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위대한 순수함에 대하여
이 영화가 얼마나 아름다운 지는 본 사람만 안다.
한 남자와 텅 빈자리가 가진 여운이 어떤 건지도.
잘 만든 영화를 보고 나면 스태프의 목록을 훑어보게 된다.
저 세계를 만들어낸 사람들 사이에 끼어들고 싶다는 욕심.
그 욕심은 이미 이루지 못할 것이므로 나는 내용을 되짚어보며 기억하고 싶은 부분을 찾아낸다.
내가 기억하고 싶은 부분이다.
1) 바람따라 떠도는, 혹은 운명처럼 다가오는 하얀 깃털
수 많은 영화나 소설이 차용하고 있는 수미상관 구조다.
화면은 하늘에서부터 내려오는 하얀 깃털을 따라 관객을 포레스트 검프에게 안내한다.
낡은 운동화를 신은 포레스트 검프는 하얀 깃털을 주워 좋아하는 책의 책갈피처럼 꽂아 넣는다.
시간이 흐른 후, 깃털은 포레스트 검프의 손에 의해 다시 하늘로 되돌아 간다.
하늘에서 내려온 깃털이 책 안으로 들어오기까지.
그리고 다시 하늘로 돌아가기까지.
영화는 그 시간 동안 포레스트 검프가 들려주고, 동시에 보여주는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리고 한 편의 판타지 소설과도 같았던 포레스트 검프의 삶은
유일하게 사랑했던 여자, 제니의 무덤 앞에서 읊조렸던 검프의 대사와 맞물려 오랜 잠언처럼 다가온다.
나는 잘 모르겠어.
저마다 운명이 있는지 아니면 그냥 우리는 바람따라 떠돌 뿐인 건지...
하지만 내 생각엔 둘 다 동시에 일어나는 거 같아
왜 영화는 하필 새의 깃털을 선택했을까?
제니가 했던 말에서 유추해본다.
갑갑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새가 되고 싶다' 입버릇처럼 말했던 제니.
새는 제니의 희망이었고, 제니는 포레스트의 희망이었다.
새의 깃털보다 더 나은 영화의 함축은 없었던 것이다.
2) 포레스트 검프의 삶과 미국의 현대사
포레스트 검프를 만들어 낸 원작자 윈스톤 그룸(Winston Groom)의 생애를 살펴보면
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
윈스톤 그룸은 영화 촬영이 주로 이루어진 앨라배마에서 대학교를 다녔다.
그는 군대 ROTC의 구성원이었으며,
1965년부터 1969년까지 베트남 전쟁 복무기간을 포함해 군대에서 근무했다.
베트남 전쟁은 윈스톤 그룸에게 삶의 분수령과도 같았다.
군대에서 전역한 후 그는 베트남 전쟁을 소재로 한 소설들을 쓰기 시작했고
소설 중 하나, <Conversations with the Enemy>가 1983년 퓰리처상에 최종 후보까지 올랐다.
감독 로버트 제메스키는 윈스톤 그룸의 소설 <포레스트 검프>가 영화에 비해 진중하며, 신실했다고 말한다.
전쟁을 직접 겪은 군인(과 언론인, 전역 후 그는 언론계에도 몸을 담는다) 출신의
작가가 쓴 소설이 충분히 무겁고, 날카로웠다는 뜻일 터.
이에 감독과 극작가 에릭 로스(Eric Roth)는
사랑이야기와 환상적인 모험 이야기를 강조하고 나머지 것들을 축약한다.
그리고 영화의 장르는 '코미디, 드라마'로 분류된다.
결과적으로 감독과 각본가의 선택은 훌륭했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는 아이큐 75라는 남자의 캐릭터를 망가뜨리지 않으면서도
미국 현대사의 굴곡을 보여줬다.
감독은 베트남전에서 친구를 잃은 포레스트 검프의 괴로움과
다리를 잃은 상사 댄 테일러의 망가짐을 충분히 오랜 시간 노출했으며
반전 시위에서 포레스트 검프가 연설하게도 했고 (내용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 연설에 시위를 주최하던 참가자가 감동받아 이름을 묻게도 했다.
제작진은 '무엇이 옳은 것이다' 하고 프로파간다가 되어 주장하기보다
개인과 역사의 무게를 일방적이지 않게 보여줌으로써
한 사람이 역사에 끼친 영향과 역사가 한 사람에게 끼친 영향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3) 미국의 국민 샹년, 제니와의 사랑
제우스 신조차 아내 헤라를 내팽개치고 불꽃같은 사랑을 태워온 가운데
순애보적인 사랑에 대한 인류의 열망은 계속되어왔다.
그리고 그런 순애보에 대한 열망은
완벽한 우리가 아니라 완벽하지 않은 포레스트 검프에 의해 이루어졌다.
아버지에게 성추행, 혹은 성폭행을 어릴 때부터 당하고 커 온 제니는
포레스트 검프만큼 외롭고도 불안정한 영혼이었다.
(포레스트 검프가 다른 친구와 어울리지 못했던 것처럼
제니 역시 검프 외에는 다른 친구를 사귀지 못한다. 물론 남자는 제외다.)
몇 번이고 자살을 꿈꾸고,
새가 되어 날아가고 싶다 말하던 그녀는 한 번도 안정된 둥지를 만들어본 적 없다.
벗은 사진을 찍고, 벗은 채 무대에 오르고, 이런저런 사람들과 떠돌아다니면서
점점 더 지상에서 발을 뗄 뿐이다.
그리고 결국, 그녀는 포레스트 검프에게 꿈같은 기억과 아들만을 남긴 채 죽는다.
그녀를 기다리고,
그녀가 언제든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그녀의 자리를 마련했던 건
단연코 포레스트 검프가 아이큐 75의 바보였기에 가능했다.
그가 한 번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음에도
그와 잠자리를 시도하고, 아이를 낳고, 홀로 키웠던 건
그녀가 삶의 풍파를 온몸으로 겪었던 여자이기에 가능했다.
포레스트 검프를 길러낸 사람들이 있다.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학교에 보내기 위해 교장과 몸을 섞었던 엄마.
새우밖에 모르는 바보지만, 유일한 친구로서 형제처럼 그와 꿈을 나누고, 함께 했던 군대 동기 버바.
목숨을 구해줬음에도 배은망덕하게 포레스트를 원망하더니
결국 노후대비를 하게 해 준 댄 소위 (애플 만세).
그리고 그의 시작이자 끝이었던 제니.
어딘가 모자라고 부족한 우리의 곁에는
늘 우리를 한 뼘쯤 성장하게 하는 누군가가 있으며,
언제 어떻게 만날지 모를 행운은
달콤하게 다가왔다가 쌉싸름하게 멀어지기도 하고, 독하게 다가왔다가 달콤하게 여운을 남기기도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오늘도
무엇이 어디에 들어있는지 모르는 초콜릿 상자와 같은 인생에서
묵묵히 내 몫의 초콜릿을 먹어치우며 살아갈 것이다.
나의 선택이 현명하지 못할지언정 후회로 남지는 않기를.
그저 위대한 순수함으로 한 걸음씩 걸어갈 수 있기를 희망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