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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진희 Mar 28. 2024

1화. 뜻밖의 소식

다시 엄마 뱃속으로 들어간 것 같았다. 바깥은 시끄럽고 분주했다. 나는 눈을 감은 채 그 안에서 편안하고 잠잠했다. 이윽고 멀리서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는 점점 더 크고 가까워졌다.

  “자, 이제 일어나세요. 일어나셔야 해요.”

점점 더 몰아붙이듯이 말하니 더 머물고 싶어도 하는 수 없었다. 꼭 붙어 떨어지지 않겠다는 눈꺼풀을 겨우 떼어냈다. 어떤 여자가 내 뺨을 톡톡 두드리는 게 보였다. 그래도 자꾸만 두 눈은 감겨들었다.

  “알았으니까 그만 불러요. 나 좀 내버려 둬요. 조금만 더 있다 일어날게요.”

열심히 말했지만 굳은 혀가 말을 듣지 않아 나도 알아들을 수 없는 모호한 웅얼거림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침에 엄마가 학교 가라고 깨울 때마다 짜증 내면서 했던 말들이었다. 그 기억이 스치자 당혹스러웠다. 내가 누구인지 여기가 어디인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깜깜한 몇 초의 정적이 흐른 후에야 기억에 재시동이 걸렸다. 아! 맞다! 나 아기 낳았지! 그러자 몇 시간 전까지 끔찍했던 산고의 기억도 되살아났다.


아기는 예정일인 3월 27일에서 5일이 지나도록 나올 기미가 없었다. 출산을 기다리다 만우절이 되자 오늘 출산하면 앞으로 아이 생일마다 어떤 일이 생길지를 상상해 보았다. 이를테면 아이가 커서 친구들에게 “오늘 내 생일이야.”라고 말하면 만우절이라서 안 믿어주지 않을까? 하는 상상 말이다. 짐작일 뿐이지만 왠지 골치 아픈 일이 매년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어 만우절 출산만은 피하고 싶었다. 은근한 바람대로 그날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내일까지 소식이 없으면 유도분만이었다.

  “아가야. 만우절도 지났으니 이제 나와도 된단다.”

만삭의 배를 쓰다듬으며 짐볼을 수백 번 타고 밤잠을 청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갑자기 눈이 탁 떠졌다. 반사적으로 소변을 보러 가려고 몸을 일으킨 순간, 아래에서 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말로만 듣던 양수가 터진 것이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 1시였다. 남편은 곤히 자고 있었다. 어차피 밤새울 텐데 더 자게 두기로 했다. 조용히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나서 남편을 깨웠다. 양수가 터졌다는 말을 들은 남편의 몸은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병원까지 차를 달려 1시간을 가는 동안 진통 간격이 점차 좁혀졌지만 통증은 대수롭지 않았다. 나는 이제껏 말로만 듣던 진통을 곧 맞닥뜨릴 생각에 긴장이 조여 왔다. 내 나이 서른아홉, 노산이자 초산이었다. 과연 자연분만을 성공할 수 있을까? 골골쟁이에 잔병치레 숱하게 겪어봤으니 출산의 아픔도 이겨내지 않을까? 혹시 알아? 뚜껑 열어보니 출산의 달인일 수도 있잖아.


시작이 좋았다. 병원에 도착해 보니 자궁문이 벌써 4cm가 열렸다고 했다. 의료진은 자연분만을 기대해 볼 만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상황은 말할 수 없이 처참했다. 연습한 호흡법과 배에 힘주는 방법은 가당치도 않았다. 극한의 진통이 밀려올 때마다 무력해지고 말았다. 다음 진통에는 맞서보겠다고 결심했지만 번번이 무너졌다. 도저히 상대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그나마 조금만 더 버티면 끝날 거라는 기대가 나를 버티게 했다. 그런데 간호사가 내진을 하더니 6cm까지 열렸던 자궁문이 5cm로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짧은 한숨을 뱉고 고개를 내저었다. 유감스럽다는 표정이었다. 그 후 나의 인내심은 바닥을 치고 말았다.

