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알수없음 May 04. 2018

[여행] 덴마크 (2) - 코펜하겐

20161001 : 뉘하운, 아말리엔보르, 국립박물관, 스트뢰에, 광장



한동안 먹고 사느라 바빴다.

다시 어디로든 떠나고 싶은 때가 왔다.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은 없다지만,

나 역시 스스로에게 또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하며 '파이팅'을 외치지만

그건 버텨야만 하는 순간의 위로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삶의 모든 순간이 낯설다.

나는 아는 것이 너무 적다.


덴마크에서의 날들도 마찬가지였다.


하늘이 높아졌다. 청명한 날이었다


눈을 뜨자마자 숙소를 나섰다.


바람이 차가워지고 있었다.

어디로든 가야 한다는 강박과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는 막막함이 동시에 엄습했다.


언젠가 전문가의 강연에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돌아올 집이 있는 아이들이 방황도 한다'

한 군데는 평안한 쉼터가 있어야 멀리 나갈 수도 있다는 말이다.


돌아올 집이 없는 아이들은 둘 중 하나.

영영 떠돌아다니거나, 둥지를 지키느라 아무것도 하지 못하거나.


마음이 불안하지 않도록 안정된 거처를 확보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거였다.


그렇다면, 우리 삶에서도

믿을 구석 있는 사람만이 도전도, 모험도 하는 것 아닐까.

그게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든 처한 환경에 대한 안심이든.

무조건 도전을 강요하는 것보다

실패해도 괜찮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게 우선 아닐까.

변화 없이 안정된 것을 추구하는 건

그만큼 두렵다는 뜻일 테니.


당시의 불안정한 나는 목적지를 뉘하운으로 향했다.

한 번 들렀다는 이유로 그나마 안심되는 곳이었고,

이미 보장된 아름다움이 있는 곳이기도 했다.  


햇빛이 강해 '있다가 다시 찍어야지' 생각했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17세기에 만들어진 뉘하운 항구(Nyhavn).

코펜하겐 역시 '상인의 항구'라는 뜻으로, 뉘하운은 그야말로 덴마크 코펜하겐의 중심인 셈이다.


나는 이미 전날 항구 옆 술집과 음식점들을 눈여겨보던 터였다.

테라스에 앉아 이야기를 하며 음식을 먹던 사람들이 좋아 보였다.


함께할 사람은 없었지만

나도 뉘하운 항구 테라스에 앉아 음식을 먹는 경험을 갖고 싶었다.

몇 번이고 오가며 탐색하다가 적당한 음식점을 찾아 들어갔다.


영어 메뉴판을 받아 들었다.  현 시세로 10 DKK(크로네)는 약 1,700원


테라스 한편에 자리 잡고 앉아 메뉴판을 훑었다.

우아하게 브런치를 먹기로 했다.



사실 무슨 맛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바람이 차가웠고, 음식은 짰고,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말소리가 섞여 들렸던 것 같다.


그들은 여유로워 보였다.

옆 테이블의 대화에 끼어들기도 하며, 서로 친해졌다.

그들의 스스럼없는 행동이 좋아 보였다.


나는 여행하는 매 순간마다

내가 경험하고 느낀 것들을 어떻게든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강했는데

그래서인지 이 분위기 역시 그대로 남았다.


토요일 오후, 뉘하운 식당에 앉아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노부부
모자와 선글라스를 쓴 저 여자분 일행은 연극을 하는 사람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노부부와 이야기를 시작하더니 몸을 기울인다. 뒤쪽에도 식당의 누군가와 반갑게 인사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심지어 몸을 아예 돌려 앉아 적극적으로 대화를 나눴다


여행하는 중 이런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 안에서도,

덴마크에서도, 그리고 (나중에) 프랑스에서도.

사람이 사람을 순수하게 좋아하고 반가워하는 것.

일 때문이 아니라,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


(알고 보면) 낯을 많이 가리는 나는 그게 참 부러웠다.

