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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진희 May 03. 2024

5화. 평화로운 슬픔

가스가 나오고 걸을 수 있게 되자 남편과 같이 신생아실부터 찾아갔다. 링거를 끌고 긴 복도를 따라 엉거주춤하게 천천히 걸었다. 신생아실 유리창 앞에 먼저 온 다른 방문객 몇이 보였다. 우리가 다가가자, 그들 중 한 사람이 말을 걸어왔다.

  “혹시 이 아기 엄마세요?”

처음 보는 사람의 질문에 물음표가 가득해져서 일단 “네.”라고 얼떨떨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방문객은 해사한 미소로 말했다.

  “아기가 정말 예뻐요. 우리는 다른 아기 보러 온 건데 이 아기가 너무 예뻐서 계속 보고 있었어요.”

  “아, 네. 감사합니다.”

아기 손의 이슈를 모르는 이의 기쁜 축하였다. 아기를 낳고 처음 받아본 순수한 축하였다. 자고 있는 우리 아기 말간 얼굴을 나도 유리창 너머로 바라보았다. 아기의 얼굴은 평화로웠다. 예뻤다. 그리고 나는 슬퍼졌다. 그게 그랬다.

  

남편은 노아에게 올리브 나무 잎사귀를 물어다 준 비둘기처럼 새로운 소식을 계속 전해주었다. 상급종합병원 소아정형외과에 아기의 진료일이 잡혔다고 했고, 수부외과(hand surgery) 분야에서 유명한 병원 중에 온라인 진료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사진 파일을 첨부해야 하니 아기의 손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도 했다. 당장 방문 진료가 어려운 상황에서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래서 입원실에서 아기의 속싸개를 처음으로 풀어보았다. 긴장감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새근새근 자는 아기를 깨울까 봐 조심스럽게 천천히 팔을 꺼내고 이어 손을 보았다.

  ‘아! 이렇게 생겼구나.’

찬물로 세수한 것처럼 정신이 맑아졌다. 침착하게 손을 살펴보았다. 말로만 들어서는 잘 그려지지 않았던 이유가 있었다. 난생처음 보는 손이었다. 그러니 머릿속에서 그려지지 않았을 수밖에.


중학생 시절, 친구 집에 또래 셋이 모여 영화 ‘패왕별희’를 본 적이 있다. 주인공(장국영)의 한 손이, 손가락이 여섯 개였다. 엄마가 어린 주인공을 경극단에 넣으려고 하는데 '육손’이라 배우가 될 팔자가 아니라고 경극단에서 거부하자 엄마가 아이의 손가락 하나를 자르게 한다. 세상에 손가락이 여섯 개인 사람도 있다는 것이 인상 깊었고, 엄마가 아들의 손가락 하나를 자르게 한다는 것이 잔인하고 충격적이었다.

임신 시절, 초음파 검사를 할 때 내가 의사에게 “열 개 다 있죠?”라고 물은 적이 있는데, 열 개가 아닐 다른 가능성을 훤히 알고 물었던 게 아니었다. 내가 아는 손의 다양함은 그 정도 수준의 지식이었다. 사고 등 후천적으로 손가락을 소실할 수 있어도 선천적으로 적게 가지고 태어날 수도 있다는 사실은 몰랐다. 손가락 마디와 길이가 다를 수 있다는 사실도.


열 달을 내 뱃속에 품고 한 몸으로 살았지만 듣지도, 보지도, 알지도 못했던 아기의 손은 낯설었다. 엄지와 검지 사이가 많이 벌어지는 보통의 손과 달리 우리 아기의 손은 세 손가락의 간격이 나란했다. 2번 손가락의 길이가 짧아서 3번 손가락이 휜 채로 붙어있었다. 언뜻 봐서는 손가락이 두 개처럼 보였다.

신생아라 붉고 주름이 많은 작은 손은 갓 태어나 아직 눈도 못 뜬 여린 새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이 두 손가락은 나중에 분리수술을 받게 해야 할 거야."

남편이 나지막이 일러주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정말이지 하기 싫다는 거부감이 온몸을 치받았다. 이 작은 아기를 수술대에 올려야 한다니! 칼에 살짝 베이는 상상만 해도 몸이 저린 느낌인데 이 가녀린 생살을 칼로 가르고 꿰맨다니, 몸서리가 쳐졌다.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런데 아기의 손을 봤기 때문에, 그렇게 싫어도 겪어야 하는 일이라는 걸 단번에 이해했다. 또 다른 중압감이 몰려왔다. 나는 초보 엄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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