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즈비언 커플의 집안일
"설거지해도 돼?"
쌓여 있는 개수대의 그릇을 보며 몽글에게 물었다. "안 돼." 돌아온 대답은 단호했다. "왜 안 돼? 해달라는 것도 아닌데." 나는 떼를 쓰기 시작했다. "안 돼. 설거지는 내 담당이야. 내가 이따가 할 거야." 몽글은 단호했다.
설거지는 숟가락 내려놓자마자 하는 게 당연했던 내게 몽글은 "설거지는 쓸 그릇이 없을 때 하는 것"이라고 가르쳐준 첫 애인이다. 문제는 몽글이 설거지 담당이라는 것이다. 처음 동거를 시작하며 내가 좋아하는 요리를 맡겠다고 하자, 자연스럽게 뒷정리는 몽글이 하기로 결정했다. 부엌을 지날 때마다 괴로웠다. 쌓여 있는 그릇들 사이에서 벌레가 스멀스멀 기어 나올 거 같았고 그걸 지켜보는 일이 설거지를 하는 것보다 더 괴로웠다. 하지만 맙소사. 몽글은 자기 할 일을 남에게 죽어도 미루지 않는 성격이었다! 바닥에 뒹굴거나 대충 걸어놓은 옷을 내가 대신 걸기만 해도 인상을 찌푸렸다. 서른다섯, 인생의 난제를 만났다.
스스로 할 일은 알아서, 남에게 떠넘기지 않는다. 얼마나 건강한 가치관인가. 내 친구들이 파트너에게 가장 바라는 태도이기도 하다. 그러나 내겐 풀 수 없는 수학 문제처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태도였다. 내가 해주면 자기도 편하고, 나도 편할 텐데 왜 안 된다는 말인가. 결국 그의 경고를 어기고 몰래 설거지를 하거나 몽글의 옷장까지 침범해 정리정돈을 했다. 살금살금 부엌으로 걸어가 물을 적게 틀고 조심조심 설거지할 때는 이게 무슨 짓인가 싶다. 아니, 내가 해주겠다는데! 뭐 그리 잘못이라고! 속으로만 외치며 조용조용 설거지하는 일상이 이어졌다.
"머리핀 어디 갔지? 봄밤이 또 내 물건 숨겼다!" 숨기는 게 아니라 그런 걸 세상 사람들은 '정리정돈'이라고 한다고 여러 번 말했지만, 몽글은 또 자기 물건을 숨겼다며 한참 웃는다. 물건은 당연히 책상 위나 식탁 위가 아니라 서랍 안에 들어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어질러진 책상에서 일하는 것만큼 정신 사나운 일이 없다. 하지만 내가 '정리정돈'을 할 때마다 몽글은 간곡히 부탁했다. “어지러워 보이지만 나한테도 질서가 다 있다고. 치우면 못 찾으니까 제발 그냥 그대로 놔둬.”
맙소사, 몽글의 입에서 질서라는 단어가 나오다니. 당연히 내가 질서이고, 몽글이 무질서 아닌가. 나는 책을 책장에 꽂아두지만, 몽글은 읽고 난 자리 그대로 둔다. 귀이개나 손톱깎이도 받아온 인쇄물도 늘 쓰고 난 그 자리다. (나는 자주 그 인쇄물을 몰래 버리고 싶은 충동에 시달린다. 하지만 무슨 운명의 장난처럼 내가 버리면 몽글이 꼭 그걸 찾는다.) 생각해보면 신기하긴 하다. 머리끈, 귀이개, 귀걸이 같이 작은 물건도 몽글은 늘 한 번에 찾았다. 아, 질서는 왜 이토록 상대적이어서 나를 힘들게 하는가.
심지어 몽글은 설거지를 미루는 일이 얼마나 효율적인지 내게 설파하기도 했다. 그가 보기에 나는 안 해도 되는 일을 미리 만들어서 하는 사람이다. 만일 내일 죽는다면 그 설거지는 안 하고 죽어도 되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극단적이지만, 듣고 보면 그 말도 일리가 있다. 난 집안일에 치여서 아무것도 못하거나 지쳐 쓰러지는 날들이 많았다. 치우느라 정작 누릴 시간은 없었다. 어느 날 야근하고 온 뒤 쓰레기 정리를 하는 몽글의 축 처진 어깨를 보고야 알았다. 무리하는 사람 곁에 있는 사람이 편할 리 없다는 걸.
그깟 설거지 하룻밤쯤 못 미뤄서 몽글과 갈등을 빚는 게 나도 싫다. 한 번은 집에 오자마자 내가 과장된 몸짓으로 “에잇 이깟 옷 아무렇게나 놔”하고 옷을 바닥에 내팽개치자 몽글이 통쾌해하며 좋아했다. 물론 한 시간 뒤 다시 가서 몰래 옷을 걸었다. 천성은 참 바꾸기 어렵고, 다름을 편안히 받아들이는 일은 여전히 요원하다. 나는 자꾸 여러 이유를 대며 내가 옳고 맞다며 은근히 주장하지만, 몽글은 그저 다른 거라고 내게 일러준다. 그래, 좀 더러우면 어떤가. 아니 몽글의 시선으로 보면 더러운 게 아닌가? 바닥의 먼지를 지적하는 내게 몽글은 “집에서는 안경을 끼지 말라”는 처방을 내렸다. "여기 먼지 좀 봐”할 때 몽글이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은 이유를 그제야 알았다.
몇 달 전, 거금 20만 원을 주고 서랍장을 샀다. 널부러진 물건들을 참다 참다 내린 결단이었다. 그런데 몽글이 서랍장 안이 아닌 위에 안경과 담배, 빗 같은 잡동사니를 올려놓는 것이 아닌가. 뭐라고 하면 갈등만 될 거 같아 서랍장 안에 몽글만의 작은 박스를 만들어 주었다. "자, 몽글의 수납함이야."라며 다이소에서 산 2천 원짜리 흰색 플라스틱 박스를 건넸다. 몽글이 꽤나 기뻐했다. "와, 내 거라고? 고마워." 이제 몽글의 물건은 거기 담긴다. 몽글은 여전히 서랍장 위에 물건을 두지만, 내가 그 물건을 몽글의 수납함에 두니 물건이 사라졌다며 호들갑 떨 일이 없다.
개수대에 쌓인 그릇을 보고도 나는 이제 하루 정도는 가만히 기다린다. 내가 몰래 설거지해 놓을 때마다 낙담하는 몽글의 표정이 나를 붙잡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달에 한두 번은 견디지 못해 설거지를 하고야 만다. 아무리 사랑해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될 수는 없었다. 몽글과 나는 서로를 과격하게 고치지 않으면서 공존하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몽글과 내가 좋아하는 야채김밥 싸먹는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