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 문제로 갈등하던 이웃과 화해하기
토요일 아침 8시, 자고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전화를 몇 번 했는지 알아요?” 여보세요, 하기도 전에 누군가 소리부터 질렀다. 이웃집 남자였다. 이중주차해 놓은 내 차 때문에 아침에 택시를 타고 출근했다며 화가 잔뜩 난 목소리였다. 놀란 마음에 사과부터 했다. 십분 가까이 거듭 사과하며 택시비라도 보내겠다고 했으나 그는 경찰서에 가겠다며 전화를 뚝 끊었다. 핸드폰을 확인하니 8통의 부재중 전화와 문자가 와있었다. “전화 안 받으면 경찰에 신고합니다.” “차 못 빼서 택시 타고 출근합니다. 확인하면 전화 바람.” 초보운전 1일 차, 이중주차 후에는 전화를 잘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혹독하게 깨우치는 순간이었다.
그가 정말 경찰서에 신고하는 건 아닐까. “차로 길 막으면 처벌”을 검색하니 일반교통방해죄는 10년 이하의 징역이란다. 이 일로 형을 살 일은 없겠지만, 무서운 마음이 들어 용기 내어 다시 그에게 전화를 했다. “얼마나 화가 나고 당황스러우셨어요. 다시는 이런 일 없게 하겠습니다” 그의 분노에 대한 공감을 표시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사과를 반복하자 그의 목소리도 잦아들었다. 그는 아량을 베풀어 신고는 하지 않겠다며 “이 골목에 다시는 주차하지 말라”는 경고와 함께 전화를 끊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첫 주차만에 나는 완전 찍혔다.
다음에는 기필코 전화를 잘 받아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한동안은 이중 주차를 피해 먼 곳에 차를 댔다. 하지만 주차할 곳이 없는 날은 집 앞에 해야 했다. 하필 그날 샤워 중에 전화가 왔다. (연락이 올까 봐 스마트워치를 찼는데, 웬일인지 알람이 울리지 않았다.) 결국 그는 씩씩 대며 우리 집 대문을 두드렸다. 노려보며 고함 치는 그를 등진 채 나는 숨 막히는 긴장 속에서 차를 뺐다. 악연도 이런 악연이 없었다. 전화를 일부로 받지 않은 것도 아닌데 너무 한다 싶었다. 골목에서 그의 차를 마주칠 때마다 망해버려라 저주했다. 블랙박스만 없으면 확 발로 차버리고 싶었다. 저 차만, 저 인간만 없으면 얼마나 편할까. 망하든 이사를 가든 내 세상에서 그가 사라져 버리길 간절히 기도했다.
기도가 통한 걸까. 한동안 골목에 그의 차가 보이지 않았다. 이사라도 간 걸까? 나는 맘 편히 집 앞에 차를 대기 시작했다. 하루는 출근을 해야 하는데, (그날의 그처럼) 앞차가 전화를 받지 않아 차를 두고 대중교통을 타고 출근을 했다. 그날 오후 5시, 화가 잔뜩 난 그에게 전화가 왔다.
“여기 왜 또 차 댔어요?”
“저도 집 앞이니까 댄 거예요. 제 차 앞에 아직 차 있어요? 그 차 나갔으면 자리 있을 거 아니에요?”
“아니, 나는 내 집 앞에 대고 싶다고. 내가 왜 여기다 대야 하는데? 내가 이 골목에 아무도 차 못 대게 한다?”
“선생님, 최대한 빨리 가서 빼드릴 테니까 그때까지만 잠깐 대면 되잖아요. 자리가 없는 것도 아니고.”
“싫어. 내 집 앞에 댈 거라고. 나 말이 안 통하네.”
아, 이웃을 잘못 만난 게 분명하다. 무시하고 싶었지만, 얼마 전 주차 갈등으로 칼부림이 났다는 기사가 떠올랐다. 다시는 차를 대지 않겠다고, 최대한 빨리 빼줄 테니 기다리라고 했다. 당장 오라는 그와의 통화가 끝나자 슬슬 화가 올라왔다. 댈 자리가 있는데도 굳이 날 호출하는 이유가 뭘까. 평소에는 자기 집 앞 아닌 데도 잘만 대면서. 경차, 여성 운전자라고 날 무시하는 건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때 번뜩 아침에 나도 앞의 차 때문에 차를 못 끌고 나온 게 생각났다. 아차! 왜 그 생각이 이제 났을까. 나도 피해자라고, 그에게 말했어야 했는데. 나는 그 차주한테 당신처럼 화내지 않았다고, 피해를 당했다고 누군가에게 모욕 줄 권리가 생기는 건 아니라고 왜 쏘아붙이지 못했을까.
