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걱정과 불안, 눈물이 많은 편이었다. 그에 비해 임기응변은 약했다. 뜻밖의 일을 만나면 당황해서 무의식적인 말과 행동을 하고는, 고요한 밤중에 후회와 아쉬움에 잠 못 이루는 일명 ‘이불 킥’ 전문이 되었다. 그러한 과정이 늘 괴로웠지만 경험이 쌓여도 대응력이 발달하지는 않았다. 자꾸만 예측해 보고 대비하는 것을 한 방편으로 삼게 되었고, 한때는 좌우명이 유비무환이기도 했다.
그런 내가 출산을 어떻게 준비했겠는가? 두꺼운 출산육아대백과를 옆구리에 끼고 살며 여러 번 정독하고, 영상을 찾아보며 자연분만 호흡법을 연습했다. 먼저 엄마가 된 친구들에게 일일이 물어가며 신생아 용품을 준비했다.
그런데 조리원에서 처음으로 아기와 시간을 보낸 후 내가 얼마나 중요한 것을 놓쳤는지 깨달았다. 아기와 한 시간 반 동안 방에 있으면서 기저귀 세 번 갈고, 모유를 먹이고, 양이 모자라 연이어 분유를 두 번에 나눠서 먹이고 나니 내 표정은 흡사 몽크의 절규와 같았다.
속싸개는 어떻게 싸는지, 기저귀는 어떻게 채우는지, 버리는 기저귀는 어떻게 말아 접어야 하는지, 모유 수유할 때와 분유 먹일 때 아기를 어떻게 안고, 엄마는 어떻게 자세를 잡아야 하는지, 트림을 시킬 때는 어떻게 아기를 안고, 어떻게 등을 토닥여야 하는지 아는 게 없었다. 온통 ‘어떻게’였다.
긴장해서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목과 등, 팔이 결려왔다. 엄마로서 해야 할 일이 한꺼번에 쏟아졌는데 평소처럼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발동하면서 초조해지고 말았다.
그리고 젖이 도는 느낌은 뭐랄까. 강력한 자석이 가슴에 내장된 것 같달까. 젖이 돌 때면 ‘징’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고, 처음 브래지어를 착용했을 때의 어색하고 달갑지 않았던 기분이 떠올랐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겨우 시작에 불과했다. 신생아 목욕과 마사지, 젖몸살과 단유, 손발톱 관리, 분유 타는 방법 등 배우고 익힐 게 많았고 아기가 클수록 엄마의 손길도 그에 따라 계속 달라져야 할 것이었다. 조리원 퇴소가 벌써부터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어떻게 진짜 육아는 준비하지 않았을까? ‘닥치면 다 하게 된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던가?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조리원에서 배워도 늦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안심했던 것 같기는 하다. 사람이 아무리 대비를 한다 해도 전혀 모르는 영역은 알아볼 생각조차 못하는 법이었다.
아기를 신생아실에 보내놓고 곤죽이 되어 침대에 드러누웠다. 그때 누군가 내 방을 노크했다. 문을 열어보니 조리원 실장님이었다.
“조리원 계약할 때 저희가 이벤트로 신생아 무료 촬영해 드린다고 했었잖아요. 스튜디오에서 내일 촬영하러 나올 건데, 아직 다른 사람한테 아기 손 보여주시는 게 엄마가 마음이 힘드실 수도 있을 것 같아서 한 번 더 여쭤봐요."
"어떻게 하시겠어요, 어머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