그다음 내진에서는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다고 했다. 진통 간격은 점점 더 짧아졌고 통증은 브레이커가 도로가 아니라 내 배를 깨는 듯했다. 이제 나는 온몸을 비틀며 내 뺨을 때리고 있었다. 차라리 의식을 잃고 싶었다. 몸부림치며 괴성을 고래고래 질렀다. 이성은 가출한 후였다. 그때 남편이 물었다.

  “수술해 달라고 할까? “

곧이어 들어온 담당의도 같은 질문을 했다. 이 정도 진통이면 아이가 나오기 직전이어야 하는데 진행도 안 되니 수술을 하자고 했다.


수술에 동의한 후에는 괴상 야릇한 패배감과 죄의식에 휩싸였다. 수술이든 자연분만이든 무사히 출산하면 된다고 말해왔지만 내 무의식 저변에는 출산 현장에서 자연분만이 완전한 승리라는 생각이 깔려있었던 모양이다. 수술실로 옮겨지는 동안 남편에게 한 말이 지금은 창피하다.

  “여보, 나 진 거 아냐.”           

제왕절개가 더 아프다고 말하는 산모들도 있는데 나는 아니었다. 수술한 곳이 아팠지만 산고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끔찍한 산고가 사라진 자체가, 다 끝났다는 것이 나를 안도케 했다.

나는 누운 채로 번쩍 들려 이동침대로 옮겨졌다. 침대 바퀴가 구르는 소리와 드르륵 미닫이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 후 다시 번쩍 들려 다른 침대로 옮겨졌다. 입원실이었다.

남편과 둘만 남게 되었다.

  “여보, 고생했어.”

남편이 내 이마를 쓸어내리며 말했다.

  “아기 봤어?”

  “응”

  “예뻐?”

  “응. 예쁘지.”

  “나도 보고 싶다.”

  “이따가 데려올게.”

남편은 계속 내 이마를 쓸어내리고 있었다. 평소에 스킨십을 잘하지 않는 사람이라 손길이 어색했다. 물기 어린 다정한 목소리도 낯설었다.

  ‘아기 보고 너무 감동받은 건가? 내가 고생한 게 안쓰러운가?’  


그때 담당 의사가 들어왔다.

  “산모 수술 잘 되었고 아기도 건강해요. 음, 그런데 아기가 오른손 손가락이 세 개야. 그중 두 개는 붙어 있고 손바닥도 작아.”

말릴 틈도 없이 의사는 말을 이어갔다.

  “손 기형이 심한 편이라 보통 이런 애들은 다른 장기에 문제가 있을 수 있거든. 일단 아래층 소아과 전문의한테 보였는데 뭐 현재로서는 특별한 문제는 없다고 하네. 그래도 불안하면 소아정형전문의한테 보여도 되고. 원하면 우리가 의뢰서 써서 예약해 줄게.”

나는 무슨 말을 하는 건지 혼란스러운데 남편은 담담하게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제야 남편의 손길과 물기 어린 목소리의 이유를 알았다.


  “여보. 저 의사가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손가락이 세 개라고? 세상에 그런 손도 있어?”

손가락이 세 개면 어떻게 생긴 걸까? 상상이 안 갔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 목덜미를 타고 내렸다.

  “괜찮아, 여보. 우리가 잘 키우면 돼.”

남편은 연실 괜찮다고 말하며 손으로 내 얼굴을 닦아냈다. 눈이 잘 떠지지 않아 희미했지만 남편도 울고 있었다. 소맷부리로 자기 얼굴을 쓱쓱 닦으며 손으로는 나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누구든지 우리 아기 놀리면 죽여 버릴 거야.”        

죽여버릴 거야, 죽여버릴 거야. 나는 연거푸 중얼거렸다.


어떻게 그런 끔찍한 말을 했을까? 마취에서 깬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을까. 이성적인 상태가 아니어서 그랬을까. 내 입에서 나온 말이 나도 뜻밖이었다. 나는 왜 그렇게 말했을까? 진심이었을까? 그 후로도 그 말을 자주 떠올렸다. 그런데 몇 년이 흘러 돌이켜봐도 그 말은 진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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