집에 오는 내내 그에게 보낼 문자를 썼다 지웠다. 말하면 잠깐 시원하겠지만, 어떻게 돌려 말하든 본뜻은 비난이었다. 골목이 당신의 것이 아니고, 골목에 차를 대라마라 할 권리가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유세냐고 몰아붙이고 싶었으니까. 막다른 골목도 아닌데 왜 반대쪽에 주차한 차주들에게는 아무 말도 안 하고 매번 나한테만 전화해서 난리냐고. 하지만 그러면? 그를 맘껏 비난한다고 이 갈등이 해결될까? 마음이 가라앉자 전달하고 싶은 메세지가 명료해졌다. 그의 편의를 최대한 배려하고 싶었으나 실패해 속상한, 이웃과 주차 문제로 더는 다투고 싶지 않은 나의 본심이었다.
집에 도착해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적대적인 그에게 할 수 있는 진심을 다해 사정을 다시 설명했다. “선생님, 저도 제때 차 빼드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요. 그런데도 이렇게 자꾸 꼬이는 게 얼마나 속상한지 몰라요. 제가 나쁜 마음이 있어서 차를 안 빼는 게 아니에요. 제 마음 같지 않게 자꾸 상황이 꼬여서 저도 속상하고 죄송해요. 그렇지만 이 골목에 차를 대지 말라고 하시면, 저도 여기가 집 앞이고, 댈 곳이 없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네요.” 처음으로 내 말을 끊지 않고 들은 그는 “저도 이웃하고 싸우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진심이 통했다.
그는 그날 나에게 주차 요령을 알려주었다. 자기 차가 없을 때는 대도 대지만, 다른 차가 못 들어오게 골목 입구를 막아서 주차해라(?) 같이 동의할 수 없는 이야기를 늘어놨지만, 누그러진 목소리였다. 어떻게든 자리를 점유해 편하게 살고 싶은 마음만은 변함없었지만, 조금은 나에 대한 연민도 생긴 것 같았다. 나는 알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날은 몇 달 만에 편하게 잤다.
주차 갈등이 생긴 이후, 난 그의 전화를 받자마자 차를 빼는 내 모습을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 내 안에는 “관계를 회복하고 싶은 조급함, 내가 바라는 나를 어서 보여주려는 조바심”(이소영, <별것 아닌 것의 선의>)이 가득 차있었다. 그러나 나는 실패했다. 의도치 않은 실수였다. 하지만 실수보다 뼈 아팠던 건 실수를 받아들이지 못해 괴로워하던 순간들이었다. “저 그런 사람 아니에요.” 해명하고 싶어 잠 못 들던 밤이었다. 또 다른 실수를 두려워하며 그의 차를 볼 때마다 움츠러들던 시간들이었다.
그는 그저 내게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었지만, 일상에서 난 얼마나 자주 ‘내가 바라는 나를 어서 보이려는 조바심‘을 내는가. 입사 초기, 실수를 연발하던 날들이 있었다. 엉뚱한 곳에 돈을 이체하거나 안내 문자를 잘못 보내 사람들을 헛걸음하게 했다. 초보적인 실수라 헛웃음이 나면서도 속상했다. 내가 얼마나 일을 잘하는 사람인데. 하지만 얼마나 잘하는지 보여주겠다는 마음으로 몸에 잔뜩 힘이 들어갈수록 내 시야는 좁아졌고, 평소라면 챙겼을 사소한 일들을 놓치기 일쑤였다. 나는 점점 일 못하는 사람으로 찍히는 것만 같았다. 그 사실이 괴로워 몇날 며칠을 몸부림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일 못하는 사람이면 안 되는가?
주차 문제도 그랬다. 나는 그 사람에게 내가 얼마나 상식적이고, 예의 바른 이웃인지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차 안 빼주는 그런 몰상식한 사람이 아니에요, 잔뜩 긴장할수록 이상하게 나는 점점 그런 사람이 되어갔다. 그런 내 모습을 거부하면 할수록 늪에 빠지는 기분이었다. 돌아보면 실수는 그저 실수였고, 일어날 일은 그냥 일어났다. 실수하는 나도 무수한 나 중에 하나였다. 나는 화내는 이웃을 비난하는 대신 내 진심을 말할 줄 아는 사람이기도 했지만, 차를 빼지 않아 민폐를 끼치는 사람이기도 했다.
골목에서 그의 차를 보면 여전히 긴장된다. 하지만 이제 나에게 하나의 선택지가 더 생겼다. 불통과 오해의 순간 저 그런 사람 아니에요, 힘줄 수도 있지만, 저는 그런 사람이기도 합니다, 하고 힘을 빼는 선택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