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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진희 Jun 15. 2024

7화. 갓 태어난 엄마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내 물음에 실장님이 멋쩍게 웃었다. 정말 몰라서 되묻고 말았다. 준비된 대답이 내게 있을 리가 없었다. 아기만 갓 태어난 게 아니라 엄마도 이제 갓 태어나지 않았는가.

  “저는 어떻게 하시라고 말씀드릴 수 없지요. 어머님이 결정하셔야죠.”


조리원 실장님의 유추는 내 속마음을 들여다본 듯이 정확했다. 나는 아직 다른 사람한테 아기 손을 보여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엄마에게도 낯선 아기 손을 그들이 보고 어떻게 반응할지 예측되지 않았고, 그 반응 앞에서 나는 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도 알지 못했다. 촬영 전에 그들에게 미리 고지를 할지, 안 할지도 고민스러웠다. 바꿔 말하면, 촬영팀의 반응을 잘 예측해서 적절하게 대처할 방법을 준비하고 싶었지만 머릿속이 새하얀 도화지 같았다.


그냥 찍지 말아 버릴까? 또 도망갈 생각부터 튀어 오른다.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하고 싶었지만, 당장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이를 어디에서 찾겠는가? 남편과 의논해 보고 다시 말씀드리겠다고 대답하고 문을 닫았다.   

심장이 두근대기 시작했다. 어려운 선택의 순간이 주어지면 내 심장은 두근거린다. 잘 선택해야 한다는 생각이 습관처럼 발동하는 것이다. 아니, 가급적 후회가 없을, 가장 좋은 선택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기와 관련한 선택 앞에서 부담은 더 부풀었다. 후회가 나만의 몫일 때는 그럭저럭 감내해 볼 만했지만, 어린 생명을 대신해서 하는 선택에는 더 큰 책임감이 따랐다. 겨우 잠깐의 사진 촬영 하나에도 말이다.      


조리원 입소 후 며칠 만에 아기 엉덩이에 발진이 났다. 신생아실로부터 조리원에서 제공하는 기저귀가 아기 피부에 맞지 않으니 남편한테 얘기해서 마트에서 다른 기저귀를 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선생님. 무슨 기저귀를 사 올까요?”

  “아무거나요. 엄마들 많이 쓰는 거 있잖아요. 잘 모르시면 그냥 비싼 거 사 오세요.”


흔하게 널린 ‘기저귀’가 갑자기 세상 중요하고 무거운 고민거리가 되어버렸다. 무슨 기저귀를 사야 하지? 팬티형이랑 날개형이 있네? 두 종류가 서로 뭐가 다르지? 신생아한테는 뭐가 맞지? 기저귀가 단계도 있네?


선생님은 모르면 그냥 비싼 걸 사 오라고 했지만 다양한 브랜드 중에서 특징과 가격을 고려하고, 무엇보다 발진을 가라앉게 할 기저귀를 골라야 한다. 앞으로 계속 써야 할 기저귀를 한 번에 잘 찾고 싶어진다. 진지해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부모가 되면 아기를 위해서, 아기를 대신해서 무엇인가를 선택하는 일부터 시작하는구나! 막 지구에 등을 누인 아기를 위해 가장 좋은 선택을 하고 싶은 건 본능에 가까웠다.


스튜디오 촬영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그래. 나는 ‘엄마’로서 대답해야 한다.      


난감할 때마다 도망갈 생각부터 떠오르지만, 그렇다고 진짜로 도망부터 친 적은 없다. 힘들어도 들여다보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왔다. 이번이라고 다르지 않다, 다를 수 없다.

내가 그들의 시선과 반응이 두려워 촬영을 포기한다면 아기에게 미안하지 않은가. 그리고 부끄러울 것이다. 나중에 이 일을 돌아본다면 아이에게 당당하게 말할 수 없어 차라리 함구를 택할 것이다.

  '엄마가 먼저 당당하면 아기도 그런 엄마를 보고 당당하게 클 것이다. 그러자면 뜻밖에 찾아온 이 시험대를 결과야 어떠하든 일단 지나가기라도 해 보자. 해보지도 않고 겁먹어서 지레 포기하는 엄마는 되지 말자.'


남편과는 아기가 타인의 말과 시선에 묶이지 않고 자유롭고 당당하게 살도록 키우자고, 그러기 위해서 많은 것에 도전하게 하고, 다양하게 경험하게 해 주자고 그즈음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그렇다면 마음은 두렵고 떨려도 나서는 게 맞다.


다음 날이 되었다. 우리 아기의 촬영 순서는 맨 나중이라고 했다. 순서가 되어 비장한 각오를 다지고 촬영실로 갔다. 촬영에 들어가기에 앞서 스튜디오 촬영팀에게 아기 손이 다르게 생겼지만 특별히 신경 쓰실 점은 없다고 말했다.


경험 많은 촬영팀의 손은 빨랐다. 아기에게 재빠르게 의상을 갈아입히고, 곧바로 촬영이 시작되었다. 털실로 짠 멜빵바지를 입고 라탄바구니 안에 눕혀진 아기는 울지도 않고, 카메라 셔터 소리를 시선으로 좇았다. 덕분에 촬영은 순식간에 마쳤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곁에서 수문장처럼 비장하게 서 있던 나는 그제야 긴장이 풀렸다. 이렇게 싱겁게 끝나다니, 뭘 그리 떨며 괴롭게 고민했을까.

  






실장님의 질문을 받고 고민에 잠긴 그녀를 지금의 내가 찾아가 문을 두드리고 싶다. 어찌해야 할지 몰라 홀로 무서워하는 그 엄마에게 말해주고 싶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을 거야.”

       


실장님의 질문에도 다시 대답하고 싶다. 노크 소리에 내가 문을 열면, 실장님이 서 있다.

  “어떻게 하시겠어요, 어머님?”

그러면  흔쾌히 대답한다.

  “당연히 찍어야죠. 우리 아기 평생 간직할 모습인데, 예쁘게 담아줘야죠.”

실장님의 조심스럽고 굳었던 표정에 미소가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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