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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수없음 Oct 16. 2016

[여행] 시베리아 횡단열차 (1)

20160919 ~ 20160920 : 블라디보스톡 기차역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여행을 떠나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것은.


민족 대 결전의 날이라는 추석이었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엄마와 나는 싸웠고

 

아주 오래 전부터

'나는 누구인가' 혹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앞서

'다음 달엔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 것인가'에 머무르는 상황이었다.


어느 것 하나 해결되지 않고, 해결될 기미도 없는 상황에서

숨이 막혔다.

그래, 숨이 막혔다.

엄마가 나즈막히 읊조린 혼잣말처럼 '지긋지긋' 했다.


어디로든 떠나고 싶었다. 적금 통장을 (탈탈) 털어

3일 뒤 출발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 티켓을 끊었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길을 찾아.

이 답답한 마음을 어떻게든 해달라는 작은 바람 하나 안고.

(http://eng.rzd.ru 미리 예매할수록 저렴하다. 기차 번호가 작을 수록 최신식이다.)


그리고

약 25일 간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나는

부랴부랴 사진을 찾아 글을 적는다.


답답한 나의 일상에 찾아온 작은 바람이

당신의 삶에도 슬며시 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지금부터 시작하는 이 이야기는

2016년 9월 19일부터 2016년 10월 13일까지 

누군가가 일상에서 도망쳐 만났던, 어느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다.




2016.  9. 19. 08:00pm  블라디보스톡 국제공항


오후 8시 무렵.

늦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공항은 한산했다. 

짐작도 할 수 없는 간판들을 보며 내가 타지에 왔음을 알았다.  


 

택시 기사님은 '영어를 조금 할 줄 안다'며 수줍어 했다.
주소 하나 들고 도착한 숙소 <블라드 마린 인(Vlad Marine Inn)>


'네가 준 주소에 도착했으니 내리라'는 기사님의 말씀에 당황했다.

내가 3일 동안 인터넷을 뒤져가며 검색한 숙소는

블라디보스톡 기차역과 가깝고, 쾌적하고, 깔끔한 곳이었던 것 같은데...

장기라도 떼이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섰다.


의외로 괜찮았던 8인실 도미토리


용기를 내어 들어간 방은 의외로 쾌적했다.

그리고 여기서 한국인 부부를 만났다.

인테리어 사업을 하는 분들이셨는데, 아내 분이 고려인이라고 했다.

일제강점기 때 중앙아시아로 끌려갔던 분들의 후손으로

한국에서 일을 하다가 남편 분을 만나셨다고 한다.

아들 결혼식이 있어 잠깐 왔다고.

두 분은 '이곳에서 한국인을 만날 줄 몰랐다'며, 러시아 산 새우를 맛보게 해주셨다.

그렇게 거대한 새우는 난생 처음이었다.


4~5마리면 배가 부르다. 러시아 산 대형 새우


아내 분이 말씀하시기로는

블라디보스톡 앞 바다에 플랑크톤이 많아 새우가 크고 실하게 자란다고.

러시아가 옛날부터 부동항에 집착했던 이유가 이것이었나.


다음 날 아침이 밝았다.

부부는 아침 일찍 어디론가 떠나셨고

나도 짐을 챙겨 기차역으로 향했다.

숙소와 블라디보스톡 기차 역까지는 걸어서 5분 거리.

쾌청한 아침이었다.


2016. 9. 20. 아침, 귀곡산장이 호텔로 변했다.
출근하느라 분주한 사람들


다들 출근하느라 바쁜 아침에

혼자 유유자적 기차역으로 향하는 기분.

이럴 때 해방을 느낀다.


시간이 남아 슈퍼마켓에서 '필수템'들을 구입한다


인터넷으로 찾아본 바로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탈 때 필수품이 몇 가지 있다.

일용할 양식(컵라면과 빵), 물, 탈취제, 바가지.

좁은 공간에서 먹고 움직이다보면 각종 냄새들이 나기 마련인데다가

변기와 세면대 겨우 있는 공간에서 씻을 땐 바가지가 유용하단다.

필수템들을 구입한 뒤, 슈퍼 옆 공원 계단에 앉아 전 날 중국식당에서 포장해 온 음식을 먹었다.


레닌. 그는 그의 낙원을 만났을까
어쨌든 나는 주린 배를 채운다.
 블라디보스톡의 기차역


블라디보스톡과 모스크바의 시차는 7시간.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모스크바' 시간을 기준으로 운행된다.

기차역 꼭대기에 달린 시계도 '모스크바의 시간'을 가리키고 있다.

내가 탈 열차가 (모스크바 시간으로) 오전 4시 2분에 출발하는 열차니까,

(블라디보스톡 시간으로) 오전 11시 2분에 출발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한 나라에서만 시차가 7시간이라니. 대륙의 위엄이란.


캐리어를 끌고, 배낭을 메고 낑낑대며 도착한 대합실
<블라디보스톡 - 모스크바> 행 열차 티켓


미리 출력해온 E-ticket을 창구에 보여주고

실물 티켓을 받고 나니 그제야 실감이 난다.

내가 열차를 타는 구나.


이 사람들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드디어, 열차에 탄다.

블라디보스톡에서 모스크바까지는 7박 8일.

나는 어떤 여행을 하게 될까.






(이어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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