이방인을 스스로 자처했음에도 그게 그렇게 신기하고 좋아 보였다.


나는 그냥 걸어갈 수밖에


식사를 마치고 어슬렁어슬렁 길을 나섰다.

배를 채우고 나니 자신감이 조금 생겼다.


발걸음 닿는 대로 걸으며 관광코스를 인터넷으로 검색했다.

위병 교대식이 매일 정오에 있다고 했다.

10분가량 남은 시간이었다.

뛰었다.



가운데 동그란 돔 지붕의 건물은 궁전 앞에 위치한 프레데릭스 교회 (Frederick’s Church)



다행히도 덴마크 코펜하겐은 작은 도시였다.

아말리엔보르 궁전(Amalienborg Slot)에 늦지 않고 도착할 수 있었다.


1794년 이래 덴마크 왕실의 주거지로

현재 마르그레테 2세 여왕과 그 가족이 살고 있는 곳.


건물들이 팔각형 모양으로 광장을 둘러싸고 세워져 있는데

여왕이 사는 건물은 깃발을 꽂아 표시한단다.

위병 교대식은 광장에서 이뤄진다.



장난감병정같은 모습. 털북숭이 모자가 귀엽다


필수 관광코스를 놓치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근처에 구경거리를 찾다가 박물관을 발견했다.


모름지기 박물관이나 전시장 같은 곳들은

해당 주제를 알리기 위해

시간과 돈과 정성을 들여 각계각층의 전문가들이

최대한 쉽고 재미있게 만들어놓은 것 아니던가.


나는 덴마크를 알 수 있을 거라는 희망과 착각을 안고 박물관으로 향했다.


2만 년이라니... 그렇게까지 오랜 역사를 알고 싶은 건 아니었다
덴마크 국립박물관 (Nationalmuseet)
입장티켓이 귀여웠다. 플라스틱 클립 형태


플래시를 터뜨리지 않으면 촬영 가능하므로,

나는 덴마크 2만 년의 역사를 열심히 가져왔다.


문자를 새겨놓은 것 같은데... 당시에 뭐라고 적었던 걸까


촘촘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진 옷
악기란다. 폐활량이 어마어마...
공식포스터. 저 악기가 대표로 등장했다
원시시대(?)의 옷이라기에는 예쁘다. 추위도 걱정 없어 보인다
마네킹이...! 전형적인 금발에 흰색 피부가 아니다!


나는 이제까지 '덴마크인'하면 당연히 금발 머리에 흰 피부를 가진 키 큰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마네킹이 익숙하지...?

당시에도 궁금했는데, 지금도 궁금해진다.

찾아본다.


인종은 아리안계의 덴족 및 고트족이 97%를 차지하고 있으며, 나머지 3%가 외국계 이민자(이 가운데 절반이 북구 또는 유럽 국가  이민)로 구성되어 있다. 덴마크인, 즉 데인인(Danes)은 북 게르만계의 노르만인의 한 분파로, 장신·금발에 눈은 청색 또는 회색, 머리형은 중두(中頭)이다. 덴마크에는 약 4만 명의 식민(植民) 독일인의 후손이 살고 있으며, 덴마크의 유일한 비(非) 덴마크인 소수종족 집단을 이루고 있다.  (두산백과)


여기서 아리아인은 인도와 이란, 유럽에 거주하며

인도·유럽계의 언어를 쓰고 있는 사람들의 총칭이다.

인도와 이란에 거주하는 사람들과 덴마크의 민족이 같이 분류된다는 뜻이다.

몰랐던 사실을 이렇게 알게 된다.

(언어로 분류될 뿐 인종이 분류되는 건 아닐텐데... 선사시대 마네킹이 없었나 싶기도 하고...)

 

박물관에 있던 나는

쇼핑 본능이 깨어났는지 옷에 자꾸 눈이 갔다.

후드는 패션이 아니라 필요였다는 걸 알았다.

이후 등장한 옷들은 지금 것이라 해도 괜찮아 보였다.

색깔도 알록달록하고 패턴도 예뻤다.


