도 한다. 며칠 전 문 앞에 놓인 큰 택배 때문에 현관문이 열리지 않아 몽글은 곤욕을 치렀다.
똑, 똑. 노크 소리가 두 번 나면 문 앞에 택배가 놓인 것이다. 택배 기사는 반듯하게 접힌 플라스틱 박스를 문 앞에 세워두고 똑똑 노크를 두 번 한 뒤 떠났다. 노크 소리를 들은 몽글이 현관문을 열자 박스가 문에 밀려 쓰러졌다. 플라스틱으로 된 박스는 단단했고 아무리 밀어도 문은 2cm 이상 열리지 않았다. 몽글은 내게 문자를 보냈다. 갇혔어. 답답해. 외출 중이던 나는 문자를 두 시간 지나서야 확인했다.
몽글은 플라스틱 박스를 놓고 간 택배 기사에게도 전화했다. 기사님, 문이 안 열려요. 다시 와주시면 안 되나요. 이미 다음 배송지로 떠난 택배 기사는 “아, 네. 네”라고만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난 그 대답이 기괴하다고 생각했다. 바쁘다고 화를 내거나 못 온다고 정확히 말을 하지 않고 왜 “네, 네”라고 답한 걸까. 그게 끝이냐고, 그에게서 온다 만다 얘기는 더 없었냐고 내가 묻자 몽글은 “네, 네”라는 대답을 안 오겠다는 뜻으로 알아들었다고 했다. 문자를 보자마자 난 택시를 잡아탔다. 밤 열 한시. 똑 똑 택배기사는 지금도 누군가의 문을 노크하고 있을까.
리치빌 복도에서 나는 딱 한 번 사람과 마주쳤다. 그것도 한꺼번에 세 사람을 만났다. 좁은 복도를 지나 방에 들어와 물을 마시는데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망시간은 오늘 새벽 6시죠?” 답은 들리지 않았다. 사망진단서를 작성해야 한다는 소리가 들렸고, 내출혈이 아니라 머리에 있는 ‘뇌’출혈이라고 적으라고 누군가 말했다. 경찰이구나. 그날 새벽 6시 202호에서 누군가 죽었다. 같은 시간 204호에 있던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잤다. 오늘 복도에서 그들을 마주치지 않았다면 영영 몰랐을 일이다.
외출 중인 몽글에게 전화해 이곳을 떠나 같이 살자고 말했다. 내가 없는 동안 그녀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래.” 그녀의 답은 선명했다. 왜냐고 되묻지 않았고 “그래, 그래”라고 두 번 답함으로써 나를 헷갈리게 하지도 않았다. 떠나려 생각하니 택배 기사도, 집주인도, 202호 사람도 얼굴을 본 적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렇지만 우리가 우리를 흔드는 일상적인 떨림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사실만은 확실하다.
한 달 뒤 우리는 서울에서 월세가 제일 싼 동네로 이사했다. 서울 끝으로 오며 방이 서너 배로 넓어졌는데도 몽글은 봉천동 리치빌을 자주 그리워한다. “화장실이 작아서 샤워할 때도 금방 따뜻해졌다고. 여긴 너무 추워.” 샤워할 때는 리치빌의 작은 화장실을, 오르막을 오를 때면 리치빌의 평지를, 십분 거리의 슈퍼를 갈 때는 리치빌의 1층 미니스톱을 그리워하고 또 그리워했다. 뉴스에 방을 쪼개 만든 아주 작은 불법 원룸들을 보는 내 시선이 달라졌다. 누군가에겐 도저히 살 수 없는 숨 막히는 방이 누군가에게는 돌아가고 싶은 그리운 장소일 수 있었다. 나도 가끔 몽글과 꼭 붙어 잘 수밖에 없었던 봉천동 그 방이 그립다.
처음 몽글의 방에 갔을 때 “바닥이 떨려.”라고 말하는 내게 몽글은 “응, 그러더라.”라고 말했다. 누구도 이 건물의 진동을 염려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랐다. 진동은 냄새와 달리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잊을 만하면 흔들렸다. 거주 한 달 만에 난 이 미세한 흔들림이 건물을 지켜준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흔들리지 않고 버텼다면 벌써 무너졌으리라. 그 속에서 우리는 흔들리며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운동을 하고, 친구를 초대했다. 건물주가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쪼개 놓은 작은 방 안에서 우리도 우리의 삶을 최대화하기 위해 성실했다. 모두 2019년 흔들리던 두 평짜리 봉천동 리치빌 204호에서 있었던 일이다.
*’리치빌’은 지어낸 이름입니다.
몽글의 창문에 내가 붙였던 뾱뾱이, 덕분에 겨울을 잘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