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를 안아 들 때

유기견 봄이와 살기

by 봄밤

봄이가 버려진 건 겨울이었다. 2018년 2월, 봄이는 아파트 경비실 앞 종이상자에서 발견됐다. 경비원은 일주일 동안 밥도 물도 주지 않았다. 뒤늦게 친구에게서 소식을 들은 몽글이 경비실로 달려갔다. 구석에 있던 손바닥만 한 회색 푸들이 그녀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눈가에는 검은 눈곱이 잔뜩 끼었고, 동그란 눈동자와 검정 코는 촉촉하다 못해 축축했다. 종이상자에서 강아지를 꺼내 들자 갈비뼈가 만져질 만큼 앙상했다. 그렇게 회색 푸들은 구조되어 봄이가 되었다.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따뜻한 봄을 맞이하자는 의미로 지은 이름이다.

“봄이! 또 사고 쳤어!” 봄이는 무럭무럭 자라 두 살(추정 나이)이 되었고, 다리를 쭉 펴면 발이 내 허리까지 닿을 정도로 컸다. 하루에도 몇 번씩 휴지, 양말, 배변 패드를 물어뜯어 날 소리치게 만드는 주인공 봄. 이. 반년 전, 몽글과 동거를 시작하며 봄이와 같이 살게 됐다. 처음 만난 날 봄이는 나를 보자마자 왕왕 짖어댔다. 7kg에 달하는 개가 이리저리 날뛰며 짖어대니 귀가 먹먹했다. 소리는 갈수록 거세졌고 나는 귀를 막으며 몽글에게 소리를 쳤다. “쟤 좀 데리고 들어가!”


그 뒤로도 우리의 동거는 순조롭지 않았다. 서열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한 난 봄이를 엄하게 대했다. 양말을 물면 봄이를 구석으로 몰고, 있는 힘껏 “내놔”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봄이는 물건을 뺏으면 사정없이 나를 물어뜯었다. 어쩌다 저런 개가 우리 집에 왔나 싶었다. 몽글 곁에 가기만 해도 봄이가 달려들어 각 방을 써야 했다. 내 팔에 상처가 아물 날이 없었다.


안 되겠다 싶어 하루는 집 안에서 봄이에게 목줄을 채웠다. 그게 더 자극했는지 줄을 잡아당기는 나를 향해 어느 때보다 사납게 달려들었다. 놀란 몽글이 그걸 막다 손을 물렸다. 그녀의 손에서 피가 뚝뚝 흘렀고, 참아왔던 그녀의 눈물이 터졌다. 상처 때문이 아니었다. “지켜보자는 생각에 말 안 했지만, 혼낼 때마다 마음이 아팠어. 소리 지르면 봄이가 얼마나 불안하겠어. 혼내는 방식은 문제 행동만 키울 뿐이야.” 몽글의 속마음을 알게 된 난 충격이었다. 그간 그녀의 침묵을 내 훈육에 대한 동의라고 착각했다니. 늦은 밤 몽글의 피로 물든 이불을 치우며 외면해왔던 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변해야 하는 건 봄이가 아니라 나였다.


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봤다. 어느 날 내가 영문도 모른 채 낯선 집에 가게 된다면? 생각해보니 봄이는 모든 게 바뀌었는데, 나는 나 살던 대로만 살려고 했다. 내가 원할 때 봄이가 자고, 먹고, 놀길 바랐다. 말을 못 할 뿐 봄이도 감정이 있고, 그걸 표현할 수 있다는 걸 생각하지 않았다. 궁금해하고 관찰하니 봄이 마음이 읽히기 시작했다. 봄이는 몽글과 물건들을 내게서 지켜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윽박지르고 위협하는 나에게서 그것들을 지키려 한 건 당연했다.


내 태도를 바꿔야 했다. 내 맘대로 봄이의 몸을 옮기거나 귀엽다며 잘 때 만지지 않는 것부터 시작했다. 물건을 빼앗는 대신 위험한 물건들을 높은 곳으로 옮겼다. 봄이의 공간을 존중하는 만큼 빈도는 줄었지만, 여전히 나는 봄이를 침범하고 가끔 물린다. 달라진 건 있다. 일어난 상황을 복기하는 것이다. 봄이가 표현하려 했던 마음이 무엇이었는지 읽으려 노력한다. 덕분일까. 요즘 우린 셋이 함께 잔다.

봄이와 사는 건 분명 쉬운 일이 아니다. 하루라도 산책을 빠뜨리면 밤새 놀자고 보챈다. 새벽 다섯 시에 장난감을 물고 와 얼굴에 던진다. 늦은 밤 퇴근해 돌아온 몽글은 봄이와 놀아주며 “죽을 거 같던 애가 이제 죽도록 우리를 힘들게 한다”라며 웃는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웃는 몽글이 좋다. 그 겨울 작은 상자에서 봄이를 꺼내 들었던 그녀의 마음이 느껴져서다. 그녀가 봄이를 안아 들 때 대소변은 잘 가리는지 사납지는 않은지 그런 걸 쟀을 리 없다. 봄이는 봄이답게 자랐고 그녀는 그런 봄이를 받아들였다. 한숨으로, 눈물로, 웃음으로. 이제 내가 있는 그대로 봄이를 받아들일 차례다.



잘 때는 천사다, 우리 봄이

이전 15화"설거지해도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