하나 갖고 싶은 니트와, 지금도 볼 수 있는 페이크넥카라
신발이 이렇게 예뻐도 되는 것인가... 평민의 것은 아닐테고. 귀족 혹은 왕족의 것이겠지



이후에 보이는 건 패턴이었다.

집 거실에 하나 깔아 두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위험한 생각이 들었다





탈에도 눈길이 갔다.

우리나라의 하회탈과 비교해서 보니 재미있었다.


1만 년 전, 몇 천 년 전만 해도 문화와 기술 수준은 거기서 거기였을텐데.

특유의 '민족성'은 어떻게 생겨난 걸까. 그것이 발현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총, 균, 쇠>를 통해 인류의 운명이 바뀐 이유를 찾았다.

그렇다면 문화적인 지점은 어떨까.

벌거벗은 원시 민족이 무엇을 아름답다고 여기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름다움을 찾는 방향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궁금한 점은 많은데 어디서부터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를 몰라 답답했다.


스웨덴에서 본 높고 뾰족한 지붕처럼

아마 자연환경이 큰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유추할 뿐이다.

(눈이 많이 오고 단조로운 풍경에서 알록달록한 색깔이 아름답게 보이고.

사계가 뚜렷하고 산, 바다가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단순하고 자연과 어우러질 수 있는 것들이 우선되지 않았을까 하는...)




한참 둘러보다 보니 다리가 아팠다.

쉴 곳이 급하게 필요했다.

다행히도 건물과 건물 사이에 작은 마당이 있었다.

네 면이 건물로 둘러싸인 작은 공원.

벤치에 주저앉았다.





이후에 마주한 건 익숙한 북유럽, 덴마크스러운(?) 무엇이었다.

역사시대 이후의 유물들이라 그런지 반가웠다.

선사시대부터 함께했던 덴마크의 문명화를 간접 체험할 수 있어 좋았다.



소꿉놀이 인형도 있다. 찻잔과 주전자가 정교하다



덴마크와 친해진 기분을 (혼자) 안고 관람을 마쳤다.

4시간이 넘는 관람이었다.


어디론가 걸어가야 했다.

2만 년의 역사를 뒤로 하고,

이제 현대인들의 거리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보행자들의 거리, 젊은이들의 거리, 예술과 쇼핑의 거리!

스트뢰에(Strøget)로 향했다.

스트뢰에는 덴마크어로 '걷다'라는 뜻이란다.

나를 위한 곳임이 틀림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젊은이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코펜하겐에 사는 사람들은 여기 다 숨어 있었구나!' 싶었다.



스트뢰에는 화려하기보다는 다정했다.

서울의 명동보다는 대학로 같은 느낌이랄까.

여기저기 구경하며 뭔가를 하나 사고 싶었지만 마음에 드는 걸 찾지 못했다.


저렴한 뷔페식 식당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다시 걸었다.


가로등이 길 한가운데 공중에 떠 있다. 어두워질수록 예쁘다



도착한 곳은 코펜하겐 중심부에 있는 시청사 광장.

공식행사와 축제, 그리고 시민들의 시위, 집회 장소로 사용되는 곳이라고 한다.


사람들에게 친숙한지

건물 앞 계단에서는 연인들이 스킨십을 나누고 있었고

광장 한 구석에서는 누군가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이때 들었던 노래가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뭐가 어떻게 됐든 아무것도 아니라고. 괜찮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노래를 계속 들으려 광장에서 한참 서성였다.

 

나는 가진 돈을 광장의 가수에게 모두 주었다.

그는 고맙다고 했다.

고마운 건 오히려 나였다.




다음날 아침, 비가 왔다.

우비를 입고 캐리어를 질질 끌고 공항으로 향했다.


폭풍이 휘몰아칠 것 같은 구름이었다.




뉘하운 항구에 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갈 수 없었다.



안녕, 덴마크.

부디 다시 올 날 있기를.




(이어서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여행] 덴마크 (1) - 코펜하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