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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진희 Apr 05. 2024

2화. 왜 그때는 몰랐을까

밤새 진통하느라 깨어있던 탓에 피로의 무게는 컸다. 남편은 좀 자라고 말했다. 그렇게 나를 깨워댔던 의료진도 이젠 자도 된다고 했고, 나도 너무나 기다려온 시간인데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무거운 눈꺼풀에 못 이겨 잠이 들었다가도 곧 소스라치며 깨어나기를 반복했다.  아기 손가락이 세 개라는 말이 귓속에서 쟁쟁거렸다. '기형이 심한, 다른 장기에 이상이 있을 수도'라고 한 의사의 말도 마음을 몹시 불안하게 했다.


조금 전 일어난 일이 꿈처럼 느껴졌다. 아니, 사실은 꿈이기를 바라고 있었다. 우리가 잘 키우면 된다고 한 남편의 말에 그러자고 대답하면서 마음도 정리되면 좋을 텐데 그럴 리가! 지금 이 상황을 못 받아들이고 있는 내 모습이 당혹스러웠다.  

  ‘이렇게 못 받아들이면 어떡할 건데? 못나게 굴지 마.’

의사로부터 소식을 들은 지 불과 서너 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나는 나를 채근하고 있었다.

  

12시간을 진통하다 제왕절개 수술을 받은 친구가 출산을 앞둔 내게 말했었다. 출산 후에 진통의 피로와 수술 후유증 둘 다 겪을 수도 있으니 자기처럼 미련하게 버티지 말고 여차하면 결정을 빨리 잘하라고 말이다. 수술실에 들어가면서 친구의 조언이 떠올랐다. ‘나는 7시간을 버텼으니 이만하면 결정을 빨리 잘한 거겠지?’ 하마터면 우쭐할 뻔했다.

턱 주변과 입 안, 목 전체가 돌처럼 딱딱해져서 움직일 때마다 고통스러웠고 입을 살짝 벌리는 것조차 버거웠다. 제왕절개 수술을 한 건데 얼굴이며 목이 왜 아픈지 몰랐다가 깨달았다. 진통할 때 너무 소리를 지르고 온몸을 비틀다가 목에 힘을 준 것 때문이었다. 진통 중 이를 꽉 깨물면 나중에 이가 약해진다는 말에 그건 피했는데 목은 몰랐다.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처럼 꼴깍거리는 몇 번의 잠을 잤을 무렵, 남편이 내게 보여주려고 아기를 병실로 데려왔다. 내 아기! 너무나 보고 싶은 내 아기! 그런데 아무리 눈에 힘을 줘도 눈꺼풀이 들리지 않았다. ‘이상하다. 왜 눈이 안 떠지지?’ 너무 운 탓에 눈이 팅팅 부어서 앞이 잘 안 보였던 것이다.

목이 아파서 고개를 움직일 수 없으니 더더욱 아기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몇 번의 시도가 실패하자 남편은 나중에 다시 보라며 아기를 신생아실에 데려다주었다. 마음 같아선 당장 두 팔로 아기를 안고 속싸개 속 고울 얼굴이 보고 싶었다. 

  '대체 얼마나 부었길래 앞이 안 보일까?'

아마 다음 날이었을 거다. 소변 줄을 빼고 소변을 보려고 수술 후 처음으로 일어서서 화장실에 가려다 우연히 거울 속 내 얼굴을 마주하고 흠칫했다. 정말이지 말도 안 되게 부어 있었다. 잘 회복해야 아기를 키우지 이래선 안 되겠다 싶었다. 그만 울자고 다짐했다. 결국 다짐은 다짐일 뿐이었지만.     


입원실에 혼자 남게 되면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갈까 입술을 깨물고 울었다. 아기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몰라 무서웠고, 아기의 앞날에 어떤 고통이 닥칠지 두려웠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돌이킬 수 없는 일을 했구나. 이제 평생 엄마로 살게 되었구나. 한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이 이토록 무거운 일이었구나. 아기가 자라면서 손 때문에 힘들어하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도망가고 싶다. 무슨 엄마가 이래? 난 왜 이것밖에 안 되지?’


소식을 들은 이들은 모두 슬퍼했다. 몇 달 동안 진료 볼 때 자주 마주쳤던 외래 데스크 간호사는 입원실까지 찾아와 내 목을 끌어안고 울다 갔다. 소식 들었다며 너무 마음이 아파서 왔다고.

가끔 입원실에서의 며칠이 생각나면 상상해 본다. 보통의 산모들처럼 나도 축하만 받았으면 어땠을까. 바깥에는 아기가 잘 태어났고 산모도 건강하다고만 소식을 전하고 조용히 몸과 마음의 회복에 집중했으면 어땠을까 하고 말이다. 나를 둘러싼 공기에는 슬픔과 눈물 자국이 어려 있었고, 두려움과 불안에 함몰되어 출산을 기뻐하지 못했다.


내가 아기를 만나려고 기다린 시간은 열 달이 아니라 6년이었다. 그렇다면 아기가 손가락이 두 개 없이 왔다고 해도 기쁘고 반가울 일이었다. 그걸 왜 그때는 몰랐을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의 위압은 그렇게 대단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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