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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수없음 Feb 12. 2016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혼자서 바다 밑을 데굴데굴 굴러다니게 되겠지"



기억이 맞다면

<생애 최고의 영화>로 이 영화를 꼽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던 때가 있었다.


내용을 유추하는 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제목과

일본 영화 특유의 잔잔하면서도

어딘가 엇나간 듯한 분위기는

'뭔가 있어보였고'

어느새 영화의 이름을 언급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나는 '미디어에게 나만의 밴드를 빼앗긴 골수팬'의 마음으로 영화를 외면하고자 노력했다.

유행처럼 번지는 이 영화가 내겐 별 것 아니었음을,

그러므로 나는 남들보다 한 모금쯤 더 특별함을

증명하고 싶었던 거다.


하지만 도전은 별 수 없이 실패했다.

특별하지 않은 나는

특별한 순간이 올 때마다 이 영화를 찾았고,

영화에 기대 울었다.  


영화는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할 종류의 여자' 조제와

츠네오의 사랑 이야기다.





모든 만남은 필연적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가던 츠네오와

유모차에 탄 여자, 조제.

그들의 만남은 삶의 모든 순간처럼

아무렇지 않게 특별했다.



두 사람이 만난다는 건

하나의 세계가 또 하나의 세계와

부딪치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서로의 존재를 인식할 필요조차 없었던

두 사람이 부딪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했다.



익숙함에서 벗어나는 건, 사실 꽤 피곤한 일이다.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들이 모두 긴장을 가져온다.

그럼에도 다른 세계와 부딪치는 순간이

즐거울 때가 있다.


다만, 그 즐거운 순간은

두 가지의 모순된 감정을 가져오는데

하나는 너에 대한 동경이고,

또 하나는 그동안 깨닫지 못했던

나의 초라함이라는 것.


'츠네오'와 '츠네오의 여자사람친구'를 보는 조제



사랑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느냐고 묻지 말자.

하찮은 동경이든 같잖은 동정이든

무엇이 문제겠는가.


중요한 건

츠네오가 용기를 냈듯이,

조제 역시 용기를 내고 있다는 거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가장 무서운 것'을 보고 싶었다는 조제



세계와 세계의 부딪침은 깨짐보다

큰 성장을 낳는다.

그리고 달라진 것은 돌아가지 않는다.



츠네오의 부모님을 만나러 가는 여행길, 물고기를 보고싶었던 조제


환상은 한계를 만나기 마련이다.

각자가 가진 세계의 끝에 다다랐을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까.  



사정이 생겨 집에 갈 수 없다고 전화하는 츠네오


삶은 눈치가 없다.

돈이 없을 때조차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이런 순간조차 조제는

츠네오 없이 화장실 뒷처리를 하지 못한다.




두 사람은 소리없이 이별을 시작한다.



러브호텔에 간 두 사람


조제는 그토록 보고싶었던 물고기를 본다.

아쿠아리움이 아니라 러브호텔에서.

하지만 조제는 괜찮다.

깊고 깊은 바다 밑바닥에는

애초부터 아무 것도 없었으니까.

러브호텔의 물고기도 조제 앞에서는 숨을 쉰다.


"그다지 외롭지는 않아.
 애초부터 아무 것도 없었으니까.
 단지 아주 천천히 시간이 흘러갈 뿐이지.

 난 두번 다시 그곳으로는 돌아갈 수 없겠지.

 언젠가 자기가 없어지게 되면...
 미아가 된 조개껍데기처럼
 혼자서 바다 밑을 데굴데굴 굴러다니게 되겠지.

 하지만... 그것도 괜찮아!"



두사람은 여행에서 돌아와서도

몇 개월간 같이 살다가

헤어진다.


배웅하듯 선물을 건네는 조제.

그리고 담담하게 받아드는 츠네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생략.

영화에서 즐기시기를...)


전기휠체어를 타기 시작한 조제


영화 마지막 즈음 읊조리는 츠네오의 대사는
윤효 시인의 <못>에 가 닿는다.


'헤어지고도 친구가 될 수 있는
종류의 여자도 있지만 조제는 다르다.
내가 조제를 만날 일은, 두 번 다시 없을 것이다.'     -츠네오의 대사 중
가슴 굵은 못을 박고 사는 사람들이 생애가 저물어가도록 그 못을 차마 뽑아버리지 못하는 것은
자기 생의 가장 뜨거운 부분을 거기 걸어놓았기 때문이다.    - 윤  효 <못>


그렇게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어설프고도 서툴렀던 남녀의 기록이자,

생의 가장 뜨거운 부분을 걸어놓은

우리의 어느 순간이 된다.




오늘도 한 뼘만큼 더 자라기를.

그래서 괜찮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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