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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밤 Apr 08. 2024

“운전 똑바로 해요”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대기 중이었다. 트럭 한 대가 아슬아슬하게 지나가더니 내 차를 “쿵”하고 박았다. “아 운전을 왜 그렇게 해요?” 등산복 차림의 중년 남성이 트럭에서 내리자마자 소리쳤다. 그는 내가 차를 앞으로 바짝 붙였어야 한다고 삿대질을 했다. 당황한 내가 말을 잇지 못하는 사이 그는 내 얼굴도 보지 않고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예의로라도 괜찮냐고 물으려 했던 마음이 싹 가셨다. 사고 부위를 찍은 그가 핸드폰 지갑 케이스에서 명함을 뽑아 건넸다. 보험 처리를 안 할 생각이구나. 순간 갈등됐지만, 그와 실랑이할 시간도 보험사를 기다릴 시간도 없었다. 그날 난 아픈 동생을 데리고 병원에 가는 길이었다.


“거, 운전 좀 잘하지.” 전화를 건 내게 그는 사과는커녕 다시 설교를 시작했다. 차를 더 바짝 됐어야 한다, 누가 운전을 그렇게 하냐, 덕분에 오늘 재수 옴 붙었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싸우고 싶지 않았다. 여기서 소리를 지르고 반박을 한들 무엇이 달라질까. 그에게 어떻게 할 건지만 물었다. 그는 카센터에 가서 견적을 받아 보내라고 했다. 사고는 내 탓인데, 돈은 자기가 내겠다니. 자선사업가인가. 그는 전화를 끊을 때까지 “앞으로는 운전 똑바로 해요”라며 엄포를 놨다. 어찌나 신이 났는지 목소리에서 명랑함마저 느껴졌다.


전화를 끊자 온몸에 힘이 빠졌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지칠까. 마음을 다독였다. 잘한 거야. 내 탓하는 가해 차주한테 대꾸하지 않은 건 그만큼 성숙해졌다는 증거니까. 타인이 아무리 도발해도 차분하게 대하려고 그간 얼마나 노력해 왔던가. 레이싱 대회에 나갈 것도 아니고 내 운전실력이 뭣이 중요한가. 감정싸움을 하지 않은 나를 칭찬하며 훌훌 털어버리려 애썼다.


하지만 종일 그에게 달려가 따지고 싶은 욕구에 시달렸다. 아니, 가만히 서 있는 차를 박아놓고, 운전 잘하라니요? 한문철 변호사한테 보낼까요? 제 잘못이라면서, 돈은 왜 내요? 자기 과실이라는 걸 아는 거잖아요? 그럼 운전실력은 누가 없는 걸까요? 생각하다 반박도 존대로 깍듯하게 하는 나의 한계에 질려 그만두었다. 그에게 기분 나쁜 건 말의 내용이 다가 아니었다. 대놓고 하는 반존대와 빈정거리면서도 자기가 피해당했다는 듯 분노하는 말투와 노려보는 표정까지. 그건 따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다음날 카센터에 갔다. 그와 다시 통화를 해야 한다는 게 스트레스였지만, 그럴수록 빨리 끝내고 싶었다. 나는 그에게 전화해 견적을 말하고, 카센터 직원에게 설명을 들으라며 재빨리 전화기를 넘겼다. 카센터 직원은 손바닥만 하게 찌그러졌지만, 살짝 구멍이 나서 견적이 50만 원은 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5만 원을 빼달라며 카센터 직원을 설득했다. 당사자는 나인데 카센터 직원과 협상을 하는 게 기가 찼지만, 껴들고 싶지 않았다. 결국 그는 5만 원을 뺀 금액을 내게 보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남자 직원에게 깍듯하게 “5만 원만 깎아 주십쇼.”하던 목소리가 맴돌았다. 예상했던 반응이었고, 그걸 알기에 카센터 직원을 바꿔준 것이었다. 카센터에서 5만 원 깎은 금액으로 수리해 주겠다고 했으니 내 손해도 없다. 하지만 나 스스로 협상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사실에, 그 사실은 스스로 인정하고 물러나 있던 것에 자괴감이 들었다.


카센터 직원은 밀린 차가 많으니 며칠 뒤에나 오라고 했다. 집에 돌아온 뒤 충동에 시달렸다. 가령 이런 것이다. “돈 잘 받았습니다. 운전 좀 잘하고 다니세요.” 약 올리는 문자 남기기. 그에게 받은 명함에 있는 업체 사이트(그는 사장이다)에 찾아가 내가 당한 일을 폭로하기. 문자나 댓글은 흔적이 남으니까 유령 아이디라도 만들어야 하나. 뒤늦게 복수심에 불탔다. 처음에는 무대응으로 일관한 내가 그보다 어른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시달릴 바에야 그 자리에서 싸우는 편이 나을 뻔했다. 이 후폭풍 어쩔 것인가. 그에게 묻고 싶다. 그렇게 상대 탓을 실컷 하고 나면 마음이 편하냐고. 그날 이후 그는 마음에 남는 게 없는지 진심으로 궁금했다. 만약 그렇다면 나도 성숙함, 어른스러움, 침착함 따위는 묻어버리고 내키는 대로 살 것이다.


사고 후 2주가 지났지만, 차 수리는 맡기지 않았다. 본래 상처가 많은 10년도 넘은 차였고, 내가 주차하다 긁은 반대편 상처가 더 눈에 띄었다. 한쪽은 접촉사고가 났다는 이유만으로 수리를 맡긴다는 게 갑자기 불합리하게 느껴졌다. 아니, 그보다는 수리를 맡기지 않는 편이 통쾌했다. 그가 주지도 않아도 될 돈을 쓰게 했다는 것, 그 돈을 내 멋대로 쓸 거라는 걸 그는 꿈에도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카센터 직원과 통화할 때 그가 돈을 꽤나 아까워했다는 사실도 내 기쁨에 한몫했다. 동생은 그게 무슨 복수냐며 차나 고치라고 했지만, 나는 한동안 이 통쾌함을 즐길 생각이었다.


뒷 엉덩이가 손바닥만 하게 움푹 들어간 차를 보면서도 돈 아까워할 그를 떠올리면 실실 웃었다. 그를 헛돈 쓰게 만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신바람 난다니. 웃다가 문득 소름이 돋았다. 남을 괴롭힌다는 건 생각만으로도 이렇게 즐거운 것이구나. 차에서 내리자마자 대뜸 소리부터 지르던 그의 행동이 처음 이해가 갔다. 언성을 높여도 별다른 대응하지 않는 나에게 운전 똑바로 하라며 마음껏 훈계할 때 얼마나 즐거웠을까. 설교하던 그의 목소리에서 느꼈던 명랑함의 이유도 그제야 풀리는 듯했다.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게 모든 일을 대하려고 애썼던 그간의 노력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그건 어린 시절 들었던 “여자는 참해야 한다”의 다른 버전 아니었을까. 내가 성숙해지는 동안 그들만 이 즐거움을 누린 게 아닌가 의심마저 들었다. 또 사고가 나면 나도 마음껏 내질러 볼까. 이봐요, 운전 똑바로 하세요. 아니, 똑바로 해요! (세상 모든 걸 똑바로 만드는 데 내 모든 에너지를 쓸 테다.) 상상만으로도 속이 시원했다. 직접 소리 지르고 훈계하는 그의 즐거움에 비해 상상으로 만들어낸 내 복수는 시시해 보였다. 그날 이후 차를 봐도 더는 흥이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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